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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 잡설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4. 11. 13:34

    제목을 듣고는 감이 안 왔는데, 영어 제목을 보고는 바로 감이 왔다. 이런 분야의 책이나 아티클들을 너무 많이 접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자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는데, 예약이 엄청났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했더니 유명한 소설가가 언급했다고 한다. 하여 대출될 때까지 원서로 슬슬 읽다가 한국어 책이 대출된 후 이어서 읽었다. 우리나라 책에는 앞뒤로 소개글과 해제가 붙어있더라. 소개글은 그 유명한 최재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물 관련 책은 최재천, 뇌과학 책은 정재승이 소개글 다는 게 무슨 공식이 된 듯싶다.

    최재천 씨의 저작이나 강의를 접한 적은 없는데, 어머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그의 언설에서 묘하게 기독교 냄새를 풍겨서 진화론과 양립 가능한가 의문을 품었었다. 그래서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의 소개글을 읽고 남우위키에서 검색하니 그가 쓴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생물학적 입장에 관한 글이 링크 된다. 이게 너무나도 부드럽고 배려심 넘쳐서 그에 관한 인상이 통째로 변할 정도였다.

    <다정한...> 책을 보다 보니 생각나는 것이 많아 계속 이 책 저 책을 찾기도 하고 웹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초반에 인종분리 폐지(desegregation)를 실천한 학교 이야기가 나오는데 문득 로자 팍스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이 생각나서 그녀에 대한 PBS 영상을 보다가 돌연 눈물을 찔찔 짜기도 했다 ㅋㅋㅋ. 보노보와 침팬지 얘기에 프란스 드 발의 <내 안의 유인원>,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도 떠올랐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애덤 월킨스의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자밀 자키의 <공감은 지능이다>, 그리고 제레미 다이아몬드, 전중환, 장대익의 저작 등이 생각나서 다시금 뒤적거렸다. 제일 많이 생각난 책은 물론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간단하게 말하면, 최근의 진화론 등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사회심리학 및 인류학과 연결 지어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다가 돌연 강아지 사랑에 뻐렁친 책이라고 하면 되겠다. 한때 유전자를 논하며 '이기성'을 들이밀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 '이타성'을 들먹이는 시대가 꽤 오랫동안 지속 중이고, 이 책도 시류에 발맞춘 책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또 그 나물의 그 밥인 사회심리 실험 얘기 나오고, 보노보 얘기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책에서는 사골처럼 우려먹는 사회심리 실험 이야기가 한가득 나오고, 보노보를 중요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의외로 침팬지와는 달리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개와 여우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연구를 다룬 이야기가 의외로 재밌었고, 곁가지처럼 등장한 DR콩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예전에 나를 매번 시험에 들게 했던 DR콩고에서 온 사람도 기억났다. 그 사람은 본국으로 돌아가도 우리나라에서 배운 것을 실전에 응용하지 않겠다고, 정부에게 밉보이기 싫다고 해서 나를 기함하게 했는데, 이 책에서 묘사한 그곳에서 자행된 잔혹한 데모사이드와 제노사이드를 보니 일견 이해도 갔다.

    즐겁게 읽다가 아래의 과녁판을 보고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화가 난 건 아니다). 


    무정부주의자가 타자를 쉽게 비인간화한다고 서술했던데, 나 같은 무정부주의자는 소속감도 없고 조직적이지도 않으며 딱히 비인간화할 외부적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보면서 계속 저 것은 오해요라고 외쳤다. 어떻게 아나키스트적 성격을 과두제(엘리트주의?), 독재, 공산주의와 같은 맥락으로 구분할 수가 있지. 가장 속세에서 탈리된 존재 아닌가.

    이 책은 초반에 원서로 읽다가, 중간에 번역본으로 읽었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은 계속 원서와 비교하면서 봤다.

    일단, 원서에는 아래와 같은 그림들이 있는데, 번역본에서는 삭제된 것이 꽤 있다. 



    내용이 이해가 안 가서 살펴보면 역시나 번역을 뭉개었다. 나도 번역을 해봐서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가끔은 너무 쉬운 것도 뭉개어서 내용을 애매모호하게 만든 것이 있다. 

    이를 테면 아래의 내용을 읽고, 잠시 갸우뚱했다. 

    우리는 또한 개를 키우는 사람이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보다 사회 지배 성향 점수가 약간 높게 나타나는 경향을 발견했다. 자신이 키우는 개와 유대가 강한 사람들은 개를 가족으로 여겼으며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 사회지배 성향을 보였다.

    개를 키우는 사람이 사회 지배 성향 점수가 높은데, 갑자기 평균보다 낮은 사회 지배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원문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다. 

    We also found that dog owners have slightly higher SDO(사회 지배 성향) ratings than non-dog-owners, although people who are bonded to their dog and view them as family have significantly lower SDO than the average person.

    즉, 개를 키우는 사람은 사회 지배성향 점수가 높지만, 자신이 키우는 개와 유대가 강하고,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은 오히려 사회지배 성향이 평균보다 낮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문장을 이상하게 끊어서 번역한 부분이 꽤 보인다. 

    9장에서 클로딘 안드레를 이야기하며 원본도 계속 클로딘이라고 얘기하는데, 책에서는 계속 안드레라고 말하고 안드레 남편이라고 지칭한다. 사실 안드레는 성이라 남편 성도 안드레 일텐데 말이다.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유를 모르겠다. size를 용적이라고 번역한 등의 몇몇 역어는 어색했지만 비혼모, 완경기로 번역한 것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개에 대한 사랑이 뻐렁칠 때는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도 떠올랐다. 모든 것을 언급하고 지나간 책이라 해러웨이를 얘기할 만도 한데 안 해서 신기할 정도였다. 

    읽는 내내 책이 굉장히 들쑥날쑥해서 괴이하게 생각했는데 감사의 글을 보니 (아마도 트럼프가 당선된) 대선을 보고 굉장히 노선을 많이 변경해 2년을 수정한 후에 출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통일성을 잃고 럭비공처럼 마구 튀었구나 머리를 주억이게 되었다. 초반에는 관조적 관점을 견지하던 이 책이 갑자기 뚜렷한 정치색을 띄고 자신의 목적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세상의 끝에서 민주주의 만만세를 외친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