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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배우는 중오덕기(五德記)/음악_공연 2024. 11. 7. 22:51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중국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중국 전통 악기를 배웠다고 한다. 내가 유치원 시절부터 배웠던 악기는 피아노였는데 말이다. 중국사람들은 이렇게 어려서부터 중국전통악기를 배우기라도 하는 건가. 우리는 고작 학창 시절에 단소 몇 번 분 것이 다인데 말이다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어찌 보면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이 그래도 더 자기네 전통문화를 아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지나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태극권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나는 사대주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라, 즐겨 듣는 음악도 클래식이고,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서양악기인데, 그나마 동양 악기로 좋아하는 것이 얼후이다. 오호 통재라 이 피 끓는 사대주의. 그렇다. 난 원래 얼후를 연주하고 싶었다. 즐겨 보는 중국 사극에서도 유독 심금을 울리는 음색은 죄다 얼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리 장바구니에는 얼후가 항상 담겨 있었는데, 이걸 사도 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계속 그런 상태였다. 그나마 우리나라 악기 중에서 음색을 좋아한 것은 대금이었다. 그러나 단소도 소리가 안 나는데 과연 대금이 소리가 날까 싶었다. 게다가 관악기는 관 안에 물이 차는 게 약간 저어 되었다.
마침 작년부터 봤던 공연 중에 해금이 꽤 껴있었다. 해금 음색은 얼후의 그것과는 너무 다르다. 바이올린과 첼로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첼로인데, 내 막귀로 듣기에 얼후가 첼로에 가깝다면 해금은 바이올린에 더 가까워서인 듯 싶다. 정말 미안하게도 꿩 대신 닭이지만, 한국에서 배우기에는 해금이 그나마 접근성이 좋았다.그리하여 8월에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마침 친구가 본인이 보관하던 해금을 더이상 연주하지 않는다며 선물로 주어서 매일 집에서 연습을 할 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악기를 배우면서 악기 자체에 이토록 불만을 가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와 해금 사이는 혐관이었다. 불만은 다양했다. 일단 음색은 위에서 이미 얘기한 바와 같고, 음역대도 좁다. 활을 다루는 것도 쉽지 않아서 더 개량할 여지가 많은 악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속주가 쉽지 않고, 역안법이다 보니 이거 손이 잘못되는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을 짚는 손가락이 아팠다. 게다가 정확한 음을 내기가 어려워서 나의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음감에 걸맞은 소리가 나지 않아 괴로웠다.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악기를 돈을 이렇게 내면서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나마 소리 내는 재미에 배웠다.
지금은 루틴이 되어서 매일같이 연습하고 있다. 악기에 대한 불만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완벽하다고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겠는가. 새로운 스킬을 배울 때마다 즐겁고, 하루라도 연습을 안 하면 불안하고 내가 내는 음에 재미를 느낀다. 예전에 기타를 치기 시작했을 때처럼 기타 치고 싶어서 미칠 것 같고, 집에 빨리 가고 싶을 정도의 열정은 아니지만 루틴처럼 매일 안 하면 약간 불안해하는 수준이 되었다.
언젠가는 음율에 조예가 깊은 해금인이 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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