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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펌글] KIA왕조 실록 - 다음 야게
    My beloved BASEBALL/잡설 2008. 7. 24. 13:06
    호국(虎國) : 해태 그리고 KIA


    제 1대 태조(太祖) 동엽 : ① 광주 무등궁(無等宮)에 도읍을 정하고, 국명을 해태라 하였다. ② 창건을 전후하여, 나라의 기틀이 주변 5국과 비교하여 가장 초라하였다. ③ 왕의 성격이 호탕하여 백성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하나, 주변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또한 술버릇이 고약하여, 종래엔 세자 창수와 투조판서(投組判書 : 투수들을 관장하는 관직) 유남호가 난을 일으켰다. ④ 이에 보위 두달만에 세자 창수에게 선위하고 상왕(上王)이 되어 물러나다... ⑤ 재위 기간 : 82년 1월 ~ 82년 4월, 상왕(上王) 82년 4월 ~ 82년 11월


    ※ 섭정왕(攝政王) 조창수 : ① 선대왕의 술버릇과 고약한 성격을 문제삼아,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다.. ② 피폐한 나라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랜기간 치세를 이어가지 못하였다. ③ 게이비오(揭二備五)와 모국(母國)의 적통을 인정 받지 못하였다.. ④ 섭정 기간 : 82년 4월 ~ 82년 11월


    제 2대 상공(象公) 융종대왕(隆宗大王) 응룡 : ① 역대 최장의 치세를 펼친 왕이다. ② 보위에 오른 이후, 최빈국 해태를 20여년간 역대 최강국으로 변모시켰다. ③ 패왕전(覇王戰)에 아홉번 출전하여, 아홉번 승전하였다. ④ 우람한 체격과 담대한 성격으로 주변국에서 코끼리 같다 하여, 상공(象公)으로 불리우곤 하였다. ⑤ 응룡 1년(83년), 응룡 4년 ~ 7년(86년 ~ 89년), 응룡 9년(91년), 응룡 11년(93년), 응룡 14년 ~ 15년(96년, 97년), 에 걸쳐 9차례 천하를 평정하였다. ⑥ 치세 후반, 천하에 불어닥친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소용돌이에 국운이 기울어 패권을 다시 얻지는 못하였으나, 강국의 위용은 잃지 않았다.. ⑦ 문예(文藝)에도 조예가 있어, 역사상 최초의 시조인 부재가(不材歌)를 지은 왕으로도 유명하다.. 그 내용이 인재가 없음을 한탄하며, 초저녁의 석양처럼 기울어져가는 왕조를 지켜봐야 하는 지존의 애환이 담겨있어... 듣는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원문이 아래와 같다...


    오호동렬이부재중(嗚呼銅烈而不在中) 어허! 동열이도 없고...
    오호종범이이적야(嗚呼鐘範而移籍也) 어허! 종범이도 가고...
    첩첩산중사면초가(疊疊山中四面楚歌) 이번 시즌은~ 머~ 어렵지 아니한가...


    ⑧ 재위 기간 : 82년 11월 ~ 00년 11월


    제 3대 고조(古祖) 성한 : ① 해태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기아 최초의 왕.. ② 해태왕조의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포부를 가지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③ 성한 1년(01년) 해태 왕조를 거느리고 기아 왕조에 흡수되었다. 곧 국명을 기아로 바꾸었다. ④ 옛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하였으나, 호랑이 왕조의 정신은 잃지 않았던 왕으로 평가된다. ⑤ 재위 기간 : 해태국 마지막 치세(00년 11월 ~ 01년 8월), 기아국 시조(01년 8월 ~ 04년 10월)


    제 4대 묘종(猫宗) 남호 : ① 재위 이후, 실정을 거듭하여.. 왕국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② 창건 이래로 왕국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일대 오점을 남겨 백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원흉으로 지목 되고 있다. ③ 호랑이 왕조를 고양이(猫)로 만들었다 빈축을 사, 시호가 묘종(猫宗)으로 지어졌다. ④ 보위 말년, 용병 장수 이오수를 숙청하였으며, 고조 성한왕 복위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⑤ 재위 기간 : 04년 10월 ~ 05년 10월


    제 5대 울종(鬱宗) 정환 : ① 몰락한 왕조를 이어 받아, 국가 재건의 움직임을 보이나 선정에 실패하고 만다.. ② 출전중 전장에서 왕관(王冠)과 장수들의 병장기를 집어던지며 분개하기도 하였다 한다. 종국엔 2년만에 왕위에서 물러나 하야(何野) 한다. 항간의 소문에는 천하를 떠도는 유세객이 됐다고 전한다. ③ 백성들 가슴에 울화병(鬱禍病)을 남겼다 하여, 울종(鬱宗)으로 봉해졌다. ④ 재위 기간 : 05년 10월 ~ 07년 10월


    제 6대 혁조(革祖) 범현 : ① 정환 2년 여름, 세자에 책봉되었다. ② 보위와 동시에 과거 해태국 호남파 신료들을 대거 숙청하는 피의 개혁(改革)을 단행... ③ SK국 성근왕식 데이터 정치를 펼지겠다고 공표.


    이 글 보고 정말 빵 터졌다.  특히 김응용 감독의 '부재가'는 꿈(원시)보다 해몽(해석)이 더 좋기로 가히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리라.  어디에서 이런 글을 쓸 재치가 나오는 건지 기아팬들의 재기에 감탄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역사 전공자로서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어 몇 자 적어보련다. 첫째, 고조(古祖)의 한문이 시호로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고조를 쓸 때는 높을 高를 쓴다.  둘째, 섭정왕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셋째, 가장 눈에 띄던 점이었는데 "제6대 혁조 범현"이다. 시호는 임금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흔히 죽은 후에) 에 선왕의 치적을 평가하여 추증하는 것이다. 조범현 감독이 과연 '혁조'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즉 금상이 실록에 편입되거나 시호를 가질 수가 없다는 거다. 내가 밥먹고 하는 짓이 이건지라 좀 picky 하긴 하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하지 않았는가.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는 말이 있다. 털끝 만큼의 차이로 천지가 나뉜 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진짜와 가짜, 진리와 허구, 이 모든 것이 터럭 하나로 갈린다. (By being off by a hairs breadth, It is like the gaping space between heaven and earth.)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