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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한식의 품격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8. 6. 1. 15:22

    읽는 책의 50% 정도가 건축 아니면 음식에 관한 것이다. 사람 사는 데에 필요한 필수 3요소 중 옷을 제외한 식주 영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문제는 글로만 배운다는 것.

    그리하여 레이더에 들어온 것이 이용재의 <한식의 품격>. 이미 그의 전작인 <외식의 품격>을 재미나게 읽었던 참이었다. 한식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책에서는 뭐라 비판을 했을까 엄청난 기대를 하며 <한식의 품격>을 펴들었다.

    기대한 것치고 초반은 굉장히 읽기가 힘들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논리가 없어서(끄응). 한식에 품격이란 없다, 내가 성역 없이 제대로 비판해주마의 패기 넘치는 대갈일성은 어디 갔는지 1부 맛의 원리, 특히 다섯 가지 기본 맛(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을 다루면서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특정 음식을 전제로 해서 다른 맛을 비판하더니 다시 돌아가 그 특정 음식이 잘못됐다고 한다. (모두까기 인형 강림)


    책을 읽다가 냉장고를 비판한 철학자를 두어 번이나 들먹이며 러다이트 운동 어쩌고 빈정거리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전작도 그렇고) 가장 많이 느꼈던 기시감이 바로 냉장고 어쩌고 철학자인 강신주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내게 이런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작가가 셋이 있다. 이 책의 저자, 강신주, 그리고 어느 한 영화 평론 블로거가 그들이다. 독불장군처럼 본인은 옳고 타자는 무자비하게 깔아뭉갠다. 말뿐인 겸양도 없다. 펜(칼)을 휘두름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친다(당연한 소리겠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팬도 많고 안티도 많다). 그 와중에 강신주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본인의 목표는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그의 예봉은 자본주의, 전체주의를 겨누고 있다. 적이 있으니 그 적에 의지하여 비판이 진행된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방금까지 비난을 위하여 의지하였던 대상을 다음 장에서 비난한다. 새로운 개념의 하석상대이다. 자신의 비판을 위하여 부간부념통한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식의 주제인 우리나라 쌀이 어쩌고저쩌고하여 이것과 페어링이 안 되는 이 음식이 옳지 않다더니 다음 장에 와서는 우리나라 쌀이 이러저리 해서 안 되니 다른 걸 해보자고 그런다. 

    이 책의 저자와는 달리 나는 강신주가 왜 냉장고를 비판하는지 이해한다. 또한, 이 책의 저자가 왜 이러는지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저자가 한식이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면 제일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대상부터 차츰차츰 공박해 나가면서 문제가 해결되면 그 근거로 의지하였던 것을 버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게 안 된다. 모든 것이 문제라 무엇에 의지하여 무엇을 고쳐야 할지 뒤죽박죽이다. 

    보통 보수주의는 이런 문제가 없다. 현재 상태에 잘못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어머니 손맛 짱짱맨. 한국음식 짱짱맨. 이러면 끝이다. 그런데 진보는 무엇을 문제로 진단하느냐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종종 이런 사태가 발생한다. 최적상태로 나아가는 레이어가 너무 많이 존재한다. 지금껏 의지하였던 상태가 다음 단계에서는 공박해야 할 상태다. 이걸 단계없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이렇게 된다. 이 책이 진보주의자의 맹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음식이건, 보편이건.

    불교에는 방편이라는 것이 있다.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상황에 따라 마련한 임시변통이다. 따라서 다음 지점에 이르면 그곳까지 자신을 나르던 방편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식의 품격을 위한 다음 단계도 이르기 전에 방편을 버리기 바쁘다. 지붕으로 올라가던 중에 사다리를 부수고 강을 건너기도 전에 뗏목을 가라앉힌다. 원하는 목표가 뭔지는 알겠다. 품격있는 한식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해체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또한 맛의 객관화를 말한다. 옳은 말이다. 미각 부분에서는 객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후각의 영역은 어찌할 것인가. 후각이 맛을 느끼는 감각의 75%를 차지한다고 한다. 촉각, 시각, 청각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분위기까지 계산한다면 맛의 영역에서 미각이 그나마 보유하고 있는 25%라는 수치도 훨씬 낮아질 것이다. 게다가 후각은 400개의 수용체 중 30%는 사람들 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같은 향을 맡으면서 누군가는 백단유 향을 맡고 누군가는 소변 지린내를 맡는다. 후각을 논하지 않고 음식 맛을 논할 수 있는가. 맛에서 겨우 25%를 점하는 미각을 객관화하면 그걸로 맛을 객관화 지표화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음식 맛의 대부분을 관장하는 후각을 (참기름 냄새를 제외하고는) 홀시 하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엄청나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오직 1부에 한한다. 이것도 애정이 있으니 까는 거다. 2부에서 각 음식을 각개격파한 부분은 굉장히 공감한다. 특히, 모든 것을 직화구이하려는 한식 형태에 반발감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저자의 의견에 대부분 동조하는 편이다. 그의 전작인 <외식의 품격>과 비슷한 구성이었다. 왜 책 전체를 이런 식으로 쓰지 않았을까. 저자의 의도는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서 1부가 더 아쉽다. 

    책을 읽다가 출판사 게시판을 찾았다. 눈에 띄는 오타를 알려주려고 말이다. 그런데 찾을 수가 없어 여기에나마 끄적인다. 이 책은 이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1판 1쇄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의미 있는 책이다. 2쇄 3쇄에서는 이 오타가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제발유.


    141쪽 : leaving bitter taste in the mouse -> leaving a bitter taste in the mouth (갑자기 왜 쥐가 나오나 당황했었다. 그런데 a bad taste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215쪽 : 2105년 레스토랑 개점 (미래에서 오셨나요)

    323쪽 : 절인 채소 picked vegetable -> pickled vegetables (뭘 고르려고)

    435쪽(각주) : 이혼 소성 -> 이혼 소송 

    449쪽 : 빼았겨 -> 빼앗겨


    마지막으로 도움이 되는 사진 자료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