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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휘, 번역. 그리고 ~ism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1. 8. 3. 02:29

    나도 어휘력이 삼성가 살림살이마냥 포실허니 그네들 지폐 내놓듯 어휘를 툭툭 꺼내놓을 만큼 풍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에 입각하여 적확한 말을 쓰려고 노력은 한다. 심지어 영어나 기타 외국어 사전보다 국어 사전을 들추는 빈도수가 높을 정도이다. 나같은 범인도 이러는데 하물며 번역가는 어찌해야 겠는가.

    내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오랜만에 번역이 거지 같은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잡쳤기 때문이다.(읽다가 번역자 소개를 들춰보고 한동안 분노를 곱씹었다) 안그래도 얼마 전 친구가 추리소설을 한 편 읽었는데 너무 오래된 번역인지라 '그 불쌍한 병신 계집은'
    (등장인물이 몸이 불편한 여성이었다고 한다) 같은 말들이 나올 때마다 흠칫 놀랬다고 했다. 이런 차별적인 폄의어가 옛날에는 별 거부감 없이 통용되었던지라 나와 내 친구는 '시대사조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상, 언어, 생활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번역도 시대에 맞춰 개역해야 한다'며 옛 번역의 허물을 덮어주던 차였다. 

    내가 읽은 글은 나츠메 소세키의 강연록인 '나의 개인주의'였다. 참고로 이 글은 2000년대에 번역된 책이다. 국문학과를 졸업했다는 양반인데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로 번역하기 보다는 대충 비슷한 말로 에둘러 표현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어휘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장의 이해도도 헬~이라서 나츠메 소세키의 글솜씨마저 비루해 보였다. 정말 구린 번역에 눈이 걸릴까봐 이대형 도루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글을 읽어내려가야 했다. 

    번역에 있어서의 적절한 어휘에 대해서 생각나는 것이 많은데 이왕 '개인주의'에 대한 글을 읽었으니 이 '주의'에 대해서 싸부랑거려야겠다. 예전에 ~ism(그러니까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의)의 범주에 얼마나 많은 맥락이 함축되어 있는지에 대한 논문을 읽었던 것 같은데 대충 기억나는 바로는 같은 종교에도 기독교는 Christianity라 일컫고 그 외의 종교들에는 ism을 붙여서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특정한 견해나 태도 경향 혹은 학설을 나타내는 ~주의로 이름붙인 것은 상당히 차별적이고 기독교중심적이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Buddhism(불교), Hinduism(힌두교), Judaism(유태교), Taoism(도교) 등등 굉장히 많다) 이런 것들이야 원래 동양에도 매치되는 단어가 있었으니 적절하게 '주의'라고 번역하지 않고 '교'로 번역했는데. 뜬금없이 Democracy에는 민주정이 아닌 '주의'로 번역해서 무언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같은 이데올로기성을 부과했다는데 그 문제가 있다. Autocracy(전제정), Aristocracy(귀족정) 처럼 cracy라는 어근은 '정체' '정치' '지배'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기에 '정'을 붙이는 것이 가장 적절한데도 민주정은 민주주의로 둔갑해서 '현재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니까 이 정치체에 도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승부이다' 식으로 잘못된 전제를 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반대를 민주주의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있고, 쯧쯧) 이 어휘부터 빨리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 음... 이 정도만 얘기해도 여기까지 읽으시는 분들은 다 이해할 것 같아서 급히 마무리 합니다. -_-; 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에는 totalitarianism 즉 전체주의에 반대되는 의미의 democratism 즉, 민주주의입니다.) 다만 민주정이라는 형태는 어쨌든 정치체제이기 때문에 개선, 변화의 여지가 있으며, 그렇기에 금과옥조처럼 지키기보다는 개선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의도에서 이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짧게 쓰고 자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새벽 2시가 넘었어요. ㅠ.ㅠ ~ism과 주의에 대해서는 나중에 날 잡아서 더 자세히 얘기해보죠. (더 얘기할 것도 없어보이지만 -_-;;; )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