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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8. 25. 17:10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결론부터 세 줄 요약
    1. 내 모토가 죽은 사람만 덕질하자였는데, 죽은 사람 덕질도 위험할 수 있다는 엄중 경고.
    2. 듀이의 십진법으로 생물과학에 분류되어 있지만 생물과학책은 아니다.
    3. 같은 것을 접해도 입장 차에 따라 지독하게 분기한다. 청교도와 진화론의 끔찍한 혼종



    이 책은 요동친다. 마치 진자가 오가듯 한 사람의 삶 자체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최고점에 오르다 나락으로 가기를 번갈아 한다. 그 변곡점마다 책이 서술하고자 하는 인물이 아닌 작가의 삶이 아로새겨진다. 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곁가지가 따라붙어서 내가 지금 무슨 장르의 책을 읽는 거지라고 의심을 품을 때쯤 거대한 흑막을 열어준다. 어찌 한 사람의 평가가 하나뿐이겠는가만은 한 사람의 삶이 가져오는 다양함이라는 가능성에 경탄을 하게 된다. 

    함께 읽은 사람 중 누군가는 처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학자가 바늘로 생선을 꿰는 모습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했고, 친구는 생선구이가 먹고 싶다 했고, 나는 포르말린 성분을 함유한 물체를 저렇게 손으로 만져도 되는 것인가 궁금해했다. 역시 한 장면을 보면서 사람마다 느끼는 감성이 이토록 다르니 이게 현실이 아닐까.

    3장 신이 없는 막간극에서 저자의 아버지, 즉 수전증이 있는 생화학자의 언설은 나의 생각과 일치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거나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내세도, 운명도, 어떤 계획도 없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이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고 자신도 의미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정에 맞서 자신을 달래기 위해 상상해낸 것일 뿐이니까.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There is no point. There is no God. No one watching you or caring in any way. There is no afterlife. No destiny. No plan. And don’t believe anyone who tells you there is. These are all things people dream up to comfort themselves against the scary feeling that none of this matters and you don’t matter. But the truth is, none of this matters and you don’t matter)

    다만, 나라면 그렇기 때문에 개체의 존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도출해서 그것을 굳이 청자에게 특히나 딸에게 얘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실천 방식은 또 나와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이것이 진정한 에피쿠로스적 실천가 아닐까.

    4장 꼬리를 좇다라는 부분을 보면서 어쩌면 분류학은 내부적으로 가장 지속성, 계통성, 계속성, 일관성이 모두 떨어지는 학문이 아닐까 싶었다. 크게 분류해도 의미 없고, 세분해서 분류해도 의미 없고, 그냥 분류하기만 해도 그것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말이다. 평소 물질적, 비물질적인 것들을 가리지 않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나 같은 인간은 이 책을 읽으며 약간 자각과 자성의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혼돈을 정리하려고 했던 데이비드도 나 같은 성향이 극단까지 밀어붙여진 사람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는다. 스탠퍼드 시절 그가 어류 분류를 위해 돌아다니면서 이름을 짓는 모습과 묘하게 식민지 열강의 모습이 겹쳤다. 이름 짓는 행위가 가진 소름 끼치는 저열함에 치를 떨며 보았다. 작가도 이런 감정을 환기시키고자 한 것 같았다.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혀에 닿는(책에서는 닫는 이라고 맞춤법 오류)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이 책에서는 진화론과 아가시-데이비드 스타 조던으로 연결되는 분류학의 대결도 꽤 중요한 주제이다. <종의 기원>에서 말하듯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한 가지 시원의 형태에서 분기하였다는 내용은 분류학자가 받아들이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관념일 것이다. 분류학은 종들이 불가분한 확고한 범주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밝은 눈으로 구분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배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너무나도 성공했고, 각 종의 불확실한 회색지대적 영역을 관찰할 수밖에 없던 조던도 결국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고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데이비드가 받아들인 진화론, 혹은 아가시가 생각하는 생물 분류학은 "자연 속에 사다리가 내재해 있다는 믿음. 자연의 사다리. 박테리아에서 시작해 인간에까지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는 신성한 계층구조"로, 굳이 표현하자면 불교의 수직윤회론과 비슷하다. 수직 윤회론은 신부터 미물까지 계층이 있고, 전생에 쌓은 업에 따라 수직적으로 이동하며 윤회한다는 이론이다. 즉,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분노하거나 어리석어 아둔하면, 이 사람에게는 동물적 속성이 보다 강하게 작용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무게 중심이 옮겨지면서 환생할 때 동물이 된다는 것이다. 또 지적이며 너그럽고 선함이 견고하면, 신이 될 수 있다."

    불교의 (수직적)윤회론도 위험하지만 청교도적 진화론도 위험하다. 청교도적 진화론자는 결국 "자연의 질서에 관한 믿음을 칼날처럼 휘두르며 인류를 구원할 가장 건전하고 유일한 방법이 불임화라고 선전"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다윈은 참으로 깨인 사람이다.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니 말이다. 사실 요즘 계속되는 기후 변화에 의한 지구 멸망의 위험성 얘기도 실상 지구의 문제라기보다는 기껏해야 인류의 문제 아니겠는가.

    우생학으로 고통당했던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찾아가 보는 12장. 민들레를  보면서 나는 그만 울컥 눈물을 쏟고 말았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나 때문이지"라는 애나와 메리의 관계성 덕분에. 그리고 아파트 접수계원 애버니 덕분에 말이다. "서로 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라는 말 얼마나 근사한가. 현재의 미국도 궁금해졌다. 우생학으로 인한 불임화와 현재의 낙태 금지법. 청교도의 앞면과 뒷면이 살아가는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데이비스 스타 조던의 이야기와 역시나 녹록치 않은 저자의 이야기가 씨줄 날줄처럼 얽힌다. 그래서 놀라웠다. <Are you my mother: Comic Drama> <fun home>의 저자인 엘리슨 벡델의 괴기 발랄함도 떠오르고 말이다. 

    최근 읽었던 책 중 가장 놀라워 하며 즐겁게 읽은 책이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