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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十个词汇里的中国)>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6. 20. 13:53

    엄청 재미있게 읽은 책은 아닌데, 포스팅할 때마다 언급을 꽤 한 듯 싶다. 
    원제는 <10개 단어 안의 중국(十个词汇里的中国)>이다. 작가는 그가 고심 끝에 고른 10개의 단어로 그가 겪어온 중국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중국을 묘사하기 위해 고른 10개의 단어는 다음과 같다. 인민(人民), 영수(領袖), 독서(閱讀), 글쓰기(寫作), 루쉰(魯迅), 차이(差距), 혁명(革命), 풀뿌리(草根), 산채(山寨), 홀유(忽悠)가 그것이다. 책은 이렇게 번역했지만, 내게 번역하라고 하면 조금 다르게 할 것 같다. 민중, 지도자, 읽기, 쓰기, 루쉰, 격차, 혁명, 서민, 짝퉁, 낚기(뻥카) 정도로.  

    나는 중국어를 하는 사람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현대중국에 무심한 편이다. 피상적이고, 앎도 부족한데, 부정적인 감정까지 가지고 있다. 다만 이 부정적 감정은 일반 인간 개체나 집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치체제와 경직된 관료주의, 그리고 경쟁적 사회분위기와 지독한 자본주의 냄새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내가 느끼는 중국을 어느정도 비슷한 느낌으로 그려냈다. 오랜만에 접한 현대중국에 관한 책인데 아이러니라면 금서로 지정되어 정작 대륙에서는 읽기 어렵다는 것일 게다. 이 책을 금지한 당국이나 이 책을 작성한 위화나 모두 절절한 애국심을 뽐내는데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대만에서 출판되었고, 우리나라 같이 외국에서나 번역되어 볼 수 있는 책이 되었다. 

    후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위화는 숨기고픈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듯 현대 중국의 병폐와 맨살을 보여준다. 이런 게 중국에서는 금지이다. 집안의 수치를 공공연히 드러내면 집안 망신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듯이, 나라의 부조리를 얘기하면 출판이 금지된다. 내용이 과격하냐고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 뇌와 입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음직한 이야기를 했고, 신랄함도 없고, 심지어 풍자적이지도 않다. 작가는 꽤 부드러운 어조와 단조로운 문체로 담담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위화는 이렇게 해야 작금의 중국을 잘 이해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반석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싶다. 

    그렇다면 이 책을 남의 집안 흉보듯이 읽을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가 겪어온 중국의 병폐는 1950년 이후에 근대 국가가 된 나라라면 모두 겪었을 문제일테니 말이다. 한국도 독재와 자본주의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그 후폭풍까지 거하게 겪지 않았는가. 세상이 전복되고 후퇴하는 홍위병의 문화대혁명은 겪지 못했지만 비슷한 냄새가 풍기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새마을운동 키즈들이 태극기 집회하듯 말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보다 더 극단적인 국가이기는 하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선진국 따라하겠다는 욕구가 워낙 강했던 나머지, 사회주의적 복지 제도도 역시 매우 발달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꽤 많다고 해야 하나. 중국은 오히려 더 미국적이다. 빈부의 격차가 어마어마하고, 돈이 있음을 적나라하게 자랑하며, 사회적 안전망도 훨씬 부실하다. 함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고 한다. 나는 그렇진 않았다. 위화가 얘기하지 않았는가. 숲이 크면 모든 새가 다 그 속에 있는 법이니(林子大了,什么鸟都有).

    어떤 부분은 중국어로 읽기도 했다. 꽤 쉽게 읽혀서 내 중국어가 늘었나 생각했는데. 작가가 자기는 배운 게 별로 없어서 어려운 한자를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쉬워서 쉽게 읽혔나 보다. 흑흑. 그러다가 위화가 잘못 인용한 것이 눈에 띄었다. <홀유>에서 언급한 이백의 시 부분이었다.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의 유명한 시구 가운데 폭포를 표현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는 구절이 있다. 중국 문학사를 통틀어 뛰어난 상상력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시구인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시구를 놓고 이렇게 평가한다. "이백은 정말 홀유에 능한 시인이야."


    그러나 이백이 폭포를 보고 웅장함을 읊은 시는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이다. '흐르는 물이 날듯이 삼천자나 곤두박질치니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하다'는 뜻이다. 언급한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은 늙음을 한탄하는 시로 근심으로 백발이 삼천장이나 길게 자라 보였다는 것이다. 같은 삼천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헷갈린 작가는 이해가 가지만, 나같은 일개 외국인도 잡아내는 실수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출판된 것은 이상할 뿐이다.

    이 책의 백미는 서문과 후기였다. 장편을 밥 먹듯이 쓰는 작가에게 짧디 짧은 서문과 후기를 칭찬하면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특히나 후기를 보면서 이 책에서 거의 유일하게 먹먹하였다. 작가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그 외의 본문 내용은 말이 너무 많아서 계속 하나만 덧붙이겠다면서 내용이 길어져서 고통스러웠다. 거의 교장님 훈화 말씀 수준 ㅋㅋㅋ.

    이 책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거슬렸던 점은 바로 외래어 표기법이다(번역자의 잘못은 아니다). 난 국립국어원에서 지정한 현대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하는 방식을 극도로 혐오한다.

    이 책을 다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11년에 출판된 이 책 이후의 중국에 대해서 그는 무슨 단어로 묘사하게 될까. 나라면 아마도 무시무시한 느낌까지 드는 호전적 애국주의를 선택할 것 같다. 이 광증과도 같은 당금 중국의 애국주의를 애국심 쩌는 이 저자는 어떻게 바라볼까.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