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책 잡설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4. 7. 29. 15:53

    감성이 터졌는지 아침 댓바람부터 눈물 바다이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사진만 보고도 글썽글썽. 감성을 관장하는 호르몬님이 강림하셨나보다(오...옥시토신?). 그리하여 그냥 요즘 읽고 있는, 혹은 막 갈무리 지은 책에 대해 몇 마디 떠들까 하는데, 절대 감상평도 리뷰도 뭣도 아니오 그저 잡담에 그칠 뿐이다.



    1.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동녘

    초록창에서 책을 검색하면 연관되는 책들이 함께 뜨는데, 이게 마치 도서관이나 서점에 온 기분이 들게 한다. 물론 책팔이 하려는 속셈이겠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달까. 요즘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서점이나 폐가식 서고형 도서관에서는 내가 지목한 책밖에 못 보는데, 예전에는 도서관에 원래 빌리고자 했던 책 옆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기억이 난다. 어찌됐든, 초록창에서 연관되는 책들의 링크를 따라가면서 절로 익숙해진 이름이 있는데 그가 바로 강신주이다. 당시에는 엄청 다작하는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 사람 인터뷰 몇 개 찾아보는 것에 그쳤었는데 사이버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그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책 제목도 내가 좋아하는 것의 조합. 철학과 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마무리를 못 지어서 다시 읽는 중이다. 사실 책을 읽다가 멈추는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이 책의 경우는 약간의 매너리즘과 도식적인 매치 때문이랄까. 시를 읽다보면 작가가 뿜어내는 철학관을 깊이 궁구하여 파악하고픈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일단 철학적 선입관을 장착한 후에 시를 끼얹었다고나 할까. 쉽게 말해 시에서 철학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맞는 시를 찾아서 끼워맞춘 느낌. 그럼에도 시를 읽는 재미가 있고(시에서 철학이 너무 확연히 보여서 유치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지만), 철학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나가는 재미는 더욱 쏠쏠하다.



    2. 신신/마르크 앙투안 마티/휴머니스트

    <부분과 전체>를 매조진 후에 바로 꺼내든 책. 그래픽노블치고는 약간 떨어지는 가독성(내가 이런 글씨체에 익숙하질 않아서)이 아쉽긴 하지만 결말 전까지는 이거 대박이구나 하면서 읽었다. 神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세상에 나타나면서 생기는 일을 엄한 형이상학이나 종교교리 난상에 빠지지 않은 채로 바로 법정으로 끌고간 것이 인상적이었다.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군상의 대화도 적은 재료 안에서 제대로 뽑아냈고. 다만 막판을 그렇게 끝냈어야 했는가. 정말 엄청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미디어에 대한 비판으로 끝을 맺은 용두사미의 전형. 본인이 만들어낸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잘 모른 채 덧붙인 군더더기가 아쉬울 따름이었다. 



    3. 고종석의 문장/고종석/알마

    그야말로 장삿속에 휘말려서 산 책이다. 이 책을 사면 무슨 포인트를 더 준다고 해서 낚인 케이스(자본주의 논리에 참 잘도 휩쓸리는 미미한 1인 여기 추가요). 그런데 책은 정말 즐겁게 보고 있다. 원래 글을 잘 쓰고, 올바르게 쓰는 것에 관심이 많은데 이에 대해 좋은 지침을 주는 책이랄까. 이태준의 <문장강화> 이후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글쓰기 관련 책(이라고 하면 엄청난 칭찬일 듯)이다. 특히 다른 언어를 번역하거나 번역체 어투의 글을 읽으면서 절로 밴 습관에 고민 중인데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주고, 남의 글에 윤을 내주는 일을 할 때 더 풍성하게 지적질 할 거리도 주고. 캬캬.



    4. 부분과 전체/하이젠베르크/지식산업사

    북세미나를 위해 10년 만에 다시 펴든 책. 물리학과 철학을 좋아하는 저같은 인간은 여기에 누워 울지요. 진짜 다시 봐도 시쳇말로 개감동, 꿀잼.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양자역학을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면 이번에는 하이젠베르크가 겪는 시대의 아픔에 공명하며 읽었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가 뼈저리게 느꼈을 무력감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정말 좋은 책이다. 10년 후에 또 펴들고 싶은 좋은 책. 다만 그때에는 다른 번역으로 읽고 싶다. 과학 서적을 원어로 읽을 깜냥이 안 되기에 결국 번역본을 펴들게 될 텐데. 김용준 선생의 노고를 내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초판본 인쇄 소화가 어려운 책도 아니고 수많은 쇄와 개정을 거치면서도 이런 번역(특히 문체)을 계속 봐야한다니 곤혹스럽다. 



    5.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산책자

    역시 북세미나용 책. 같이 세미나 하는 친구들이 철학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입문용으로 고른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망한 선택(일단 입문용이 아님). 원래 로쟈 선생을 다른 책이나 강연에서 접하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 실망했다. 책 내용 자체도 그렇지만 작자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컸달까. 어떤 느낌이냐면 재승박덕, 즉 재주가 덕의 부족함을 이긴다는 것이다. 이 재주가 위에서 말한 하이젠베르크나 뒤에서 말 할 마르크스 수준도 아닌지라 돌려 말하면 박덕함이 지나치다하겠다(물론 희대의 지식인과 비교당하는 로쟈 선생도 억울하겠지만. 약간 농을 섞어서 하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깊이 생각하거나 성실히 배려하지 않음'이라고 메모해놨을 정도이다. 로쟈 선생이 대상들을 타자화하면서 선택한 차별적인 단어들을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편협함을 철학과 지식으로 무장한 채 꼬장꼬장하게 내뱉는 언사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책 읽다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안 그럴 것 같던 사람이 그래서 더욱 실망했나보다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꺼림칙함. 그나마 로쟈 선생 책이니까 끝까지 읽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아니 북세미나 책이니까 읽은 건가). 글쟁이 특유의 위악이니 위선이니 혹은 고집이니 회의이니 독단이니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글에서 밑천 드러나는 기분. 뇌력이 아닌 심력의 밑천. 아쉬운 마음씀씀이.


    그 와중에 건진 몇 조각 글과 생각 덩어리들을 제외하면 이 책 당장 팔아치우고 싶은데, 책 안에 지방선거 투표 인증 도장을 찍어놔서 그것도 못하겠고. 하지만 로쟈 선생님의 강연 좋아합니다. 

    즐거워



    6. The Communist Manifesto/Friedrich Engels and Karl Marx

    보통 우리나라말로 공산당 선언이라고 번역하는 짧은 선언문. 북세미나에서 영어로 강독하고 있는데(우리는 독어가 안 되는지라)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워낙 반항끼가 심해서 세칭 역사를 바꾼 사상가니,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니 하는 자들을 트집 잡고, 씹으려고 책을 읽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당시에도 마르크시즘 사상 자체를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남들이 다 훌륭하다고 하니 뭔가 고까운 시선으로 이 텍스트를 접했던 듯 싶다. 그런데 이제와 다시 읽어보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이미 다양한 마르크시즘의 변환/발전/변종 버전을 접했기에 내릴 수 있는 재평가겠지만, 내가 이후에 접했던 수많은 네오마르크시즘을 비롯한 마르크시즘 사상의 단초가 다 이 안에 버무려져있다. 이미 그 시대에도 마르크시즘이 이 정도로 파악되었었고, 마르크스 및 엥겔스의 혜안은 이후 시대를 통찰하고 있었다. 읽으면서 감탄 중. 감탄, 감탄, 감탄고토? 읭? -_-;











    아침부터 날 눈물 짓게 한 사진 중 하나. ㅋㅋ

    난 이들의 케미가 참 좋다. 

    부분도 좋지만, 부분의 합보다 전체가 훨씬 큰 사람들. 


    책 얘기 잔뜩 쓰고 신화로 마무리 하는 것은 일반적인 신화팬의 기승전싢.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