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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맥베스 - 노무라 만사이 주연/연출
    오덕기(五德記)/日 2013. 4. 25. 00:25

    동생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 데 갑자기 동생이 능청스레 웃으며 물어본다.

    "노무라 만사이는 잘 있어?" 

    질문을 한 동생도 질문을 받은 나도 순간 민망함과 오글거림에 그만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다. 






    일본 출장을 앞두고 혹시 노무라 만사이가 쿄겐 공연을 하면 보러 갈까? 하며 웹서핑을 시작하기가 무섭게, 나는 비명과도 같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노무라 만사이가 무려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싶었던 쿄겐은 아니지만 그가 청년 시절부터 한결같이 추구해왔던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 중 맥베스였다. 그때부터 '가고싶어, 가고싶어'를 외쳤지만 뒤늦게 들어간 예매 사이트는 사석을 제외하고는 만석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신화 콘서트 기간과도 겹쳤던 터라, 둘 중에 어떤 공연으로 정해야 하는가에대해 고민해야 했고, 결국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과감하게 신화를 버리고 맥베스를 택했었다.


    그리하여 끈질긴 티켓팅 끝에 결국 공연을 며칠 앞두고 좋은 표를 구할 수 있었다. ㅠ.ㅠ 공연은 명동예술극장이었다. 나는 사실 연극공연은 즐겨보지 않는 터라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공연장 규모가 그닥 크지 않고, 객석의 높이도 1층은 살짝 낮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2층에서 관람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만약 외국어 공연이라면 자막 화면 때문에 발코니 석이 더 좋아보인다). 전반적으로 아늑하고 공연을 관람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었다. 








    명동에는 그닥 가본 적도 없고, 워낙 길치인지라 잠시 헤맨 후에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하도 두리번 거려서 상당히 외국인 관광객 느낌이 났을 듯 싶다. 외국인 관광객 헤매는 거, 나 헤매는 거 똑같아 bb). 마침 이쪽에 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함께 저녁을 먹고 공연 시간까지 노닥 거리고 있는데, 친구도 관심이 생겼나보다. 갑자기 자기도 보고싶다고 한다. 이미 표는 매진인지라 대기자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갔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삼라만상이 나오고, 돌고 도는 세상만사에 대한 온갖 상징적인 언설이 난무한 대사가 주문처럼 이어졌다. 맥베스에 대한 일본적인, 혹은 동양적인 변용이라고 할까. 계절의 순환에 대해 표현함으로써 맥베스의 흥망성쇠 혹은 생주이멸의 이미지를 담으려 하였고,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에 대해 이 또한 다를 것 없다는, 즉 미추선악 모두 매한가지라는 도가적 냄새도 풍겼다. 주인공 맥베스와 맥베스의 아내 역할을 제외한 기타 모든 인물은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맡았고, 무대도 단촐하여 딱히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직관적인 상징물, 빛과 소리로 서사를 이끌어 갔다. 

     

    내가 일반적으로 접하고 있는 일본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말의 상찬, 즉 모든 것을 언어로써, 그것도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고 상징적은 말로써 설명하려 든다는 점에서 이 맥베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특유의 일본 냄새가 확 나는 벚꽃의 흩날림과 색감, 쿄겐을 하는 연극인들의 몸동작이 일품이었고 5명으로도 무대가 꽉찬 듯한 느낌을 주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볼 만했다. 문제는 자막이 나오는 화면이 너무 조그맣고, 양쪽 끝에 붙어 있어서 자막을 읽으면서 무대를 보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그냥 자막을 포기하고 무대만 보고 있으면, 너무 대사가 어려워서 결국 다시 자막을 봐야하는 악순환이...-_-; 자막 때문에 눈 돌아가는 줄 알았다.


    끝나고 배우이자 연출가인 노무라 만사이와 관객과의 대화라는 코너가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관람하러 온 사람들은 이미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관람객들은... 나도 그렇긴 했지만 혼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무슨 카페 사람들인지, 대화명을 부르며 누구님도 오셨어요 저기 누구님도 오셨답니다와 같은 대화가 오고갔다. 나를 제외하고는 뭔가 덕후의 진한 내음을 풍기는 자들 뿐이었다. 마침 발코니 석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나와 저녁을 먹었던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공연 시작 5분 전에 전화가 와서 취소표가 생겼으니 보러 오라고 했다고. 친구와 나는 노무라 만사이의 인터뷰를 함께 경청했다.



    노무라 만사이는 참으로 곧바른 자세로, 진지하고, 솔직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무라 만사이가 맥베스라는 작품에 접근할 때 셰익스피어 시대에 사람들이 마녀,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을지를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현저히 다르다는 믿음에서 이 연극이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에서 심성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간과하는 관념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다시 탄복. 정말 난사람은 난사람이다.


    관객과의 시간이 끝나고 덕후들을 위한 포토타임도 있었다. 무지 민망했을 것 같지만 팬서비스로 <음양사>의 아베노 세이메이 포즈까지 취해주는 여유를 보였다. 친구는 이 공연을 하는 동안 인근 지역의 덕도(*주: 반경 1km내에 덕후 밀집의 정도)가 잠시 상승했을 것 같다고 놀리면서도 노무라 만사이의 공연과 그와의 대화 시간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물론, 계속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알고 왔냐는 둥, 우리나라에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는 둥 새로운 문화에 경이로움을 표했지만 말이다.





    아래는 포토타임에 동영상을 찍은 것이다. 중간에 음양사 포즈를 취할 때 너무 웃겨서 카메라가 심하게 흔들렸다. ㅋㅋ 나으 돼지 멱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서 배경음악으로 대체 -_-;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