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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진격의 거인 (進撃の巨人, Attack on Titan)
    오덕기(五德記)/日 2013. 4. 15. 22:28

    *스포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시청 전입니다.

     

    <클레이모어>를 보고, 어디 비슷한 만화 없나 해서 찾은 작품이 <진격의 거인>이다. 정말 재미있어서 밤을 새며 읽기는 했는데 역시나 장르 자체는 <클레이모어>와 비슷하게 고어물인지라 특정 장면(이를테면 거인이 손에 쥐고 있던 인간을 나무에 쳐서 박살 내는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고어물 치고는 소프트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몸은 알게 모르게 고달팠나보다. 다음날 구토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진격의...>는 매우 독특한 설정의 중세풍 판타지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을 먹는 거인들, 그리고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삼중으로 둘러싼 성벽 안에서 사람들이 불안정한 평화에 만족하며 갇혀 지낸 지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100년간의 평화가 오늘의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대화 후에, 지금까지는 보지 못한 초대형 거인이 나타나 성벽을 부수고 거인들이 침입해 온다. 이때 자신의 어머니가 거인에게 먹히는 끔찍한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주인공 에런은 복수심에 불 타 오른다. 그는 자신의 의붓 남매인 미카사, 그리고 친한 친구인 아르민과 함께 고달픈 훈련병 과정을 거쳐 바야흐로 거인의 세계를 탐험하는 조사병단에 들어갈 준비를 마치던 참이었다.  

     

     

    5년만에 또다시 거인들의 공격이 이어지고 에런은 초반에 거인에게 잡아먹힌다. 이때 나는 음? 에런이 주인공이 아니었어?  뭐 어떻게든 살아나겠지? 하다가 의외로 오랫동안 살아나지 않아서 으잉?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에런이 거인으로 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였다는 놀라운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에런의 이 경이로운 능력에 (아마도 의사인 아버지가 주입한 약물에 의해 생겨난 듯한 힘) 손에 땀을 쥐며 읽고 있을 때즈음, 같은 훈련병 동기 중에 이놈도 거인 저놈도 거인, 너도 거인이었냐? 나도 거인인데... 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서 살짝 맥이 빠지고, 주인공의 거인<->인간 변신의 희소성이 바닥을 치는 부분까지가 최근까지의 연재 분이다. 뭐 주인공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내용은 흥미진진,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만화가 가진 특징을 장점이건 단점이건 가리지 않는다면 다음을 꼽을 수 있겠다. 첫째, 적절하게 떡밥을 뿌리고 능수능란하게 회수한다는 점이다. 훈련병 동기들, 그러니까 1등부터 11등(유미르)까지 하나같이 비밀에 싸여 있다. 무슨 양파도 아니고 한 겹을 까면 또다른 실체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 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욱이 각각의 캐릭터마다 회상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회상씬이 나오면 지루해지기 마련이거늘 전혀 이질감이 없이 현재의 상황과 아주 잘 버무려지면서 떡밥을 회수한다. (그러나 매우 거대한 떡밥이었던 갑옷거인과 초대형거인의 정체가 너무 어이없게 회수되어서 그 부분을 내 눈을 의심하며 세 번이나 다시 봤음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계속 얘네들이 장난하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고 있었다. -_-; )

     

     

     

    둘째, 아직까지는 탄탄해 보이는 세계관과 뭔가 있어 보이는 음모론이 꼬릿꼬릿 그 냄새를 풍긴다는 점이다. 거인의 공간과 격리하기 위해 삼중으로 만들었다는 성벽은 중세시대의 대표적인 세 위계(즉,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 일하는 자) 혹은 삼신분제와 같은 구체제(앙시앵레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듯 싶다. 더 깊은 성 안에 있는 자와 좀 더 공격받기 쉽게 돌출되어 있는 성에 사는 자들의 처지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삼중으로 되어 있는 성 안에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충분한 물과 곡식과 광물이 있다고 가정하는 등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이럭저럭 삶을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빈틈없이 구상했다. 그런데 나는 맨 처음 이 엄청난 규모의 성곽을 짓는 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하면서 <진격의...>세계관에 생채기를 내려고 했는데, 아뿔싸 이 성곽 축조마저 음모론이 잠복하고 있다. 이 음모론은 아버지가 에렌에게 준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다는 지하실에서 시작되어서, 성 축조물 안에 있는 거인에 대해 성(城)을 믿는 종교의 사제가 무엇인가 알고 있었다는 단서, 크리스티나 출생의 비밀, 그리고 이런 저런 능력을 가진 거인들이 떼로 등장하면서 최고로 증폭된다. 결국 이 음모론은 조직이나 왕정을 믿지 못하는 자들, 그러니까 주인공과 주인과 주변에 있는 자들이 규명해야 할 몫인 것이다. 

     

     

    셋째, 나름의 통찰력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만화에서 대놓고 대사로 표현하는 작가의 통찰력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이런 것은 만화책을 읽다가 저절로 무릎을 딱 치며 느끼게 해야지, A부터 Z까지 미주알 고주알 설명해서 자~ 이게 내 생각이야~ 나 멋지지? 생각 많이 했지? 이런 느낌이 나면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만화책의 단점이라면(거의 모든 일본 만화책이 그러하듯) 이렇게 말로써 사회나 조직, 종교나 인간의 존재에 대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통찰력을 설명하려 하는 부분이 꽤 많다는 것이고, 그 와중에도 장점이라면 그래 네 말이 맞네! 하는 부분이 꽤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작가는 뿌리깊은 사회의 불평등을 표현하기 위해 때로는 은근히, 때로는 대놓고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이 말, 즉 가장 거인과 잘 싸울 능력이 있는 자가 가장 거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한 지적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넷째, <클레이모어>가 엄청나게 많은 캐릭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하나같이 비장미가 넘쳤다면, <진격...>의 그것은 어딘가 있음직하고, 어딘가 삐뚤어지고,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웃기고, 그 와중에도 어딘가 멋있는 캐릭터들의 향연이었다. 근성 있는 주인공 에런, 최강의 전사이자 적에게는 얄짤없지만 얼굴은 귀여운 미카사, 몸은 약하지만 머리 좋고 의리 있는 아르민을 필두로 해서, 성격 까칠하고 결벽증이지만 당대 최고의 전사인 리바이 병장, 오타쿠 한지 분대장, 그밖의 각종 비밀에 싸여있는 동기들이 총출동한다. 다만 절대 캐릭터에게 정을 줘서는 안 된다. 언제 죽거나 뒤통수를 칠 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캐릭터들 얼굴이 정말 고만고만한데다가 그림체도 참 옛스럽고 정이 안 간다는 것이다. 주인공부터가 얼굴이 범죄형이다. 그 멋있는 리바이 병장 또한 다크서클이 부담스럽다. 게다가 이름까지 길어서 자잘한 인물은 누가 누군지 구분하는 것을 애초에 포ㅋ기ㅋ. 그냥 주인공 몇 명만 겨우 구분하는 것으로도 족할 정도. 여기에 성별 구분까지 모호하다. 유미르 여자여서 놀래고, 아르민과 한지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아직도 모호하고... 그런데 사람 표현은 이리도 못하는 작가가 격투씬은 또 그렇게 박력있게 잘 그려댄다. 일부러 격투씬을 살리기 위해서 병사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입체기동(?)이던가 하는 추진기를 달아놔서 속도감을 높이고 공간적 제약은 줄였다. 

     

     

    어쨌든, 결론은 <진격의 거인> 보고 심신이 피폐해졌다. 신화방송 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애니메이션 아직 2편까지밖에 안 나왔는데, 벌써부터 엄청난 반응이 있다. 그러나 나는 힐링!!!!을 좀 더 한 후에 도전하련다. 가능하면 1쿨 정도는 끝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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