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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전국축제자랑> 울다 웃다 뇌내 축제의 현장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11. 3. 12:31

     

    책은 그냥 언제나 그렇듯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는 문학 분야에서조차 노벨상 작가의 작품이나,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한 소설책도 읽어봤다. 그런데 요즘 날 감동과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책은 이렇게 굵직굵직한 상을 받은 책이 아니다. 바로 이름도 거룩한 <전국축제자랑>이다. 그냥 평이한 억양으로 제목을 읽으면 맛이 안 산다. 전국-, 축제 자라앙! 뭐 이 정도로 읽어야 되지 않을까. 글쟁이 부부인 김혼비 씨와 박태하 씨가 손 잡고 만들어 낸 한국의 축제 탐방기이다. 그야말로 얻어걸린 책이었다.

    도서관 반납을 앞두고 카페에서 읽었다. 가끔 엄청 웃긴 것을 밖에서 보면 소리는 못 내고 몸에 진동만 일으킬 때 있지 않은가. 지하철에서 나와 어깨를 맞댄 채 영상을 보다가 몸을 엄청 떨며 웃는 이에게서 전해져 오는 진동. 시종일관 그런 상태였다. 소리를 내며 웃을 때는 그 소리 때문에 내 뱃살의 진동따위 신경 쓴 적 없는데 소리를 내지 못하니 뱃가죽 떨리는 것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눈물이 터지면 카페 티슈를 잔뜩 적셨다. 마스크를 내리고 콧물도 좀 닦아주면서. 

    일단 이몸은 축제를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사람 많은 곳을 태생적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다이소의 진열대 사이를 통과할 때도 한 사람이라도 진열대 앞에 서 있으면 그냥 빙 돌아간다. 그럼에도 만원 관중이 들어찬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갈 때도 있으니 그만큼 그 분위기를 즐긴다는 뜻일 것이고, 우연히 날짜가 맞아서 예매한 경기가 기아-LG 주말 잠실전일 경우는 그냥 간단하게 새(조)…됐네를 외칠뿐이다. 반대편 응원석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텅텅 비었던 현대 유니콘스 시절 수원야구장을 꽤 좋아했었다(이 글을 크보가 싫어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의도해서 축제에 가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충남예산의 의좋은형제축제를 시작으로 전남영암 왕인문화축제, 전남나주 영산포홍어축제, 경남의령의병제전, 경남밀양아리랑대축제, 충북음성 품바축제, 강원강릉 단오제, 충북청주 젓가락페스티벌, 전북완주 와일드푸드축제, 강원양양 연어축제, 전남보성 벌교꼬막축제, 경남산청 지리산산청곶감축제까지 총 12개의 한국의 크고 작은 축제를 돌아다니면서 K스러움을 찾는 부부의 기록을 담고 있다. 

    나는 K-라는 말에 대충 얼버무려지는 수많은 내함을 눈치껏 때려맞추라는 강제성 때문에 무엇인가가를 K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그까이꺼 대충 K라고 하면 사실 뭔지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면서 아 그거 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는 ‘대박’, ‘헐’, ‘미친’ 등으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수준 높은 어휘 구사를 저하시킨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것들은 영탄법이라도 된다. 그런데 K는 단독으로 쓰일 때는 힘 하나 못 쓰면서 눈치 있게 알아들으라는 진정한 K스러움을 담고 있어서 저맥락 문화를 지향하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껄끄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끔 K스러움을 얘기할 때마다 약간씩 탈주하기는 했다. 굳이 알아듣고 싶지 않은 이 기분. 그래도 글쓴이들은 꽤 공을 들여 그들이 느끼는 K스러움을 설명해주니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전반적인 측면에서 이 책을 읽을 때 크게 걸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책이 미치도록 재미있기 때문.

    의좋은 형제축제에서는 굉장히 근엄하게 지나갔는데, 이후 구림 마을 속 구림미용실, 구림초등학교, 그리고 구림의 밤부터 으흐흐 웃기 시작해서, 영산포 홍어 축제에서 지나가는 배에 대한 묘사를 보고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이 부분 굉장히 묘사하기 힘들었을 텐데(그래서 다각도로 노력한 게 보인다) 그 황망함이 잘 전달된다. 그러다가 경남 의령 의병제전의 퍼레이드 묘사에서는 뿌애앵 울고 말았다. 무정부주의자인 나는 애민애족을 실천하며 분연히 앞장서는 민초들에게 정말 약하다. 그러다가 밀양아리랑 축제의 밀양강 오디세이 퍼포먼스 묘사를 보면서 말 그대로 울다가 웃다가 난리도 아니었다. 완전 혼을 빼앗길 정도였다.  

    이 책을 보면서 몇 군데 가보고 싶은 축제가 생겼다. 일단 강릉단오제를 꼭 가보고 싶어졌고, 의령의병제전과 산청곶감축제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식탐이 유독 강한 조카와는 완주와일드푸드 축제에 가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도 setec에서 했던 팔도밥상페어에 데려갔더니 참으로 이것저것 잘 받아먹었던 것이 인상 깊어서인가. 

    전반적으로 부부가 성향이나 감성이 나와 비슷해서 더 잘 읽히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재미있게 쓰는 힘은 김혼비 씨의 힘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김혼비 씨 없이 박태하 씨가 혼자 쓴 부분도 너무 재미있어서 부부가 죽이 잘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권하는 중인데, 만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다행이라면 난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친구가 나와 공유한 리디 계정에 사놔서 궁금해지면 이걸로 봐도 되겠다.  

    그리고 전혀 뜬금없지만,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아니 전혀 상관없는 책 <판지셰르의 사자 마수드> 같은 책을 봐도 난 계속 느낀다. 세상에 인구가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사람 하나 낳아서 키울 때의 공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어쩜 이렇게 인구가 많을 수 있단 말인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