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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교향시편 유레카 7 (Eureka Seven,交響詩篇エウレカセブン)
    오덕기(五德記)/日 2010. 4. 14. 15:34

    애니메이션의 OST가 유명해서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어떤 장르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완성도 높은 애니를 추천해달라는 글 댓글에 누군가가 추천한 교향시편 유레카 7, 덧붙여 내가 껌뻑 넘어가는 말, 종교적―그것도 불교적―코드를 담아냈다는 말. 그닥 좋아하지 않는 장르인 메카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덥썩 낚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1편을 보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고를 때―주로 충동적으로 고르긴 하지만―가장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주인공의 연령대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주공략 대상을 주인공의 나이로 상정하기 때문에 만약 어떤 애니의 주인공이 7-10살 정도라면 이 애니는 초딩이 보기에 좀 더 적절한 수준을 보여주곤 한다. 경험상, 대체적으로 주인공 나이가 15살이 넘어가면 나도 볼 수 있는 수준이 되긴 한다. -_-;;; 그런데 교향시편 유레카7은 주인공이 14살이다. 15살도 아니고 14살. 게다가 내 취향이 아닌 생김새의(라고 쓰고 못생긴이라 읽는다) 열혈 축구 소년 이미지. 살짝 고민을 시작했다. 버뜨 그놈의 불교적 코드라는 울림 때문에 시청은 계속 된다.

    50편을 숨가쁘게 달린 이후, 또다시 처음부터 재생되는 곰플레이어를 닫으면서 계속 "어 거 참, 어 참, 아 이 뭐랄까"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최근 본 애니메이션 중 데쓰노트 이후 가장 즐겁게 본 애니메이션이지만 (But, 그 사이에 본 게 별로 없다는 맹점이...-_-),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적 색채라는 말에 낚여 열심히 그쪽 방향으로 바라보려고 했던 내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과 에반게리온의 기시감으로 인한 불편함이 짬뽕되어 아주 복잡한 심정을 분출한 혼잣말이라 하겠다.

    아래에서는 유레카 7에 대해 내 나름의 시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는 모두 내 주관적인 생각이며, 나의 주관적인 관점은 '일반적인 관점'이 가지는 미덕은 눈꼽만큼도 없음을 주지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나의 주관이 일반적이라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_- 안다고 나도 안 다고!) 



    1. 초반과 중반 극 전개와 서술방식의 차이

         

    총 4기로 이루어진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초반 1기와 2기의 경우 주인공의 1인칭적 관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초반, 주인공은 자신의 심리를 누나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각자의 캐릭터들은 명언 제조기라도 되는 냥 교훈적인 이야기를 남발한다. 이에 비해 후반, 즉 3기와 4기는 그 다양한 명언 중에서 추리고 추려낸 몇 가지만 지속적으로 밀어서, 교훈을 주려는 시도에 심하게 닭살 일으키는 시청자를 그나마 배려한다. 또한 주인공 개인의 직접적인 심리묘사를 서술하기 보다는 대사로써 심리를 묘사하는데, 그 결과 캐릭터에 대한 친밀감은 상당히 떨어진다. 이야기 서술에 있어서도 관조적인 입장에서 줄거리를 전개해 나가는 (혹은 나가는 데 급급한) 편이다. 

    전반적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잔인함은 더해지고 내용은 힘을 잃는다. 후반에 갈수록 재미없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메카물의 본분을 망각한 데에서 비롯된다. 싸우는게 직업인 소년 소녀 전사들이 싸우기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2. 캐릭터의 외모의 변화      

    이 애니메이션을 보던 중, 여타 애니메이션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여자 주인공 에우레카 외모의 변화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카츄가 라이츄로 변화하듯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인간의 모습에서 멀어진다는 점이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그 충격과 배신감, 그 괴로운 감정을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끼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외모 변화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더 나아지거나 더 강해지거나 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주인공이 변화하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가장 익숙한 인간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인간과 거리가 먼 형태로 변하면 시청자는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변화와는 별개로 에우레카의 내적인 면은 인간적으로 변한다) 나는 그 거부감을 달래기 위해서 '아, 이것도 '불교적 코드' 인가. 모든 것은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사라진다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개념을 다루려는 건가!' 하면서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짓거리를 하기도 했다. 


    3. 소년과 소녀, 역학 관계의 역전과 행동 변화       

    외모의 변화와 함께 또다른 주요한 변화는 주인공 캐릭터의 행동의 변화이다. 역시나 진화하거나 잠재력이 폭발한다는 식의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부정적인 경향을 띤다는 건 아니다)  

    먼저 가장 주요하게, 전사의 역할을 해야하는 소년과 소녀 주인공들은 더이상 싸우기를 거부한다. 여기에서 시청자의 어처구니는 삼만리 밖으로 날아간다. 메카물의 주인공이 싸우기를 거부하다니 말이다. 렌턴은 자신이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여가고 있었음을 깨달으면서 더이상 싸우기를 거부한다. 한편, 그들의 로봇 동료 (즉 니르바슈 -_-)와 직접적으로 소통이 가능했던 에우레카는 소통 불능 상태가 되면서 아프고 약해지고 그 빛을 잃어가고 더불어 전투력도 잃어버린다. 이전까지만해도 웃음도, 분노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던 에우레카를 이런 감정을 가지게 만든 남자 주인공 렌턴은, 이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 그리고 심신이 쇠약해진 에우레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초반 더 강한 전사이자 더 우월한 위치에 있던 에우레카는 점차 수동적인 여성상을 구현해 나가고 렌턴은 심약하고 무능한 소년에서 강하고 유능한 전사가 되어간다. 아마 이러한 변화에 찌질이 남자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했던 수백만 남성팬들이 떨어져 나갔을 게다. -_-;

    그러나 전투를 회피하는 전사들이라는 메카물의 정체성을 망각한 주인공들의 행동 변화가 부정적으로 비치지만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행동 변화 자체가 이 애니가 가지는 주요한 주제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마지막 즈음에 나왔던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 장면(2차세계대전 당시 사진의 오마쥬이다). LFO를 조종하다가 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생명에 대한 인식과 전쟁으로 황폐하고 고통받는 민중들에 대한 묘사. 여타 주인공 원맨쇼의 메카물이 간과하기 쉬운 휴머니즘이 이 유레카 7에서 관통하고 있다. 

    비록 재미는 잃었지만 메세지는 전했다고 해야하나. -_-;








    4. 종교적/상징적/과학적 코드들      

    이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종교적/상징적 코드 들을 여기저기에 설치하고 있다. 대놓고 보여주는 무지개, 숫자 7, 아미타 드라이브, 연꽃, 보다락교 등의 상징과 그 보다 한 단계 아래에 숨겨진 그레이트 월, 니르바슈, 스카브 코랄, 그리고 스카브 코랄과의 융합이라는 종교적 상징성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테면 아미타 드라이브와 랜턴 그리고 에우레카가 융합하여 그 힘을 발휘했을 때 나타나는 세븐스웰 현상, 그리고 무지개빛. 이는 하늘과 땅, 혹은 현세와 낙원이라는 두 세계를 잇는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대우주를 상징하는 숫자 7과 함께 이렇게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연결되는 상징이나 세계의 태고적의 형상을 표현하는 요소는 애니메이션에 산재해서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연꽃과 그레이트 월이다. 인도 브라만교에서는 연꽃을 우주가 존재하기 전의 혼돈의 바다를 떠다니다가 솟아나온 우주라고도 하고 혼돈의 물 밑에 있는 정령의 배꼽에서 연꽃이 솟아났다고도 하여 우주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다. 이를 세계연화사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상은 불교에서도 받아들여져서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 화생의 의미와 연결되기도 한다. 사쿠야와 보다락 고승 노르브가 연꽃 속에서 융합하여 그레이트 월로의 길을 열어주는 이야기는 이 연화 화생론과 연결된다. 

    그레이트 월의 경우 좀 더 극명하게 불교적인 색채를 띤다. 즉 그레이트 월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불교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차안과 피안을 나누는 경계이다. 이 경계에서 저 경계로 갈 때, 특히나 깨달음의 경지나 서방정토 세계로 갈 때 불교에서는 수레를 타고 간다고 표현한다. (알다시피 대승불교니 소승불교니 모두 수레에서 나온 말이다) 이 때 수레의 역할을 하는, 즉 중생을 저쪽 세계로 태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니르바슈이다. 니르바슈는 불교적으로 얘기하자면 깨달음의 세계, 서방정토 극락의 세계로 우리를 날라주는 큰 수레의 상징물이라 보면 되겠다. (게다가 니르바슈의 이름이 니르바나, nirvana 바로 열반, 해탈 등의 단어 중 앞 글자를 땄다는 것도 그 상징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워우, 하나하나 다 쓰려니 너무 힘들어서 대충 짚고 넘어가겠다... -_-; 스카브 코랄이 모든 것을 융합하는 이야기는 인도 브라만 교의 범아일여 사상, 브라흐만 사상 등을 담는 것처럼 보였다. 보다락교는 티베트 불교에서 그 모티브를 딴 듯 하다. 특히 중국 공산당에게 핍박받고 있는 상태의 그것이라고 해야하나. 그 모습은 특히 보다락교의 성지를 보여줄 때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바로 포탈라 궁과 차마고도를 의식한 듯한 장면이 그것이다. 




    이런 종교적/상징적 코드에 여러가지 과학적 코드들(즉 스카브 코랄과 그레이트 월을 설명할 때 빅뱅이론, M이론, 평행우주 이론 등이 대놓고 가미되고 있다)을 짬뽕해서 버무림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5. つづく      


    디스토피아? 아니 유토피아
    유레카 7이 보여주고 있는 1만년 후 미래의 모습은 어둡기만 하다. 여러가지 재난 등에서 안전하지 않은 세계, 세 명의 현인이라는 작자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삼두정치, 그리고 그것마저도 군부의 힘에 의한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고, 군부는 언론 통제와 프로파간다 등을 통해 정보를 왜곡하고 사람들을 살육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쟁의 참상과 생체실험이 비견되는 마루타, 절망병의 창궐, 결국 몇몇 뜻이 있는 자들의 봉기, 그러나 결국에는 동족 상잔일 뿐인 결과. 어둡기만한―그리고 사실상 현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희망이 던져지는데, 바로 니르바슈를 타고 다른 세계로 넘어간 렌턴, 에우레카, 그리고 아그들이 있기 때문이고, 타이호의 뱃 속에 있는 아가, 그리고 개과천선하는 아네모네가 그것이다. 

    프로듀서의 센스 
    내가 프로듀서의 센스를 감탄했던 부분이 바로 츠즈쿠(계속, to be continued) 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남자 주인공 랜턴이 맨 마지막 부분에 '츠즈쿠',라고 말하는데 그 말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감정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었다. 특히 주인공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의 무음 처리와 랜턴과 에우레카가 마음이 하나 되었을 때부터 둘이 함께 부르짖는 츠즈쿠 속 다양한 감정은 상당히 인상 깊었고, 프로듀서의 센스를 한 껏 느낄 수 있었다.

    작화 
    작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전투 장면과 LFO 및 보드의 비행장면은 정말 그간 봤던 메카닉 물 중에서 첫째 둘째에 손꼽힐 만큼 대단했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려내는 비행 장면은 그간 미아쟈키 하야오의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게다가 디지털의 냄새가 좀 덜 하면서 정교하고 복잡다단한 묘사와 색감은 별 다섯 개를 줘도 부족할 판이다.

    OST
    유명하디 유명한 OST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사실 opening과 ending 들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soundtrack들은 상당히 잘 만들었고 적절하다고 평하고 싶다.  

    영화
    이 애니메이션을 다 본 지가 한 달인데, 이제야 이 포스팅을 하는 까닭은 유레카 7의 영화판도 보고 글을 써보겠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이 실망해버려서 그간 가지고 있었던 유레카 7 애니메이션에 대한 좋은 감정까지 한 방에 날려버렸다. 젠장, 차라리 보지 말걸...ㅠ.ㅠ 그래서 사실 유레카 7에 대해서 더 할 말이 많았는데(지금도 충분히 말이 많다고요? ㅠ,ㅠ) 이쯤에서 글을 닫을까 한다. 사실 이제 내용도 기억이 안 난다. -_-;;;


    뱀꼬리 1
    유레카 7은 상당히 세심하게 계획된 정성이 듬뿍 들어간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화를 볼 때면 오로지 이야기 전개에 천착했던 1980-90년대 초반식 애니메이션이 그리워진다.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보다, 혹은 뭔가 대단한 세계관을 담지하는 것보다는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와중에 문뜩 가슴 섬칫하게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양면성이나 부조리 같은 거, 이런 게 그립다. 난 이런 점에서 에반게리온 이후에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애니메이션계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달갑지만은 않다. 아니 뭐 그렇다고. -_-; 

    뱀꼬리 2
    요즘 왜 이렇게 글 쓰기가 싫지...-_-;;; 아, 에우레카의 모성, 아네모네 커플, 그리고 빅뱅이론과 막이론이 그레이트 월과 스카브 코랄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자세히 써보려고 했는데... 여기까지도 간신히 썼다. -_-;;;; 
    여기까지 보신 분께 박수...ㅠ.ㅠ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