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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화(여화余華)의 에세이를 읽다가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5. 13. 14:07


    약 한 두 달 전, 음악에 관한 책들을 찾으며 전자도서관을 둘러보다가 위화의 음악에 관한 수필집과 마주쳤다. 현대 중국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이 사람의 <허삼관매혈기> 를 풍문으로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의 음악에 관한 수필을 읽다가 그냥 원문으로 읽어볼까 하고 전집을 구했는데 목차에서 <인생(活着)>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 영화 <인생> 인가 하며 내용을 살펴보니 맞다. 수업 시간에 억지로 봤던 영화인데 꽤 인상이 깊었다. 사람이 이토록 힘든 삶을 놓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다만 견뎌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약간 중국판 <여자의 일생> 같기도 하였고. 인생이라는 우리나라 제목보다 '살아가기'라는 원제가 더 마음 아프게 와닿았던 이 영화의 원작자가 바로 위화였다. 

    전집의 목차를 보다가 끄트머리에 <한국의 눈>이라는 수필이 있어서 주욱 읽어봤는데 문득 울컥거림이 끼쳐온다. 이 사람이 한국에 방문하고 한국 사람들과 교우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글이었다. 

    이제 이 사람이 좀 궁금해졌다. 

    위화의 이력을 보니 옛날에 중국어 공부한답시고 시청했던 인터뷰 혹은 대담 프로그램 출연자가 그였다. 어떤 식으로든 접하기는 한 모양인데 당시에는 소설가 위화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나 보다. 그러다 더불어 알게 된 책이 <열 개 단어 안의 중국(十个词汇里的中国)>, 우리나라에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로 번역된 책이다.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전집에는 포함이 안 되어 있었고, 나는 금서 텍스트만 따로 모아두는 사이트에서 원문 파일을 구하였다. 수집욕이 강해서 이런 건 모아둬야 한다. 

    친구들에게도 추천해서 요즘 독서 모임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고 있다. 어제 <열독> 부분을 읽는데 묘하게 공감도 가고,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에세이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지 내용이 중구난방이기는 했다. <독서>라는 한국 제목보다는 정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는 <열독>이라는 제목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는 거의 모든 소설이 금지당하는 시절, 즉 문혁 기간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책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커졌다.  당시에는 마땅한 유희 거리가 없어서인지, 독서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대단했고, 그중에는 금지된 책이 있어 서로 돌려보거나 필사까지도 감행했다고 한다. 그렇게 돌려보다 보니 책이 훼손되어 내용의 초반과 결말이 뜯겨 나가 있었고, 위화는 안달 날 정도로 결말을 궁금해하다가 스스로 창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부분을 본 순간 괴테 어머니의 일화가 생각났다. 괴테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아들이 생각하는 결말의 여지를 주기 위해 클라이맥스에서 끊고는 했다. 괴테가 이야기의 끝을 스스로 구성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듯, 위화도 그랬었던 것 같고, 스스로도 결말이 떨어져 나간 책 읽기가 자신을 소설가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조카에게 책을 읽어줄 때 "뭐뭐 했습니다. 끝~" 이렇게 얘기하면서 책이 끝났을 때 조카가 가지는 안정감을 공유하곤 하는데, 역시 상상력을 키우는 방식은 위화나 괴테가 '당한' 독서법이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당사자가 책에 엄청 파묻혀서 읽으며 결말을 궁금해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리겠지만(역시 교육이고 나발이고 창의력은 천부적인 성향인 듯 ㅋㅋㅋ).

    의학서의 비밀 부분도 웃겼다(스포하지 않겠다). 초반에 잠시 언급되고 지나가는데, 나는 이 부분을 보는 순간 바로 뭔지 눈치챘다. 어렸을 적 학생 대백과 사전의 특정 부분을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있어서 말이다. 우리 집에 있던 의학서는 다 영문에 모노톤이라 안타깝게도 위화가 느꼈던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소설가 중에는 에세이만 봐도 빛을 발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소설이야 물론 잘 썼겠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