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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드] <랑야방지풍기장림(琅琊榜之风起长林)>잡설
    오덕기(五德記)/中 2022. 2. 28. 12:59

     

    <랑야방지풍기장림>은 12월 8일에 <사마의>와 함께 시작했고, 2월 20일에 시청 완료. 물론 중간에 한 달 반 정도는 <산하령> 복습하느라 아예 보지 않았고, 이후에 하루 한 두 편 보는 정도로 꾸준히 봤다. <랑야방>을 본 의리도 있는 데다가 딱히 이탈할 이유도 없고, 드라마 분위기도 고급져서, 흡인력이랄 것이 없는 이 드라마를 숙제하듯 끝냈다. 확실히 덕후 몰이용은 아니다. 이 내용이 50편을 할 정도인가 싶었다. 스토리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캐릭터는 평면적이라 초반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편을 온라인 쇼핑이나, 컴퓨터 파일 정리를 하면서 봤지만 내용을 이해하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소문을 듣자하니, 랑야방 3도 찍는다는데, 원작자 하이옌은 어찌 보면 아예 양나라 역사를 새롭게 쓰는 중인 듯. 사실 양나라는 우리 역사와 꽤 관련이 있는 나라이다. 이를테면 백제 사신이 그려진 <양직공도>나, 무령왕릉으로 유명한 무령왕과의 교류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중간에 양나라와 대립/화친 중인 동해라는 지역 얘기가 나오길래 혹시 백제를 이르는 다른 말인가 눈에 불을 켜고 봤는데, 보다 보니 중국 본토 얘기더라. 백제 이야기면 불 뿜으려고 했는데 다행이었다. ㅋㅋㅋㅋ

    일단 랑야방 전작에서 연결되는 부분은 당금 황제가 정왕 소경염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전작에서 기왕의 아들로 소경염이 양자로 삼은 소정생은 장림왕이 되어 황제를 보필한다. 두 드라마에서 연속되는 인물은 소정생과 랑야각의 인신이 유이하다. 처음에는 랑야방 전작과의 관계를 상기하느라 관계도가 약간씩 헷갈렸는데, 사실상 관련 없고 전혀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된다. 우리의 멍따통링 몽길 이름은 꽤 여러 번 거론되고, 회상 장면에서 돌연 매장소가 나오기는 하지만 직계는 아니다.

    이번 드라마도 초반에는 티빙에서 한글 자막으로 봤는데 전작에 이어 '내래 이북에서 왔어요'의 두음법칙 무시는 계속된다. 냥아방은 랑야방(이건 이제 제목이 너무 유명하니 어쩔 수 없고), 내양왕부는 래양왕부로 표기하였다. 인씨는 린씨, 그 와중에 임씨는 또 림씨라고 안 한다. 왜 매번 임씨만 차별하나요. 대충 보는데 번역 오류가 꽤 보여서 유튜브에 중문 자막판이 있는 걸 보고 갈아탔다. 예를 들어 9편에서 "원래는 장림왕부에 소문이 많았는데 태자가 태어나고 황자 둘이 더 태어난 후 그런 소문이 좀 잦아졌지"라고 하는데 잦아들었지이다.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뜻은 아예 반대이다. 12편에서도 "네 어미가 살았다면 주집사를 요절냈을 거다"라고 하였는데 요절은 젊은이의 죽음을 뜻한다(주집사는 나이가 많다), 게다가 원문 대사도 그냥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한다. 

    제목이 풍기장림이라 장림왕부가 엄청 고생하나 보다 했는데, 고생은 순씨 가문이 더 한 듯. 보면서 제일 불쌍했던 사람도 순씨 가문 출신. 약간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생각날 정도였다. 전작처럼, 전반부 악역과 후반부 악역이 별도로 존재하지만, 가장 큰 화근은 따로 있다. 전작의 뿌리깊은 화근은 황제였던 것에 비해, 풍기장림의 악역은 좀 지리멸렬하다. 풍기장림의 화근 역할을 맡은 이는 황후로 의심 많고 장림왕부를 도탄에 빠뜨리는 데 서슴치 않는다. 다만 그녀는 티 나게 식견이 짧고 과단성은 없는 데다가 권력도 하찮아서 전작의 황제 포스가 나오지 않았다.

    풍기장림의 두 황제는 성정이 너무 고아하기만 했다. 특히나 대를 이어 황제가 된 소원시는 너무 사람들 앞에서 시쳇말로 개무시를 당한다. 사춘기에 저런 일을 겪으면, 나중에 엄청 삐뚤어질 것 같은데, 이 친구는 안 그럴 것 같아서 그 점도 아쉽다. 어린 황제 불쌍해서 괜히 감정 이입했네. 

    여주는 자아실현을 위해 남자친구와 이별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둘이 결혼할 예정이란다. 그녀의 심경 변화를 내가 마켓컬리에서 뭘 먹을지 고르느라 놓쳤나 보다. 소원계는 왜 갑자기 저리 되었는지 설명이 잘 되지 않아서 머리에 물음표가 한가득. 게다가 고귀한 신분인 왕야들이 무공은 하나같이 고강하고, 그 귀한 몸으로 출수도 너무 직접 해댄다. 랑야방에 오른 무림 고수 명단에도 각 국의 황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랑야각의 랑야방 선정에 과도한 엘리트주의가 판을 친다.

    일단 장림왕부가 너무 올곧아서 다들 성인의 반열에 올려야 할 정도이다.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욕을 말하는 드라마에서 저렇게 권력욕이 없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황효명이 맡은 세자는 약간 전작의 정왕 느낌도 나고 매장소 느낌도 난다. 이 드라마에서 황효명을 처음 알게 되어서 이름을 검색했다가 그가 결혼했는지도 몰랐는데 최근 이혼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연해졌다. 세자비 몽천설로 나오는 동려아는 생김새가 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위구르 출신. 이 사람이 전작의 예황군주 역할을 표현한 것 같은데 그 정도의 포스는 나지 않았다. 물론 멋있긴 하다.

    래양후와 래양태부인은 어떻게 캐스팅을 한 건지 모자간이 너무 닮았다. 주인공 소평정 역을 맡은 유호연은 요즘 중국에서 선호하는 생김새 같다. 예전 드라마 주인공은 하나같이 부리부리한 배우 일변도였는데, 이제는 진비우, 장약윤, 등륜 같이 세련됨과 분위기를 고루 갖춘 스타일이 선호되는 듯싶다. 그런데 유호연이 지나치게 어려보여서, 이후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카리스마를 갖춰야 하는 부분에서도 마냥 소년 같았다는 아쉬움은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머리를 크게 주억거리던 대사가 있는데 바로 "악한 인간들의 생각을 그들이 직접 말하지 않는 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라는 장림왕부 세자의 말. 악한 행위나 언사에 우리가 매번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끔 책사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계략을 짜는 것을 보면 저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하고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 악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상대방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저열한 생각을 할 때도 그것에 방비가 가능하긴 한 걸까. 그리고 이 드라마는 아주 훌륭하게도 칸트적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평정이 어린 황제를 위로할 때 그의 대사가 품은 내용이 지독하게 마음에 들었다. 다 보고, 이건 좋군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국어로 보면 휘발성이라 대사가 잘 기억이 안 난다. 

     

    랑야방 3은 더 잘 만들어야 할 듯.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