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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쿠트나 호라 - 성모마리아 성당, 세들레츠 납골당
    여행/체코-헝가리 2020. 4. 28. 16:45

    오늘은 쿠트나호라 구경 후 야간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이동하는 날이다.

    짐을 다 싼 후 프라하 중앙역까지 뭘 타고 갈까 고민하다가 리셉션에 내려갔다. 혹시 택시를 지금 당장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아니 그걸 왜 갑자기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Limes Apartments 시설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고 접객도 친절하다. 위치도 나쁘지 않아 다시 프라하에 오더라도 이용할 생각이 든다. 올 일은 없겠지만. 프론트에서 15분만 기다리면 택시가 당도한단다. 시간에 맞춰 문 앞에 나서니 택시는 아니고 일반 차량이 와있다. 한화로 약 4천원 정도 내니 역에 도착했다.

    먼저 짐부터 맡기자는 심산으로 가방 모양의 사인을 따라서 짐 보관소를 찾았다. 이곳은 유인 보관소이고 캐리어를 보관할 경우 24시간 100czk이다. 쿠트나 호라로 가는 기차표를 산 후 아침으로 간단하게 커피와 빵을 사먹었는데 커피가 세상 맛 없다.

    세상 맛 없는 커피

     

    시간에 맞춰 기차에 올랐는데, 아뿔싸 너무 덥다. 친구와 나는 에어컨이 뿜뿜 뿜어져나오는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왠지 쫓겨날까봐 그냥 죽치고 기다렸다. 기차가 움직이니 그제서야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며 살 것 같다. 중간에 정차라도 하면 다시 찜통 더위이다. '철마는 달리고싶다' 수준으로 우리는 기차가 다시 달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기차가 너무 노후되어서 그런지, 체코 날씨가 에어컨 없어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에어컨이 참으로 귀하다. 그래서는 안 될 기후 같던데. 6월초인데도 이렇게 푹푹 찌니 말이다.

    약 50분 정도 걸려서 쿠트나호라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먼저 납골당과 마리아 성당을 구경가기로 했다. 잠시 나와서 어리둥절 하다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딱히 길이라 할 것도 없는 갓길을 따라 한 10분 정도 걸으니 일명 마리아 성당, 굳이 해석하면 성모승천과 세례자 요한의 교회(Cathedral of Assumption of Our Lady and St. John the Baptist)가 보인다.

    세들레츠 납골당부터 갈까하다가 지금 같은 기차를 타고 온 모든 사람이 납골당에 갈 것 같아서 혼잡을 피해 마리아 성당부터 가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장을 하려는데 표는 100m 떨어진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사오랜다. 이 인포메이션 센터로 말하자면 세들레츠 납골당과 마리아 성당 가운데 정도에 있다. 그래서 다시 세들레츠 납골당부터 가다가 나오는 길에 성당에 들릴까 고민하다 그냥 통합권을 사들고 마리아 성당으로 향하였다. 이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고민하냐면 날이 덥고 볕이 타는 듯해서 동선을 한 걸음이라도 줄이고 싶어서였다.

    한 층 올라가서 본 모습

     

    마리아 성당에 들어서니 냉기가 확 끼쳐오면서 눈이 밝아온다. 지금까지 봐왔던 스테인드 글라스에 화려한 장식의 어두컴컴한 성당이 아니라 담박한 내부 장식에 크리미한 색상 덕분인지 굉장히 모던한 느낌까지 주는 성당이다. 말 안 했으면 이 성당이 중부유럽 고딕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 것 같다. 네이브에 들어섰을 때의 깔끔함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친구도 시원하다며(?) 만족.

    두 성인의 성유골도 전시. 잘 보면 옷 사이로 보이는 저것이 다 뼈이다.

     

    중랑에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내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된 체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다. 친구에게 이 화가들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지만 이 나라에서는 유명한 화가라고 하니 친구가 아하, 김홍도, 신윤복 같은 사람들인 거야?라고 묻는데 찰떡같은 비유에 나도 모르게 엄지 척.

     

     

    측면의 아름다운 원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성당의 천장 내부가 어떤지 구경할 수 있는데, 이런 게 매우 흥미로웠다. 뭔가 무너질 것 같은 기분에 삐그덕거리며 통과하고 사진 잘 찍고, 더위를 식히니 이제 세들레츠 납골당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참고로 이 성당 맘에 든다.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하고, 굉장히 세련된 고딕-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다. 쿠트나호라까지 와서 이 성당을 안 보고 납골당만 보고 가면 섭하다. 

     

    또다시 타는 듯한 햇빛을 피해 이동하다보니 중간에 레고 박물관이 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가봤는데 딱히 프라하나 쿠트나 호라를 기념한 작품은 없어서 잠시 구경만 하다 나왔다. 레고 박물관은 호텔과 음식점도 운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바깥 벤치에 앉아 레고 아저씨가 있길래 사진을 부탁하고, 친구는 너무 과감하게 포즈를 취하고, 그 유명하다는 납골당으로 향하였다. 

    세들레츠 납골당(Kostnice Sedlec)

    벌써 사람이 많다. 바깥은 그냥 작은 성당 앞 평범한 묘지 같은데, 안에 들어가면서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 벌써 해골바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13세기 경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에서 가져온 흙을 이 수도원에 뿌리면서 이 성스러운 곳에 묻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유럽 전역에서 몰려왔다고 한다. 훗날 묘지 일부를 폐쇄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유골의 일부를 교회 내부에 두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자리만 차지하기에는 아까우니 장식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나보다(이건 내 생각). 하여 예술가에게 유골로 인테리어를 꾸며달라고 의뢰하니 여기에 약 4만여 구의 뼈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들어가서 보는데 아름답지도, 마뜩치도, 즐겁지도, 신기하지도, 심지어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다만 죽은 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멀면 죽은 자의 몸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만 든다. 각 문화를 가늠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죽은 자를 대하는 방식이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지만, 이 모든 방식에 기본적으로 깔린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데 이 세들레츠의 납골당에서 유골을 대하는 방식에는 물화된 죽음, 아니 대상화된 인산칼슘 덩어리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니타스화를 보며 느끼는 허무함도 그림에 해골바가지 하나에 집중했으니 끼쳐오는 감정이다. 이런 식의 타자화된 질료를 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자가 과연 있겠는가. 건축할 때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쓰듯, 이 곳의 뼈도 그 정도의 용도이다. 

    이 짓을 의뢰한 슈바르젠 가문의 문장인데, 그 가문 사람의 유골로만 이루어졌다고 -_-;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와 친구는 시쳇말로 노잼 구경을 하고 나왔다. 친구도 나와 비슷한 얘기를 한다. 섬뜩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오로지 깔끄럽기만 했던 시간을 털어버리기 위해 우리는 얼른 버스를 탔다. 쿠트나 호라에서 버스 타고 이동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라던데, 우리는 다행히 시간이 맞았다(물론 버스를 타기 위하여 주저함과 헤맴이 있었고, 같이 헤매며 심적으로만 의지하던 외국인 커플이 있긴 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