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ichael Sandel교수의 강의를 시청했습니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합니다.
"당신이 운전하는 전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그대로 가면 다섯 명의 사람이 죽게 되고 방향을 바꾸면 한 사람의 인부가 죽게 된다. 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학생들 대다수가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의 인부를 희생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마이클 샌들은 이 이야기를 다양한 버전으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어 냅니다. 학생들은 문제가 변형되면 될수록 생각이 변합니다. 그런데 제 의견은 한결 같더라고요. 다섯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거죠.
어쩌면 <정령의 수호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한 나라의 왕자가 있습니다. 그 왕자에게는 나라를 통째로 가뭄의 고통으로 몰아넣을 지도 모르는 요물이 붙어 있습니다. 그 요물을 처치하기 위해서 그의 아버지인 왕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왕자의 어머니는 모성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결국 아들을 한 호위무사에게 맡깁니다. 호위무사는 이 왕자에게 붙어있는 요물이 수많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전심전력을 다해 왕자를 지킵니다.
눈 앞에 있는 한 사람의 목숨과 잠재적으로 희생될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 하는 상황인거죠.
저 또한 이 호위무사와 지향하는 바가 같았습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표방되는 공리주의는 개나 줘버려~까지는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것들은 셋이 하나보다 크지만 사람의 목숨의 무게는 간단히 수량화 할 수 없는 거니깐요.
그래서 그랬을까. 유독 이 말없고 표정도 없이 묵묵하게 책임을 다하는 호위무사에게 정이 가더라고요.
'무엇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하는 이런 근원적인 철학 문제야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소설의 몫이겠지만 <정령의 수호자>는 애니메이션 자체만으로도 찬사를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봤던 작품 중 첫째로 꼽는 것은 <카우보이 비밥>인데, <정령의 수호자>는 제 마음 안에 쌓아놓은 <카우보이 비밥>의 아성을 무너뜨릴 정도로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다 보고 나서는 제가 살아 있음에, 그리고 우연히 이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음에 천지신명께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깐요. 감히 말하자면 90년대에 <카우보이 비밥>이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정령의 수호자>가 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실 <카우보이 비밥> 이후 최근까지 본 작품 중에서 가장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본 애니는 <십이국기>였습니다. 그런데 <정령의 수호자>는 동양적 판타지라는 세계관적 측면이나 스토리의 탄탄함이라는 면에서 <십이국기>와 비견되겠지만 애니메이션 자체만 두고 봤을 때는 <십이국기>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십이국기>와 <정령의 수호자>는 모두 동양적 형태의 새로운 세계를 상정해놓은 환타지물입니다. 한두 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세계관이죠. 그 세계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십이국기>가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주는' 방식을 택했다면 <정령의 수호자>에서는 A에 대한 설명, A+B에 대한 설명, B+C에 대한 설명식으로 중첩하여 이야기를 덧붙여 나감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딱히 세계관이 설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도 못한채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계의 형태에 젖어들게 그리고 익숙하게 만듭니다. 상당히 세련되고 절묘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죠.
애니메이션 작화야 취향을 타기 때문에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지만 괜찮았다(혹은 굵고 강렬하다-윤곽선을 강조하는 모양이 일본의 판화를 생각나게 하더군요) 정도의 느낌을 받은 <십이국기>에 비해서 <정령의 수호자>는 보는 내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화면을 만들어 냅니다. 아름다운 경관, 특히 하늘의 구름, 2D와 3D가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화. 부드럽게 표현되는 인물의 표정 변화. 전투 장면에서의 생생함과 파워. 정말 공들인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습니다. 한 편 한 편이 영화 같았다고 하면 적절한 표현이 될까요.
처음에는 이 애니메이션을 영어 더빙판으로 보다가 마지막 3편 정도는 일본어로 시청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다 본 후에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2편까지 보고, '칭송받는 자'를 다 보았는데, 다시금 <정령의 수호자>를 보면서 눈을 정화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되더라고요. -_-; 이번에는 처음부터 일본어로 시청 중입니다. 성우 연기도 잔잔하고 차분해서 참 좋네요.
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리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