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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채운국 이야기 2
    오덕기(五德記)/日 2009. 2. 16. 14:44

    WARNING: Thar Be Spoilers Ahead! 

    스포일러 경계령

    채운국 이야기 리뷰 첫번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4. 손발이 오그라드는 중국적 설정

    채운국 이야기는 중국적 느낌을 가진 가상의 나라, 채운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중국 시대 어느 즈음...에 채운국을 세움으로써 굳이 복잡다단한 세계관을 설정하지 않고, 익숙한 동양적, 혹은 중국적 문화를 마음껏 차용한다. (예를 들면, 후궁 제도, 여성의 미약한 권위, 과거 제도, 귀족 제도, 가문, 신선, 청루, 심지어 정치기구와 관직명까지) 


    중국 악기인 얼후가 허구한 날 나와도, 그러려니, 성현의 말씀이 어쩌구 하면, 공맹스럽군, 사서삼경이 나오면, 무슨 책을 지칭했더라 헷갈려 하면서 코를 후비적거리는-_-; 나는, 사실 채운국 이야기의 중국적 설정 자체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다. 아니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중국 무협지 같은 거 쓰려면 얼마나 신경 쓸 일이 많은가, 당시 시대상황과도 맞춰야 하고, 어디 간다 그러면 지도 보면서 거리도 재봐야 하고, 이것 저것 고증할 일도 많고...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적 분위기인데 언제일지 모를, 어디일지 모를 나라 하나 세워놓고 중국 느낌만 가지고 온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왕 그런 선택을 했으면 좀 더 교묘할 수는 없었는가 말이다. 채운국 이야기는 캐릭터의 복잡다단성과 그 심리묘사에 밀착함으로써 흡인력을 가지기 보다는 주인공이 어떻게 역경을 이기고 성공하는 지를 짜임새 있게 다루는 것에 묘미를 둔 작품이다. 그러나 채운국이야기는 중간중간 그 짜인 모양새가 엉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도 역경을 야기하는 '악'의 존재가 뚜렷하지 않은 것이 그 첫번째 연유이리라. 채운국이야기는 엄청난 악의 존재를 상정한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이 주는 갈등을 해결해 가는 줄거리를 띠고 있다. 즉 그 상황은 비교(秘敎)단체의 음모일 때도 있고, 여성관료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풍토일 때도 있고, 왕을 인정하지 않는 귀족 집단일 때도 있고, 전염병일 때도 있고, 부패한 관리일 때도 있다. 내가 엄정한 선악 분류에 대해서 그닥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점은 높이 살만하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솔직히 말해 구렸지만 뒤로 갈수록 나아졌고, 특히나 2기 마지막의 명문 남가와 얽힌 이야기는 상당한 퀄리티에 도달했다.)


    줄거리가 엉성하다고 느껴지는 더 큰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중국적 설정을 차용하는데 있어 교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각각의 상황을 다룬 이야기들과 여러 장치 및 설정들이 깊이 녹아들지 못하고 서로 겉돌고 있다. 뭐랄까, 진순신이 지은 <중국의 역사> 12권 짜리, <전국책>, <고우영의 십팔사략>을 주욱 읽으면서 영감을 주는 부분을 체크한 다음에 기계적으로 차용했다는 느낌이 역력하다. 역사에 있어 A라는 상황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그 주위에 연계되는 수많은 설정들이 있고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을 경우 반드시 A라는 상황이 발생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말이다.

    쉽게 얘기해보겠다. 내가 채운국 이야기를 보고 처음으로 느낀 채운국의 시대적 분위기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남조의 나라 중 하나였다. 왕보다 강한 귀족들의 권위, 왕권을 저해하는 세도가문의 유력한 지배력. 남씨와 홍씨라는 가문이 크게 양분하고 있는 명문가라는 느낌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주름잡던 낭야 왕씨와 진군 사씨의 그것이었다. 이러한 세도가문의 전횡이 있을려면 필수적으로 필요한것이 그들 가문이 권세를 유지하도록 하는 도구인데, 보아하니 관직으로 진출하는 방법은 과거제도이고 (즉 실력등용이라는 것) 과거제 속에서도 귀족제를 유지하려면 음서제가 활발해야 하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홍씨와 남씨가 군사력을 주름잡고 있다는 증거도 찾기 힘들다. 도대체 왜 이렇게 귀족들의 권력이 강한지에 대한 설명없이 무작정 강하다고 한다.

    홍수려의 상소문이었나에서는 한대에 엄청 활발했던 염철론 (즉, 소금과 철에 대한 국가의 전매가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되고, 과거제도는 장원, 방안, 탐화 그대로 썼고, 그 대단한 의사 선생(화진이었나)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화타의 후예인 듯 싶고, 두 형제가 나눠가진 암검과 숫검인 간장과 막사의 검은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검 이야기고 (차라리 의천검과 도룡도를 하던가 -_-), 마지막으로 푸핫 하고 실소를 자아냈던 부분은 다삭순이 홍수려에게 얼후로 연주해달라고 요구했던 동상기(東湘記), 앙앙전(鴦鴦傳), 채궁추(彩宮秋), 비파기(琵琶記), 창요희(蒼遙姬). 이는 중국의 유명한 문학작품인 서상기, 앵앵전, 한궁추, 비파기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창요희는 뭔지 모르겠고) 서상기에서 동쪽과 서쪽 바꿔서 동상기 되었고, 앵앵전은 발음 비슷하게 앙앙전이고, 한나라 궁의 가을은, 채나라 궁의 가을이 되었다. 난 솔직히 이런거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문학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성과 맥락은 차치한 채로 수박 겉핥기 하듯 이름만 쏙쏙 가져와 바꾼 것 말이다.

    하여, 이런 점들이 나의 채운국 이야기에 대한 이입을 방해했다. 아무리 봐도 중국적 설정의 창의적 변용이라기 보다는 구미에 맞는 것만 어떻게 써먹어 볼까 군침 좔좔 흘리는 것 말이다. 애니메이션에 대고 너무 가혹한 평가라 할 지 모르나 애니메이션만이 가지는 허용적인 부분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홍수려가 후궁에 들어간 이후에 외간 남자와 너무 쉽게 접촉한다던가 하는 것. 또 다른 예로 강백호가 레이업 할 때마다 풋내기 슛이라 하고 피구왕 통키가 불꽃슛~! 이러는 것은 모두 애니메이션에서 암묵적으로 허용하도록 동의되어 있는 것이고 이런 부분 자체를 뭐라할 생각은 전혀 없다.) 상기의 문제로 인하여 채운국 이야기는 수많은 스펙터클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치밀하지 못하였으며, 아귀가 딱딱 물려나가지 못하는 박약한 세계관과 상황 설정은 절로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였다. 채운국 이야기에 대한 안타까움은 다행히 바로 연이어 본 십이국기에 의해서 완전히 상쇄되었지만. (중국적 설정을 차용한다는 건 바로 이런거다. 훗날 십이국기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랑가?)


    5. 매력이 좔좔흐르는 캐릭터와 성우

    아마도 작가 양반은 자신의 작품에서 파생될 동인지를 기대했으리라. 그러니 이 미형 남성 캐릭터들이 냄새를 풍풍 품기는 거 아닐까 -_-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는, 바보왕과 그의 형제, 수염 난 사람, 어린애 등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_-; (으응?)

    특히나 홍려심 아저씨와 남용련, 이강유, 남추영 등은 매우 예뻐했다. ㅋㅋ

    평소에는 냉철하기 짝이 없으나 자기 형과 홍수려 얘기만 나오면 얼굴 풀려서 헤헤 거리는 귀여운 아저씨 홍려심 (게다가 홍씨 가문 당주!)


    감히 지 형들을 우(어리석을 우)형 이라 부르며 삐리리 피리 불고 다니고 민폐가 장난이 아닌 싸이코 동생 남용연.


    길치에다가 다혈질이면서 순수한 이강유



    무술하고 머리 풀 때가 더 매력적인 남추영


    게다가 성우진은 어떠한가!
    바보왕의 세키 토모카즈, 자정란의 미도리카와 히카루, 남추영의 모리카와 토시유키, 표리앵의 세키 토시히코 (음... 성향이 드러나나 -_-) 짜짜잔 짠!  한국판은 본 적이 없지만, 김승준님이 미도리카와 히카루의 자정란 역을 다시 맡아주셨고, 김일님과 김민석님!!!! (솔직히 말하자면 자류휘를 맡으신 세키 토모카즈님... 난 걍 별루 -_- 자류휘를 워낙 안 좋아해서 그런가)

    어쨌든 주인공을 제외한 남녀 캐릭터들은 개성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있었다. 여자 캐릭터들도 여자 주인공과 홍령이었나(난 얘 왠지 싫더라)를 제외하고는 다들 멋지고.



    6. 결론


    아 너무 많이 구시렁거려서 별로 할 말이 남아있지 않다.
    리뷰는 너무 까칠하게 썼지만 채운국 이야기 나쁘지 않았다. 괜찮았다. 3기 나오면 또 보고 싶다. (이것이 채운국 이야기에 대한 내 마음을 압축하는 것일 게다) 홍수려는 왕과 결혼따위 하지 않고 재상 자리에 올랐으면 좋겠다(솔직히 전복하고 황제가 되어버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쿨럭)

    마지막으로 성격 까칠한 난 불평 좀 더 하고 끝내야겠다.
    첫째, 그림. 답답하다. 클로즈업 할 때 프레임을 이마부터 잘라버린다. 이게 유행인가? 
    둘째, 나 주제가 싫다. 오프닝 테마 싫다. 2기 틀면서 다른 주제가 기대했는데 똑같아서 캐실망했었다. 주제가 부른 여성의 저음 너무 불편하다. 나만 싫은 건가. 시청하다가 "하지마리"였나 그 부분만 나오면 번개라도 맞듯 ->->를 눌러댔다. 3기에는 노래 좀 바꾸자. 신나게 신나게. ㅋㅋ
    셋째, 베스트아니메에서 봤는데, 채운국 이야기 1기와 2기의 시나리오 작가가 바뀌었었다고 한다. 그래서 2기가 1기보다 훨씬 재밌었구나 했다. 만약 3기에도 2기의 시나리오 작가를 그대로 쓴다면 기대할만 하지 않은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