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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텔카스텐의 역효과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5. 18. 13:43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이라는 책을 읽었다. 분절된 글쓰기 방식과 기계적 번역에 고통당하면서(영어 번역본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손을 떨며 찾아 헤맸건만)도 방법론 자체에 대한 심도를 높이겠다며 꾸역꾸역 읽다가, 특정 부분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직관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벼락치기에 의존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결국 학습에는 실패하지만 계속해서 읽기를 반복한다는 뜻이다. 다시 읽기는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인정하듯, 우리는 벼락치기 공부로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단기간 저장할 수 있으며 대개 그런 식으로 시험을 치러서 합격할 정도는 된다. 그러나 벼락치기는 진정한 학습에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테리 도일과 토드 자크라젝의 표현처럼, "학습이 목표라면 벼락치기는 비합리적인 행위다."

    어떤 텍스트를 다시 보는 대신 탁구 한 판을 치는 것도 괜찮다. 사실, 그러는 편이 더 많은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운동은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전달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중략) 

    요약하자면, 단순한 다시 읽기는 이해나 학습 측면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것을 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이론의 여지가 있다. 

    가장 잘 증명된,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학습법은 상술이다. (중략) 상술한다는 뜻은 우리가 읽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다른 문제와 주제에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 다른 지식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숀케 아렌스 <제텔카스텐>, 번역 김수진 (밑줄은 내가 친 것)

    그냥 읽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운동을 하는 것이 뇌 활동에는 더 이익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뢰디거, 맥다니엘 등이 쓴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make it stick)>을 보고도 단순히 남들이 정해놓은 것을 순차적으로 읽거나 듣는 행위는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확인하고 Anki 등으로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쓴 적이 있다(Anki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그러고 보면 내가 학습법에 유행을 탈 때마다 덩달아 끌어들이는 '사람 1'과 '사람 2'는 무슨 죄인가 싶기도 하다). 제텔카스텐에서 구현하는 메모 적기/정리 방식은 Anki보다 한 단계 나아간 방식 같다. Feynman Technique과 Anki를 종합하여 뇌 밖에서 복잡한 관계망을 구성한다는 것이니.

    하여튼 제텔카스텐을 알게 된 후, 독서 등을 통해 습득한 지식을 모두 기록으로 '상술'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지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책을 읽으려는 경향성이 커졌다. 이를테면 평소에 좀처럼 안 하던 문학과 에세이 독서 비중이 많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탁구 치는 수준인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