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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백성귀족/은수저오덕기(五德記)/日 2013. 1. 14. 22:20
갑자기 들어온 만화책 추천.
그냥 심드렁하니 듣고 있는데, 작가 이름이 익숙하다.
혹시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라고 물으니 그렇댄다.
난 사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작품을 지은 사람의 후속작에 대해서는 우라사와 나오키 정도가 아니면 기대하지 않는다.(일반적으로 아무리 천재라 할 지라도 천재성이 반짝 거리는 작품은 일생에 하나 정도더라. 대표적인 사람이 레이 황의 <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그러나 그 다음에 한 말에 강하게 이끌렸다.
"둘 다 본 내 동생이 그러는데, <강철의 연금술사>보다 낫다고 합디다."
그래, <강철의...>는 설정 자체는 천재적이었지만, 내용 전개는 매우 논리적이고 계산적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천부적인 재능만을 믿고 마구 휘갈겨 쓸 사람은 아니니 후속작도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하던 차였다.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친구가 보고 있는 만화책 작가 이름이 또한 익숙하다. (그러고 보면 난 이름이 석자가 넘어가면 좀처럼 기억하지를 못한다) 어, 이 사람 그 사람 아니야? 하면서 만화책을 빼앗아서 책날개를 펼쳐봤다. 아니나 다를까, <강철의...> 작가이다. 내용을 들어보니 이미 추천 받은 만화책과 연결되는 것 같다. 집에 가서 바로 만화책 두 종류를 다 질렀다.
먼저 읽은 것은 강추를 받은 <은수저>.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도대체 어디가 <강철의 연금술사>보다 낫다는 거냐!!! 하면서 불을 뿜었다.(비슷한 점이 있다면 둘다 제목에 금속이 들어간다는 거?) 취향의 문제이긴 하지만 재미나 흡인력 면에서 두 작품은 차이가 많이 났다. 이 만화는 아무 꿈 없는 고등학생이 농업고등학교에 가서 좌충우돌하며 겪는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소년의 성장기라는 측면에서 최근에 읽었던 <3월의 라이온>과 비슷했는데, <3월의...>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때리는 울림 있는 감성코드를 가졌던 데에 비해 <은수저>는 차분하고 논리적이었지만 (가축의 생명에 대한 아픈 심정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에게 좀처럼 공감이 가지 않았다. 3권 즈음에, 주인공이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평가를 듣고서야, '아 맞네. 좋은 사람이네.'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을 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이 작가는 주인공 캐릭터는 참 못 살린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는 강력한 서사에 주인공을 희생시키더니, 이번에는 에피소드와 지독한 휴머니즘에 주인공이 파묻혔다. (진정 그는 가축의 노예였던 것인가!)
어찌되었건 살짝 실망한 상태에서 꺼내들은 백성귀족은 의외로 유쾌하고 즐거웠다. 농가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농업에 종사하고, 만화가가 되기 전 7년 간은 전업농민으로 뛰었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유쾌한 일상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매체로는 한번도 접해 보지 못했던 농민의 삶, 낙농인의 삶, 그리고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는 고달픈 삶 속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농자천하지대본의 자부심에는 괜히 숙연하여 고개가 숙여지기까지 했다. (이 말만 듣고 만화책 보면 도대체 어디가 숙연하다는 거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ㅎㅎ 사실 만화에는 농사꾼의 징징거림과 패기, 그리고 패악과 아전인수가 난무한다)
생각해 보면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는 내내 나를 괴롭혔던 지독하게 인간만을 소중히 여기는 휴머니즘도, 그녀의 농민으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귀엽지만, 사람을 잘 따르지만, 사랑스럽지만, 인간을 위해 분골쇄신 했지만, 맛있기에 먹는 가축.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자연.
잡설이지만, 어쩌다보니 내 주변에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나 식량무기론을 부르짖으며 식물공장을 세워서 치세에는 돈을 벌고 난세에는 자급자족하겠다는 사람들이 드글거리는데, 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픈 만화책이다. 백성귀족으로 살기 위한 간접 경험을 해보라며. (그런데 1권에 나오는 홋카이도 토카치 팥으로 만드는 아카후쿠 떡은 도대체 무슨 맛일까? 이 책 읽고 그거 먹어보고 싶은 사람은 나뿐인가?)
그런데 이제 나는 무슨 만화책을 읽어야 하지? 우라사와 나오키의 빌리 배트는 별로 재미가 없다...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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