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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히스토리에
    오덕기(五德記)/日 2013. 4. 14. 01:09

    평소 역사물 애호가인 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추천했던 작품이 바로 <히스토리에>이다. 그러나 그 추천에는 꼭 단서가 있었는데, 첫째는 연재 속도가 느림의 극치를 보인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생수>의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기생수>, 재미있기는 엄청 재미있는데 그림체가 영 받아들이기 어려운 데다가 사람 기분 나쁘게 잔인한 작품이라 결국 두어 권을 보다 말았던 터였다. 위의 단서 조항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으나, 최근 볼 만화책이 없다며 울부짖던 나는 결국 <히스토리에>를 지르고 말았다. 


    <히스토리에>는 마케도니아의 대제국 건설을 견인했던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더 대왕 부자의 개인 비서이자, 장군이자, 학자인 에우메네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플루타크 영웅전>과 디오도로스의 세계사책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에 매우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와아키 히토시는 알렉산더 대왕이 아닌 역사 속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에우메네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고대 마케도니아의 흥망성쇠를 다룬 <히스토리에>의 서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림 자체도 <기생수>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이고 세련되어졌다. 이야기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지역 유지의 똑똑하고 강한 둘째 아들이었다가, 일련의 사태로 노예로 전락하고,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의 비서가 될 때까지의 에우메네스 삶이 몰입감있게 다뤄질 뿐만 아니라,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등장, 알렉산더 대왕의 소년 시절과 출생의 비밀 등이 복잡하게, 그러나 스토리 자체는 매우 간명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번 책을 들면 거의 눈을 떼지 못하고 읽게 된다. 문제는 이게 2004년에 시작되었는데 이제야 7권이 나온 그야말로 1년에 한 권도 나오지 않는 극악의 연재 속도라는 것이며, 내용 상으로도 알렉산더는 아직 소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15년 정도는 더 있어야 내용이 마무리 되지 않을까...라고 예상하는 바이다. 


    솔직히 내게는 이 만화책의 연재 속도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잔인하다는 것이다. 피칠갑이 있는 잔인함이 아닌 인간성이 말살되는 듯한 기분 나쁜 잔인함이다. 특히 칼로 난도질 당해 죽어가는 여성을 강간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속까지 울렁 거리게 만든다. 그 잔인함이랄까 그로테스크의 백미인 부분이 몇 장에 걸쳐 진행되었던 뱀이 참수된 사람 머리를 삼키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한국에 7권이 정식 발매 되기 전에 영어로 번역본을 올리는 사이트에서 봤는데, 나 참, 아무리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끝없이 펼쳐지는 뱀의 사람 머리 빨아들이기 신공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게다가 또 어찌나 표정 일그러지는 부분까지 섬세하게 그렸는지 이걸 그리고 앉아있는 작가의 정신세계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기생수>를 소장할 정도로 사랑하는 친구와 이 <히스토리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론은 단 한가지였다. 이 작가의 작가로서의 역량과는 별도로 작가 본인이 잔혹함을 즐긴다는 것이다. 잔인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이 사람은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몸서리 치면서도 아마 다음 편이 나오면 이 책을 또 읽게 될 것이다. 그냥 서사만 볼 수는 없을까? 괴로워...ㅠㅠ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