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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 집으로 문화 읽기, 건축으로 세상 읽기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8. 5. 14. 16:07

    이 책을 덮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일단 통일성, 완결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이게 과연 한 사람이 완정된 생각을 하며 쓴 책이 맞는가. 문체, 어휘, 구조, 뉘앙스, 방향이 제각각이다. 아마도 10년이 흐른 후에 낸 개정증보판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책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 집으로 문화 읽기, 건축으로 세상 읽기>인데 집에 관한 이야기는 60% 정도였다. 그보다는 건축이 시대상과 연동하며 어떻게 변하였는가를 설명한 책이다.  

    1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의 3장 "저 푸른 초원 위에, 아파트… 노래 속의 집"까지 보는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금은 틀렸고 옛날은 옳아 식의 되도 않는 잔소리가 너무 많다. 최신 경향에 따라 변해가는 세태를 가족중심주의 시선에서 비꼰다. 우리나라 건축계에 회고적, 더 나아가 노스탤지어 분위기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낡은 것을 무조건 까부수던 개발 위주의 건축, 도시 편제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며, 나도 여기에 발맞추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온고지신의 경향이 '옛 정서는 무조건 옳다'로 치환된다면 곤란하다(가족이나 이웃 간의 정을 다루매 이런 점이 자주 보인다). 

    그만 읽겠다고 책을 확 덮어버렸다가 슬며시 목차를 펼쳤다. 관심 가는 주제가 보인다.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였으리라. 조금만 더 읽어보자.

    1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1. 당신의 가치를 말해주는 집 
    2. 아파트를 샀다, 나도 이제 중산층이다 
    3. 저 푸른 초원 위에, 아파트… 노래 속의 집 
    4. 마음속에 그린 집 
    5. 주택은 그 시대의 거울 

    2부 집과 여성 
    1. 여자는 여기까지만 
    2. 아내의 서재 
    3. 부엌이 어디죠? 하녀가 있나요? 
    4. 해녀는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 
    5. 남자의 자리 
    6. 아동의 탄생, 자녀방의 등장 

    3부 그늘에 가려진 집들 
    1. 다세대 주택, 그 이름은 빌라 
    2. 전원의 타운하우스 
    3. 도심 회귀 현상의 그림자 
    4. 위험한 건축, 패스트하우징 
    5. 공공 임대 주택, 집에 대한 생각이 변하다 

    4부 하늘로 올라가는 집, 아파트 
    1. AD 0년 최초의 아파트가 등장하다 
    2. 아파트가 성공한 유일한 나라 
    3. 30년 후 타워팰리스의 모습은? 
    4. 아파트의 정년은 몇 세? 
    5. 아파트의 속내를 들여다보다 
    6. 베란다를 개조하겠다고? 

    5부 이 건물의 비밀을 아시나요? 
    1. 백화점, 우리는 매일 먹방에 간다 
    2. 모델하우스, 그 화려한 패션쇼 
    3. 성당과 사찰, 다른 옷을 입은 같은 얼굴 
    4. 학교 운동장에 태극기는 휘날리고 
    5. 불이 났을 때 비상구를 이용할 수 없다면 
    6. 건물을 보면 시대가 보인다 
    7. 건축의 자리는 제3선


    그다음부터는 이미 짜증이 만렙을 찍어서인지 웬만하면 역치에 이르지 않는다. 2부에서는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던 여성의 삶이 건축과 어떻게 호동 하였는지, 3부에서는 도시화와 주택의 역학관계, 4부에서는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 사회에 녹아들어 왕관의 자리를 차지하였는지, 5부에서는 각 건물로 보는 사회상을 그린다. 

    그런데 읽을 수록 기분이 이상하다. 초반부에서도 기시감을 느끼긴 했지만, 그냥 이 쪽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중지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한국 특유의 현상인 강남 발달, 아파트 중심, 한옥 마을에 대해서야 매번 비슷한 분석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뭔가 심각하다고 느꼈다. 중간중간 한두 문단씩 통째로 예전에 읽었던 다른 책과 내용, 인과관계, 예시까지 똑같다. 문득 생각난 책을 찾았다. 발췌한 인용문을 살펴보니 <세상을 바꾼 건축>이라는 책이다. 아뿔싸, 저자가 같다. 자기 표절이 아니라면 과문한 것이리라. 이를 미화할 마땅한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을 바꾼 건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도식화에 강하다. 그래서 굉장히 이해하기 쉽다.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고 장기 융자로 분양하였는지를 설명할 때에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동자가 주택을 소유하면서 본인을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중산층으로 착각하게 되고, 노동 의식화보다는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갖추게 되며, 주택 장기 융자에 매여 노동쟁의 등의 과격 행위보다는 얌전히 일자리에 종사하게 되고, 대신 소소한 소비를 하며 즐기는 삶을 선택하고, 이에 필요한 공산품을 팔아먹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가 굴러간다는 식의 설명이다. 부엌이 지하에서 집의 전면에 나서게 된 역정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읽다 보면 얼개가 딱딱 맞아서 머리를 크게 주억이게 된다. 약간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같다. 너무 인과관계가 딱딱 맞아들어가는 도식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책의 편집에서 아쉬운 점은 사진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사진은 내용의 이해를 돕도록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다만 사진 설명이 거의 없고, 사진 설명인 줄 알았던 글줄은 게재된 내용 일부를 발췌해 넣은 것이다. 이 부분만 좀 보완이 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계속 가장이라는 용어를 쓴 점도 아쉽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20180414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