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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절 맞이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1. 7. 17. 21:29
    기억력의 휘발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책을 읽기가 무섭게 무엇을 읽었는지조차 잊는 요즘입니다. 그래도 제헌절 63주년을 맞아 생각나는 책이 있어 이렇게 글을 끄적여 봅니다. (내용을 정리한 노트도 책도 지금 수중에 없어서 자세한 북리뷰는 힘들 것 같지만 말입니다.)

    전형적인 반골 학자인 한상범 선생이 쓴 <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는 헌법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헌법이 이루어졌고, 그 조문들이 품은 의미는 무엇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헌법을 대할 때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지남하는 책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민주정의 초석인 헌법이 제모습을 찾고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흩뿌려졌는지를 절절히 서술하였기에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무겁기도, 피가 끓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책은 한국의 현대사를 헌법 버전으로 엮은 글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한상범 선생은 일제잔재청산과 인권을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닌 학자입니다. 그야말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청산되지 않는 일제의 잔재에 대한 어마어마한 분노와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고통이 책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전 사실 헌법의 놀라운 논리정연함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는데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더 마음을 때렸습니다. 바로 이승만 정권부터 시작되고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 정점을 찍었던 헌법과 민주정의 파괴 부분입죠. 이들의 독재정치와 민주주의 괴멸 활동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유명한 유신헌법의 '유신'이 일본 무사도(혹은 군국주의)에 환장했던 박정희가 천황을 추대하는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던 유신지사에서 따왔다는 부분에서 정말 입을 다물 수가 없더라고요. 이러한 일제잔재와 독재체제에 대한 분노는 글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사실 학자 체면에 책에다가 욕은 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만 행간이 욕지거리로 가득 찬 느낌입죠.^^;

    다음은 우리나라 헌법과 법학 그리고 관료제에 남아있는 일제잔재에 대한 우려를 다룬 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일본 제국이 가장 군국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던 1930년대부터 1940년대에 이르기까지 일제 치하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친일파이든 친일파가 아니든 해방된 조국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48년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도 식민지의 제국대학을 나온 인텔리로서, 그의 친일 행적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그가 만든 헌법에는 메이지 헌법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의 헌법학과 헌법 사상, 헌법 제도에 남아 있는 메이지 헌법의 잔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일제 식민지하의 법학은 관료 양성과 관료의 민중 지배를 위한 기술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시민법학이 아니었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의 관리등용제도가 일제식 고등문관시험제도를 본뜬 고등고시제도를 따르면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한국 대학의 법학계를 지배한 주역이 일제시대의 제국대학 출신자나 고등문관시험의 등용문을 거친 친일관료였기 때문에, 일제 말기 전시하의 파시즘적·국권주의적 이론과 사상조차도 철저하게 비판·청산되지 못한 채 앙금처럼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건국 후에도 일제 법령을 그대로 사용하고 일본 법학 교과서가 그대로 쓰이게 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1970년 구미 유학생의 증가로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학문이란 원래 그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까닭에 아직까지도 쉽게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pp.34~5)


    책을 읽다보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가 헌법이 지탱하려고 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충분히 담고 있는 사회인가, 과연 담을 수 있는 사회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어떻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삶의 무게에 치어, 혹은 개인의 힘이 무력하다고 생각하며 간과하고 있는 것들의 중요성과 시민의식의 함양을 환기시킵니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포기하는 '참정권'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길거리를 행진하고, 이해 받지 못하고, 공격받고,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사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쓴 부분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 책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헌법, 그리고 헌법이 담지하는 정신에 대한 이해와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유합니다. 





    대한민국헌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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