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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츠메 우인장, 소통, 그리고 시 두 수
    오덕기(五德記)/日 2010. 10. 18. 01:39
    여행 가는 이유는 참 다양하죠. 전 주로 사람이 만들어 낸 인공물들, 즉 역사유적이나 박물관, 미술관의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떠납니다. 역설적인 것은 그토록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사람들 자체로부터는 떠나려 한다는 것이겠네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최소한의 교류만 하면서 (혹여 저와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행자와 조곤조곤 보내는 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현지인 혹은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요즘 인기 있는 여행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죠.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입니다. 짧지만 또 그래서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처음 이 시를 봤을 때 아무 의심없이 '소통'을 갈구하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라니 말이죠. 그런데 역으로 '섬'을 수많은 사람들의 부대낌 속에서 나만이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외로운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여행을 갈 때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 사이에 있기에 겪어야 하는 온갖 속박들, 그 무거운 여장을 풀어헤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게만 (혹은 내게 의미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 공간, 그리고 그 시간. 


    이상하게도 '나츠메 우인장'을 보면서 이 시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도 '고립'이라는 측면에서도 말입니다. 

    너와 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세계의 것과 저 세계의 것, 과거와 현재, 기억과 기억. 그리고 이 마음과 저 마음이 닿거나 멀어지는 순간.
     
    나츠메 우인장의 소소하다면 소소하다 할 에피소드들을 한 편 한 편 보다 보면 '소통에 대한 간구'와 '관계로부터의 회피 혹은 떨쳐버림'같은 심정이 씨줄 날줄로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나츠메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처음, 나츠메는 자신의 그 저주받은 능력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심받고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것에 괴로워 합니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이해 받지 못하고 점차 이해 받기를 포기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켜가죠. 외로움이 당연한 듯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러나 끊임없이 외로워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츠메가 남(요괴+인간)을 대할 때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호의적입니다. 친절하게,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줍니다. 나츠메는 인간과 요괴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통을 두려워하는만큼 소통을 원하고 있죠. 양쪽에 손을 뻗고 따뜻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나츠메는 착한 아이니깐요.  

    아이 
    - 김남조

    지나간 연분들과의 사이
    못다 푼 실타래의 심사(心思)를 
    나는 「아이」라 부른다
    몸 다친 아이,
    마음 다친 아이,
    할 말 많은 아이와
    전혀 말 없는 아이.
    자라지 않는 아이와
    성급히 늙은 아이,
    저마다 얼마간 비극적인 건
    피와 살을 준 내 탓이다
    엄마 탓이다

    나의 아이들아
    나의 아이들아
    그리고 또 나의 아이들아

    자신의 할머니가 인연 속 못다푼 응어리들이 낳은 아이들을 하나씩 어루만지면서 나츠메는 또다시 자신의 아이들을 만들어 갑니다. 어느 정도는 비극적일 수 있겠죠. 엄마는 소통을 두려워하고 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게 된 불완전한 존재이니깐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고마워하겠죠. 눈물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으니깐요. 




    나츠메는 요괴를 보기 싫기도 하지만 정작 못 보게 된다면 슬플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특히, 그 마음 속 세찬 일렁임이 잘 드러난 부분이 '반딧불이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바로 눈 앞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항상 이야기하고 감지해왔지만 사라지는 것들. 그 소통의 아쉬움 속 바르르 떨리는 감정. 그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속깊은 나츠메가 있어 이 애니메이션은 참 상냥합니다. 그리고 이 인연들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행복해 하는 요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이 애니메이션은 참 따스하죠.  


    나도 좋아해.
    상냥한 것도
    따스한 것도
    서로를 끌어당기는 무언가를 바라며 열심히 살아가는 마음을 좋아해.
    - 제비의 대사 중 (제비편 (6편))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