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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최은영 <밝은 밤>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3. 5. 8. 17:19

     

     

    나는 좀처럼 소설은 읽지 않고 한국 소설은 더욱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최근 한국 소설을 줄줄이 읽게 되었다. 즉 나의 의지에 반해서 읽게 된 책이라는 뜻이다.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최은영 <밝은 밤>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2023.05.08 -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 [책]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지연의 <마음에 없는 소리>
    단편집 모음이었다. 현실성과 생활감이 돋보여서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거기가 끝인. 나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류의 소설을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오히려 이질감도 느꼈다. 그 나이 또래, 혹은 그보다 젊은 여성들의 감성을 그득 담고 있었다. 다만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어휘를 반성적인 느낌도 없이 중립적으로 사용했는데, 굳이 이런 거 넣었어야 했나 싶다. 
    책에서 얘기된 <마음의 진화>라는 책에 꽂혀서 구입하게 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면 소득.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보는 내내 나이 계산이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일단 74년에 열살이었다고 하니 65년생 정도인데, 길수오빠와 열 살부터 40년 동안 어색이면 50인데
    엄마가 80이고 40에 애를 봤다면 이 사람 나이도 40이어야 하고 블라블라) 
    뭐 어쨌든, 모친상 서민의 질박한 삶을 그린 것이 마치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방불케 했다. 그러고 보니 홍상수 영화도, 축제도 본 적이 없는데 마치 본 것처럼 얘기하는 중.
    시작은 까뮈적으로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초상을 치르면서 주변부 이야기들을 재밌게 푸는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적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장례문화 참으로 고달프다.

    책 속의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는데, 약간 외할아버지와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함남 사투리를 쓰셔서 가끔은 엄마가 통역을 해줘야 한다. 역으로 내가 영어를 너무 많이 섞어 써서 내가 말하는 것도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통역해줘야 하고(영어를 일부러 쓰는 것은 아니고, 전자기기 사용법을 설명할 때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앱은 한국어로 뭐라고 해야 하나) 

    현대사의 질곡에 묶인 민초의 삶을 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정말 많이 생각났다. 누군가는 장수하시고 자손도 모두 효성스러우니 얼마나 좋겠냐 하지만 본인은 한창 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남한에 와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꿈꾸던 삶과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왔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저렇게 고향을 그리워하고 맨날 북한 잘 살던 시절 얘기하는 것도 찬란했던 그 시절이 더 미화되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내용과는 별개로 띄어쓰기가 너무 많이 틀려서 출판한 책이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읽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출판사 이름(창비)과 편집자 이름을 다시 확인하였을 정도. 

     "하얀 이불에 쌓인 두 사람이"는 '싸인'이라 써야하고, "연산홍"이 아니고 '영산홍'이다. 이것 말고도 이상한 것이 꽤 있었는데 덕분에 기본에 안 된 책이지만 이 책 참 재미있네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물론 소설가 잘못은 아니다.

     

     

    최은영의 <밝은 밤>
    요즘 픽션 콘텐츠에서는 뭐든 회귀물이 대세인지 오래이다. 요즘은 어떤 무협지가 유행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정말 모두가 하나같이 회귀물이었다. 환생을 했건, 빙의를 했건 인생 2회 차를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한 번의 인생으로는, 보통의 콘텐츠에서 다뤄지는 그 정도 나이(20대 이하)의 인생으로는 충분한 서사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이미 한번 인생 충분히 산 것으로 해서 이야기성을 확장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최은영의 <밝은 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귀물은 아니지만,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세대에 대해 진득하게 묘사함으로써 마치 전생물의 감각을 부여하였다. 도저히 주인공인 지연 하나만으로는 충분한 서사가 나오지 않으니까 말이다(이 느낌은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도 느끼긴 했다)

    주인공 지연은 증조모의 환생 같은 느낌을 주았다. 되풀이 되는 듯한 그들의 일생, 닮았다는 그들의 외양, 그들이 키웠던 강아지 봄이와 귀리까지. 뿐만 아니라 어머니(미선)는 조모를 저버리고, 증조모는 고조모를 저버리는 구조까지 같다. 


    이 책은 결국 모계적 관점에서 서술된 여성간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조모, 증조모, 조모, 어머니, 딸로 연결되는 모계에서 남자들은 이름이 제대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인간으로서 훌륭했던 새비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그에 비해 여성 간의 연대와 우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돈독하여 시간을 초월하고 장소를 뛰어넘는다. 

    각 세대와 그의 소중한 친구
    고조모(백정의 아내)-?
    증조모(삼천, 김정선)-새비
    조모(영옥, 칠십 대 초반)-희자
    미선(오십 대 초반), 멕시코 친구(명희)
    지연(삼십 대 초반), 지우



    그 와중에 시어머니들(증조모의 시어머니, 새비의 시어머니, 지연의 시어머니)은 여전히 '시'자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답적인 표현 방식을 유지한다. 이 점이 참으로 아쉬웠다.
     
    이 책을 보면서, 아주 간단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지 않음에서 오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다시 못 만날 헤어짐의 시간에 제대로 마음 표현을 하지 못한 후회가 많은데, 나는 어땠는가.

    명숙이 할머니와 헤어질 때.
    강아지 귀리, 봄이를 보낼 때.
    아버지(증조부)와의 헤어짐 - 죽으라고 말한 조모

    그래서 10살 때 처음 만난 할머니와 헤어지기 싫어하며 주자 앉아 우는 지연의 모습은 수많은 헤어짐의 순간 속에서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지연은 훗날 다시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