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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 몽크 Monk, 21세기의 셜록홈즈는...
    오덕기(五德記)/美 2009. 4. 4. 22:35

    한때 추리물만 독파한 적이 있었다. 추리물이라는 장르보다는 셜록 홈즈가 활약하는 탐정소설에 심취했다는 편이 정확하지만 말이다. 그 후에도 꽤 다양한 추리물을 접했지만 그 무엇도 내게는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해낸 셜록 홈즈 시리즈를 능가하는 것은 없었다. 

    셜록 홈즈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탐정답게 명석하고 박학다식하며 정의롭다. 수준 높은 유머를 구사할 줄 알고 예의 바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한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냉정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는 또한 날카롭고 올곧게 생긴 신사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줄곧 왓슨의 관찰자 시점에서 묘사되던 셜록 홈즈는 모방하고 싶은 인간형이었다. 그의 신체적 능력과 지모, 특히나 처음 만난 사람도 외양이라던가 행동 패턴 등을 분석해서 직업, 처한 상황 등을 기막히게 짚어내는 추리력을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른다. 

    셜록 홈즈는 이후 탐정물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셜록 홈즈는 그의 특징에 무엇 하나를 더하거나 빼면서 끊임없이 변주되어갔다. 그렇게 셜록 홈즈의 맥을 잇는 이가 20세기에는 형사 콜롬보였다면 21세기에는 몽크가 있다.

    몽크라는 드라마를 보고나서의 심정은 심봤다! 유레카!였다. 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미드를 찾았다는 기분. 처음에는 Monk라는 제목 때문에, 중세 수도사를 다룬 건가하면서 끌리다가. detective monk라는 좀 더 설명된 제목을 보고서는 이것을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야했다. 비위가 약해서 유혈 낭자, 잔혹한 살해 현장 이런 것을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monk 맨 첫 화의 첫 장면을 보고 멈추기를 한 두어번은 한 것 같다. 유혈 낭자가 잠깐 나와서 말이다 -_-;. 세번째 시도에서 monk의 대사를 듣고, 엇 이건 뭔가 다르다라고 생각했고, 현재 시즌 1을 다 마친 상태에서는 딱 내 스타일이야~를 외치게 되었다.

    드라마 monk는 캐릭터, 짜임새, 그리고 적당한 위트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경찰이었던 에이드리안 몽크Adrian Monk (Tony Shalhoub)는 아내의 죽음 이후 신경 쇠약에 걸리면서 경찰 배지를 반납해야만 했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강박신경증(obesessive-cumpulsive disorder)과 다양한 공포증 및 편집증과 결벽증까지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덕분에 그는 아주 작은 사물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을 가질 수 있었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사진기억술, 예민한 후각과 시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 지을 수 있는 논리력과 추리력이 어우러진 뛰어난 탐정이 될 수 있었다. (몽크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It's a gift... and a curse.) 

    이 온갖 정신병적 증상을 가지고 있는 그의 옆에는 보좌역이자 간호사인 샤로나 플레밍Sharona Fleming (Bitty Schram)이 있다. 그녀는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싱글맘으로 억척스러우며 걸쭉하고 잔소리쟁이이지만 몽크를 끔찍하게 생각하고 이해하며 또한 자랑스러워하는 몽크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본인은 배트맨의 여자친구 같은 존재라고 주장하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의 왓슨과 같은 역이라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샤로나의 도움으로 몽크는 경찰청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면 상담을 해주는 사립탐정 역할을 하고 있다. 자, 그러면 셜록 홈즈에 나오는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필요하다. 몽크의 전 상관인 서장에는 스토틀마이어Leland Stottlemeyer (Ted Levine), 그의 어리숙한 경위 디셔 Randall Disher (Jason Gray-Stanford)가 그 역할을 아주 잘 소화하고 있다. 절대 미워할 수 없는 개성적인 이들 네 캐릭터가 하는 짓만 봐도 폭소가 터질 때가 있다.

    탄탄한 구성면에서도 드라마 몽크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을만 하다. 스토틀마이어의 요청으로 사건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워낙 사건을 몰고 다니는지라 혹시 몽크는 미국판 김전일인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허구한 날 밀실 사건만 다루는 김전일과는 다르게 드라마 몽크는 다양한 기법을 총동원한다. 어떤 경우에는 끝까지 범인을 밝히지 않아서 몽크와 함께 추리하게 만들지만, 대부분은 초반에 범인이 누구인지 시청자에게는 알려줘서 몽크가 과연 어떻게 범인을 찾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일면 단순해 보이던 사건도 한꺼풀 벗겨보면 그 사건 이면에 또 다른 사건이 있는 단순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으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탐정물 특유의 복선을 찌~인하게 드러내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고, 콜롬보 식의 사건 재연을 통한 연극을 함으로써 덫에 걸린 범인의 실수를 잡아낼 때도 있다. 

    이렇듯 드라마 몽크는 콜롬보나 김전일 식의 일률적인 공식보다는 다양한 구성과 기교를 동원한 탄탄하고 논리적인 드라마이다. 옆에서 장식 노릇이나 헛다리만 짚는 기존의 보좌역과는 다르게 샤로나는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제시할 때가 있다는 점도 인상깊다. (물론 대부분은 헛다리이다) 몽크의 논증, 직관, 감각, 추리력도 대단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정신적으로 정상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몽크가 가장 정상적인 정황과 행동 패턴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낸다는 것이다.

    몽크가 무서워하는 것들 ㅋㅋ

    위트에 대해서 말하면 간단하다. 몽크가 하는 행동이 재미있다. 강박증에서 비롯된 어리숙한 행동들, 다양한 공포증으로 인해 비명부터 지르는 전혀 탐정스럽지 않은 모습, 그 와중에 짜증내면서도 다 받아주는 서장과, 잔소리하면서도 끔찍하게 챙기는 샤로나, 그 샤로나와 티격태격하는 어리버리 디셔 경위까지 웃음이 피식피식 나온다. 몽크가 하는 행동은 (생긴 것도 그렇고) 자꾸만 유명한 코메디언인 미스터 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주 가끔, 몽크의 유난스러운 행동에 뒷골이 서늘한 이유는, 내가 저 인간보다 더 세균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_-; 강박증 때문에 거리를 다니면서도 기둥 등은 다 세어야 하는 몽크의 행동을 보면서, 매번 "그건 세균 덩어리야~ 기둥 좀 고만 만져~"하면서 괴로워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_- 하아...

    기타,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꼽는다면 역시나 잔인하지 않다는 점. CSI류의 드라마는 보면 재미있긴 한데, 좀 끔찍한지라 매번, 저건 분장이야, 피가 아니야 케쳡 케쳡, 이런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해서 한 편 보고 나면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그러나 몽크는 밥 먹으면서 볼 정도는 아니지만 잔인하지 않다는 점과 드라마 안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휴머니즘 때문에 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깔끔하다. 둘째는 영어가 클리어 하게 들린다는 점이다. 몽크가 상당히 말을 천천히 해주고 샤로나는 말을 짧게 해준다. -_-; 그러나 영어 공부용으로 좋은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몽크가 가끔 얼 빠진 듯 문법 다 무시한 말로 더듬 거리는게 있다는 점이 마이너스 요인. 마지막으로 드라마의 배경인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풍광. 작년에 한번 갔을 때는 폭풍이 불어닥쳐서 잘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는데 미국 여타 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풍취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중간 중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박증, 편집증, 결벽증, 공포증, 자폐증적 모습을 가졌지만 귀여운 몽크.
    21세기의 셜록 홈즈는 아마도 몽크의 모습을 띠고 있는 걸까.


    샤로나와 에이드리안왓슨과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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