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lla dies sine linea_방랑하는 도시인의 눈과 귀에 포착된 것
1. 봉은사 앞 정류장 의자
버스정류장 난방이 되는 벤치는 추운 겨울을 나는 노숙자의 좋은 안식처였다. 그래서 가끔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면, 나는 환대받지 못하는 버스 승객이었다. 그/그녀의 편안한 휴식 공간에 감히 들어갈 수도 없던 차였다. 그렇게 이 누군가에 대한 환대의 공간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에게 따뜻함을 제공한다는 버스정류장 원래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그 벤치가 바뀌었다. 굉장히 머리가 좋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노숙자에 대한 환대가 없어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대는 가끔 누군가의 배제를 가져오긴 하지만. 원래 공간의 기획이 승객을 위한 것이었으니, 지금이 맞으리라. 그러나 기획대로만 운영되는 공간이 어디 있던가. 다들 그 안에서 새로운 용도를 찾고, 노숙자는 성공적인 용도를 찾았으나 결국 그 용도를 잃은 것일 테니.
2. 지하철 플랫폼에 별안간 비상출구가 생겼다.
플랫폼의 가장 끝자리에 별안간 초록문이 나타났다. '특별 피난 계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를 보며 더 두려움을 느꼈다. 비상구라면 응당 출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선정릉역처럼 깊고 깊은 곳에서 화재 등이 났을 때 저 비상구가 인도하는 계단이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지, 아니면 더 끔찍한 현장으로 안내해 줄지 어떻게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저 미지의 문을 열면 팔자에 없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3. 어쩌면 무례할지도.
길을 다니다가 겪는 다양한 상황에서, 영어나 일본어로는 익스큐즈미, 혹은 스미마셍으로 표현하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올바른 역어는 무얼까. 기본적으로는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에서 더 압도적으로 쓰이는 말이 있으니 바로 "잠시만요"입니다. 확실히 미안하다거나 실례하다는 표현에 비하면 덜 격식적이고 간접적인 표현이다. 내가 지나갈 테니 네 시간을 점유하는 나를 기다리며 얌전히 있어라는 명령적 표현이랄까. 물론 이는 과하게 표현한 것이고, 실상은 상대의 주의를 끄는 일상적인 표현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런 것 없이 팍팍 지나다녔으니. 미안하고 실례하다는 표현이 내가 하는 이 정도의 행위에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서 그냥 '잠깐 시간 좀'을 외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영어에도 Just a moment 정도의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쓰는 상황이 좀 다르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잠시만요'는 나도 자주 쓰는 표현이긴 하다. 껄껄.
4. 사랑한다굽쇼?
조카 초등 입학식에 놀러갔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안녕하세요 대신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해요라고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셔서 뭐라 굽쇼? 사랑한다굽쇼?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조카를 지나치게 사랑해서 사랑한다고 계속 인사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안녕이라는 인사를 대체해야 하나에는 의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침마다 지나가는 길에도 초등학생 등교의 교통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학생들에게 '사랑합니다'를 외친다. 나도 그 앞을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는데, 내게는 보통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시지만 가끔 실수로 사랑한다고 얘기하시고, 성명도, 얼굴도(얼굴을 안 쳐다봐서 모른다. 목소리는 구분할 수 있다) 모르는 양반의 사랑을 아침부터 듬뿍 받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왜 초등학교에서는 안녕하다는 인사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굳이 사랑한다고 하는지 아직도 머리에 크나큰 물음표를 남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