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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부다페스트 - 유람선, 어부의 요새, 마타슈 성당, 그리고...
    여행/체코-헝가리 2020. 6. 2. 16:03

    유람선은 업체별로 선착장도 다르게 운영된다. 그 중에 7번 선착장에서 타는 레젠다(Legenda) 호는 다른 유람선보다 비싸긴 하지만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하다. 운영 시간을 확인해보니 얼추 시간도 맞아서 7번을 타기로 했다. (5500HUF) 한국어 해설도 있고, 샴페인이나 와인 등의 음료 한잔이 가능하다. 

    Dock 7 Jane Haining rakpart , Budapest 1051

    정작 가보니 우리밖에 없다. 운영하는 거 맞냐고 하니 맞다고 한다. 조금 기다리니 다른 가족들도 왔고, 배를 탈 때쯤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는 어디에선가 듣고 우측 맨 앞 자리를 맡아야 야경을 제대로 관람할 수 있다고 친구에게 얘기 했다. 친구는 명령어가 인풋 되면 굉장히 기민하게 움직이는 타입이다. 나는 어느샌가 사람들 틈에 밀려 뒤로 나가떨어졌는데, 친구는 입력된 명령어 대로 인파를 헤치고 맨 앞자리를 선점하였다. 굉장한 자리 다툼이 있을 줄 알았으나,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리 잡았고, 친구는 이 자리가 좋은 게 맞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따가운 눈총을 피해 음료를 고르자고 했다. 분위기 좋게 빈 속에 술 한잔 마시며 출항. 각 자리마다 다국어 음성안내기가 비치되어 있다. 가장 놀라웠던 건 선내에서 안내방송하는 직원. 다양한 언어를 훌륭한 발음으로 구사한다. 친구와 나는 언어천재가 여기있다며 감탄. 

     

     

    아래에서 한동안 음성안내기를 들으며 구경했다. 한국어 해설도 어색한 문장과 발음으로 이뤄진 구린 안내방송이 아니라 꽤 신경 쓴 고퀄의 안내였다. 이제 직접 강바람을 쐬보자는 마음에 2층 데크에 올라갔다. 바람이 쌩쌩 불어서 춥긴 하지만 맨 눈으로 아름다운 도나우 강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국회의사당의 야경이었다. 문득 울적해졌다. 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여행의 소중한 순간을 아로새길 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겠구나. 이제는 마냥 행복한 감정으로 보기는 어려운 풍경이 되었다. 유람선은 5월29일의 침몰 사고로 수색 중인 상류에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크게 한 바퀴를 돌아간다. 

     

    배를 다 타고 내리니 현실감이 없다. 숙소까지는 걸어가도 될 정도의 거리이다. 밤 10시에 저녁 식사 시간을 놓친 우리는 오는 길에 보인 맥도널드에서 감자프라이라도 먹을까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집에 들어왔다. 

    자다가 번갈아가며 배고프다고 잠꼬대를 한 것 같다. 친구는 본인도 적극적으로 식사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으면서 역시 명불허전 배고픈 여행사라며 구박했다. 같이 허기진 상태라 왠지 억울했다. 아직도 억울하다. 리스본에서 남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인당 에그타르트 네 개를 먹는다는 파스테이스 데 벨렘에서 친구는 기껏 장시간 기다린 후에 인당 한 개씩 샀다. 이건 생각할 수록 속상하다. 

    아침에 배고파서 일어났다. 우리는 얼른 준비한 후 무작정 나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쿠키는 왜 샀냐고 물으니 내가 굶길 때를 대비해서 당분 섭취를 위한 상비음식이란다. 억울하다며 펄펄 뛰었다. 

    사진 보니 또 먹고 싶네. 헝가리 스타벅스는 커피가 굉장히 맛있다. 기껏 여행지 가서 스타벅스냐고 하겠지만, 각 나라마다 다른 음식을 제공한다. 터키에서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스벅 샌드위치였던 기억이. 

    아침을 먹고 이번에는 어부의 요새(Halászbástya)로 올라갔다. 어부의 요새는 인파가 엄청나기로 유명해서 아침일찍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다. 사람들은 아침과 밤에 이 곳에 오르면서 시시각각 다른 경치를 감상한다는데, 이틀 내내 도나우 강변을 떠나지 못하는지라 이제 그만 봐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보니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크림 색 성채가 보이고, 그 위로 원추형 지붕의 둥근 탑 일곱 개가 우뚝 서 있다. 일곱 개면 보나마나 마자르 7부족이다. 뾰족한 지붕은 유목민족의 천막을 상징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어부 길드가 이 곳에서 도시를 방어하였기 때문에 어부의 요새라고 불린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장식적인 이유로 축조되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다. 우리는 연예인 누군가가 찍어서 유명해진 그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한국인 관광가이드가 자기 관광객들부터 사진을 찍게하려고 고나리를 한다. 그동안 잘 가꿔왔던 내면의 폭력성이 꿈틀한다. 친구의 얼굴에도 언짢음이 스치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는 놀이동산 같은 배경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줄을 놓았다. 리스본의 패턴 돌바닥만큼은 못 되지만 부다페스트에도 꽤 괜찮은 패턴의 돌바닥이 있다. 이 날 찍은 사진 대부분의 배경이 땅바닥이다. 

    바로 옆에는 마타슈 성당(Mátyás Templom)이 있다. 11세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14세기 후반에 고딕 형식의 형태를 갖췄으며 19세기 말에 복원했다고 한다. 이 성당은 헝가리의 국왕인 마타슈 후녀디의 이름을 딴 것으로 역대 국왕의 대관식 및 결혼식이 행해지던 장소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왕과 왕비인 합스부르크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의 헝가리왕 대관식도 이 곳에서 행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헝가리 사람들은 이 이국의 국왕 부처를 꽤 사랑한 듯 싶다. 도나우 강의 에르즈베트 다리(Erzsébet híd)와 자유의 다리(Szabadság Híd)도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를 기념하여 세운 것이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거리에도 뜬금 없이 이 엘리자베트의 애칭인 Sisi가 우산을 쓴 동상이 세워져있다. 

    오스트리아도 Sisi가 판을 치던데, 어쩌면 피지배국이라 할 수 있는 헝가리까지 Sisi가 있다니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감성이다. '엘리자벳'이라는 유명한 뮤지컬도 있는 것 보면, 명성황후 정도의 정서로 이해해야 할까. 

    마타슈 성당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

     

    어부의 요새의 뒤를 돌아 다시 강변으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우리는 머르기트 다리(Margit híd)쪽으로 향하였다. 머르기트 다리는 머르기트 섬(마가렛 섬)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으로 말하자면 전설의 성 요한 기사단이 12세기에 정착한 이후, 프란시스코, 도미니크, 프레몽트레 회등 온갖 수도회가 넘쳐나던 성스러운 섬이다. 머르기트라는 이름도 머르기트 공주가 이 곳 수녀원에 있었던데에서 비롯되었다. 음악 분수대와 워터 타워 등이 유명한, 부다페스트의 평화로운 공원 역할을 하는 하중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조기가 걸린 머르기트 다리

    섬 근처에는 거대한 크레인과 잠수부 등이 보였다. 강 하구쪽 보도는 통행을 막았고, 경찰 등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이때부터 떨어져서 걸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하였다. 강 건너편에는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과 대응반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꾸며져 있었다. 실종자를 찾기 바라는 소망이 담긴 글과 헌화와 초 등이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벌써 이 사건이 있은지도 1년이 넘었다. 현재에는 이곳에 추모비가 건립 중이라고 한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