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탈리아 Day 2(1) - 로마 시내(팔라티노 언덕,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여행/이탈리아-오스트리아 2018. 2. 1. 17:21

    이탈리아에서의 첫 아침 식사. 

    중국에 온 줄 알았다.

    식사를 하러 키치넷에 가니 레인과 아내가 분주하게 아침 식사 준비 중이다. 풍문으로만 듣던 한국인 부부도 그곳에 있었다. 어린 자녀를 부모님께 맡기고 여행 온 젊은 부부였다. 오늘 피렌체로 떠날 예정이란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기차 시간이 급해 먼저 자리를 떴다. 레인의 아내는 영어를 못 하는지 내가 중국어 쓰는 걸 알고 삶의 역정을 얘기한다. 이탈리아에 왜 유학을 왔는지, 어떻게 하다가 남편을 만났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웃 주민이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사는지 등등. 그리고 중국인 만나면 자주 듣는 송송커플 안부도 전해들었다. 

    정갈한 아침 밥을 잘 먹고 집을 나섰다. 

    제대로 맡아보는 로마의 공기. 매연, 담배연기. 읭.


    콜로세움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4대 성당 중 하나로 예수의 구유가 있다는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이 있다. 먼저 이곳을 들릴까 하는 마음에 정문 쪽으로 돌아가니 마침 단체관광객이 왔는지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다음에 봐야지하고 나왔는데 결국 가지 못했다. 숙소에서 걸어서 3분 거리도 안 되는 제일 가까운 곳인데 꼭 이렇다. 

    조금 걷다보니 골목길 사이로 두둥, 콜로세움이 보인다. 어제 공항에서 오는 길에 어둠에 휩싸인 자태를 보기는 했지만 아침의 콜로세움은 또 다르다. 야구장에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갈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듯, 옛 사람들도 이 곳을 들어설 때면 심장이 고동쳤겠지. 오늘은 어떤 공연을 볼 수 있을까. 어떤 유혈사태를 볼 수 있을까.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박해의 대명사인 네로 황제 때에는 이 콜로세움이 없었다. 벤허와도 관련 없고.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

    잠깐 방향을 트니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함께 보인다. 그러나 나의 첫 번째 행선지는 팔라티노 언덕. 콜로세움 통합권이면 콜로세움, 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 따라서 인기 폭발로 줄이 긴 콜로세움보다는 줄이 짧은 팔라티노 언덕으로 가라하였다. 순식간에 표를 한 장 사들고 팔라티노 언덕에 입장. 

    들어가자마자 이런 길이


    팔라티노 언덕은 규모가 실로 장대하다. 이곳은 로마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7개의 언덕 중 하나로, 로마 신화 속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 형제가 발견된 곳이라고 한다. 이 언덕에는 황제와 귀족의 주거지가 조성되기도 하였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현대 조소가 뜬금없이 고대의 정취 속에 자리잡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꾀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안 어울린다. 이때부터 햇살이 엄청 따갑다.

    무뜬금 예술작품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헤매면서 위로 위로 향하다 보니 아래로 포로 로마노라는 멋진 폐허가 펼쳐진다. 어떻게 도시의 한복판에 이런 것이 있단 말인가. 문득 야은 길재의 시조가 한 수 떠올랐다. 사실 폐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조이긴 하다. ㅋㅋㅋ 매양 진부하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오면 포로 로마노가 있지만 점심 시간이 지난 시간이라 혹시나 가는 길에 주전부리라도 있을까 하고 콜로세움 쪽으로 향하였다. 아뿔싸 지도를 한번이라도 봤으면 좋았을텐데, 길치 주제에 감만 믿고 가다가 아무리 걸어도 길 건너 빤히 보이는 콜로세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진기한 경험을 하였다. 다이어트할 때 꿈에 나온 케이크를 향해 아무리 달려가도 좁혀지지 않는 그런 느낌.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향해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느낌.


    콜로세움(Colosseum)

    햇빛이 작열하는 가운데 약간의 삽질을 하며 콜로세움에 들어갔다. 하나는 줄이 길고 하나는 줄이 짧았는데 짧은 건 로마패스 길이란다. 입장하려면 여기에 서야하나보다. 하면서 긴 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통합권도 다 소용없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바로 앞에 선 남자애들이 뭔가를 알아보더니 우리 열라 멍청해하면서 짧은 줄로 간다. 그제야 내가 표를 구입하려는 줄에 서있음을 알았다. 더 멍청한 걸로.

    팔라티노 언덕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콜로세움 내부는 큰 감흥이 없었다. 진시황릉 병마용갱을 마주했을 때의 담담함 그대로였다. 당시 나는 한 여행사에서 만든 로마 여행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었는데 오디오의 호스트들이 찬양해마지 않는 콜로세움이 그닥 마음을 끌지 않는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안 봐서 그런가.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어서 출입구로 빠져나와서 포로 로마노로 진행. 입장하려고 하는데 내 표가 이미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 억울해하면서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밖에 못 봤다고 항변하였다. 억울이 뚝뚝 떨어지는 표정에 검표인은 옛다하고 문을 열어주면서 팔라티노 언덕이 포로 로마노라고 대꾸하는 것 같았으나 무사통과라는 기쁨에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카피톨리아노 광장에서 내려본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는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행정의 요지로 수많은 공공건축과 신전이 자리잡은 곳이다. 19세기까지 폐허로 남아있어서 아래와 같은 17세기 삽화에는 유적지의 상층부만 보이기도 한다.

    이 안을 걷다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중 하나를 호령하였던 중심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햇빛이 너무 내리쬔다. 

    배도 고프다. 

    아까 콜로세움 가려고 삽질까지 해서 다리도 아프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