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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정령의 수호자 (3)
    오덕기(五德記)/日 2010. 5. 1. 14:24
    ※ WARNING: Thar Be Spoilers Ahead! 
    다량의 네타가 있습니다. [리뷰] 정령의 수호자 (2) 글에서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스포를 원하시지 않는 분은  [리뷰]'정령의 수호자' (Moribito: Guardian of the Spirit/精霊の守り人) (1) 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정령의 수호자'의 세계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네요. 
    앞에서 너무 진지 모드였기 때문에(쓰면서도 닭살이 ㅋㅋ) 이번에는 기름끼를 좀 빼야겠습니다. 헤헤



    세계관 - 음양과 오행


    사그와 나유그 세계가 공존하는 모습을 담은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령의 수호자'를 보면서 느꼈던 설정은 바로 음양론적 세계입니다(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음양오행설에 기반한 세계). 인간이 인지하고 살고 있는 세계인 사그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정령의 세계인 나유그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현세와 내세/이세계와 저세계 같은 개념이 아니라 사그에 밤이 오면 나유그에는 해가 뜨는 식의 한쪽이 소멸(수축)하면 다른 한쪽이 생성(팽창)되는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입죠. 이 안에 오행의 원리에 기초하여 여러 정령들(혹은 백성들)이 공존합니다. 애니메이션에는 물/땅(흙)/불의 백성이 나왔었고 토로가이도 땅의 백성은 물의 정령을 공격한다는 원리를 일찍 깨닫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한심해 하고요. 땅의 백성인 라룽가가 물의 정령을 품은 챠그무를 죽이려고 하는 것도 오행설에 기반한(토극수土剋水) 개념이죠.
    사그의 태양이 나유그의 달이라고 하죠.


    이런 기본적인 음양오행설은 세계관의 설정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행위하고 작동하는 인간과 비물질적 체계에도 확장되어 적용됩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인간의 관계는 모두 음양적인 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여자와 남자가 짝을 이루고 있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바르사와 챠그무의 관계가 그렇고,


    그녀를 돌보던 바르사와 지그로의 관계가 그렇고,
    (양육하고 부양하는 인간관계의 역전도 볼 수 있죠)


    바르사와 탄다의 관계가 그렇고,


    탄다와 스승인 토로가이가 그렇고 (오해하실 것 같은데 토로가이는 분명 여자입니다. -_-),


    토로가이와 슈가가 그렇습니다.


    아 물론 사야와 토야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사야는 정말 예쁘던데 토야는 인물이...-_-;; 마치 야동의 인물설정을 보는 것 같았... -_-)

    사람 간의 관계 뿐만이 아닙니다. 챠그무 뒤로 보이는 신요고 국의 국기에서도 음양의 상징을 형상화 한듯한 문양이 보입니다.


    애니메이션 전체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정보도 학문과 비학문, 즉 천문박사와 주술사의 지식이 서로 경쟁하고 멸시하다가 종국에는 화합함으로써 얻게 됩니다.(또한 리뷰2 에서 말씀드린 구술역사와 기술역사의 양 측면도 그 예라 할 수 있겠죠)  
    민간전승을 설명해주는 탄다자연법칙을 연구할 때도 책보는 슈가

    학문과 비학문의 영역이 그렇듯이 남성성과 여성성도 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음의 영역/양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치환되고 변화하고 결국에는 조화를 이룹니다.  

    여자호위무사인 바르사와 그녀가 다칠 때마다 돌봐주는 탄다. 심지어 탄다는 스스로를 일컬어 '무인의 아내'드립까지 치죠. -_-; 

    그 중, 남성성과 여성성의 전환이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바로 챠그무의 '순산' 장면입니다. -_-;;;;; 저는 사실 이 장면에서 감동으로 눈물을 글썽였는데 어떤 분들은 챠그무가 알을 너무 숨풍 낳았다고 타박하시더라고요. ㅋ 

    라룽가에게 차라리 몸이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알을 낳겠다는 챠그무의 말에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출산을 하려는 모성의 고귀함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지금이야 의학의 발달로 많이 괜찮아졌지만 예전에는 여성들이 출산을 하려고 방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돌아봤다죠. 다시 저 신발을 신을 수 있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이 장면, 그리고 챠그무의 신음소리...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감동적이고도 아햏햏한 부분이었습니다. -_-;;




    챠그무의 성장


    애니메이션 '정령의 수호자'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바르사입니다만, 챠그무가 성장하는 모습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도피, 혹은 모험, 혹은 여행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의 챠그무는 믿음직스럽게 자라납니다. 위에서 보이듯 연약해보이던 (좋게 말해 연약이지-_-; 사실 매가리가 없어 보이죠) 챠그무가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정신과 신체가 무럭무럭 자라나죠.  
    겨울 사이에 챠그무의 키는 쑥쑥 자랍니다.

     왕자님답게..가 아니라 옷이 날개더군요 ㅋㅋ


    그러더니 결국

    내가 네 놈의 그 음흉한 마음을 모를 것 같으냐!!! -_-;;;

    짜식, 정말 훌쩍 자랐습니다.

    챠그무는 플라토닉한 두 사람의 사랑에 다리를 놓아주려고도 노력합니다.



    잡설은 집어치우고 작품 전체를 통해 성장하는 챠그무를 흐뭇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저만은 아닐 것 같네요. ^^
    코끝이 시큰해졌던 순간. 왜인지 모르게 애니메이션 전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챠그무를 키운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휴머니즘 -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이 작품 속에는 '악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 유일한 악인이라고 한다면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이야기 속에서만 나오는 로그샴이겠죠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의 형을 죽이도록 바르사의 아버지에게 사주하고, 바르사를 데리고 도망친 지그로를 죽이기 위해 그의 친구들을 보내는 사람이죠.) 그 외에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캐릭터들은 심지어 지나가는 캐릭터조차도 긍정적입니다. 완고한 대장장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는 여선생이 그렇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도 대사를 통해서도, 캐릭터의 행동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죠. 한 나라의 영웅이 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고결한 행위에 대한 조용한 탄사가 애니메이션 속에서 묻어납니다. 

    어디 휴머니즘 뿐이겠습니까. 자연에 대한 시선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마냥 따뜻하고, 파괴되는 환경에 대한 걱정이 담뿍 담겨있습니다.  철을 두들기는 소리(과학기술의 발전)와 함께 사라지는 나지에 대한 인식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죠. 

    왕자가 키웠던 알을 나지가 가지러 돌아오는 장면은 참으로 뭉클합니다.


    자연의 변화에 맞추어 생활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도 인상깊었습니다.
    사냥꾼의 굴에서의 생활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음식과 장작을 모으는 모습 등이 그랬고, 바쁜 농촌생활에서 모내기 때에 해야할 국가적 축제도 하지로 미루는 등의 내용이 그랬습니다. 야토족의 생활상과 함께 옛 겨울과 농촌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인류학자의 터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겨울을 나기 위해 고기는 훈제하고 과일은 말리는 장면입니다. 소소한 장면이지만 기억에 남더라고요.



    대화 속 긴장감 - 편집술과 센스 


    보는 내내 대단하다하는 부분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던 에피소드는 '8화 도공' 입니다. 

    이 장면에서 처음으로 지그로라는 사내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회상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회상 씬은 한 컷도 삽입되지 않고 오로지 그 이야기를 하는 도공과 공격할지도 모를 적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진 바르사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대화, 캐릭터들의 눈빛, 화염 속 빨갛게 달궈진 쇠, 날카롭게 빛나는 칼날, 그리고 쇠를 쇠로 두들기는 금속성 만으로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진행하는 것을 보고 이 만화를 만든 디렉터의 편집기술에 탄복했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이 이야기해준 '호랑이가 된 무사' 이야기, 그리고 그 직후에 나온 호랑이로 변한 바르사의 전투 장면도 뇌리에 강하게 남더군요. 호랑이의 사실적인 묘사와 인간과 호랑이가 싸울 때의 숨막히는 공포감, 마침내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했을 때 지르는 바르사의 일성대갈. 인간에서 호랑이로 변한 후 바르사와 선생의 충격이 잘 드러나는 화면의 흔들림.  

    복잡하고 화려한 화면이 아니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형상화하여 굵고 강렬하게 심리를 묘사한 명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도공편'에서 이야기했던 무인의 '업'까지 끊는 최고의 무기를 만들고 싶다는 장인의 소망이 이루어진 순간이기도 하고요.



    아이캐치 속 1화에서 26화에 걸쳐 알이 성장하는 모습도 상당히 인상 깊었습니다. (일명 알스캔 초음파 사진 -_-; 이걸 한 화 한 화 다 캡쳐해서 gif 파일로 만든 삽질도 한 몫 거들죠. -_-;;)



    이 장면도 참 멋있었어요.(사실 이 캐릭터들을 너무 간과한 것 같아 미안해서 하나 올립니다 ㅋ)

    무협지 팬의 입장으로 '정령의 수호자' 액션장면은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그로의 파워 넘치는 전투 장면과 왕의 자객들과 싸우는 바르사 장면이요. ㅠ.ㅠ






    그밖에...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이미 앞에서도 한 번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이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경치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특히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을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아무래도 챠그무가 품은 물의 정령은 세상에 물을 만들기 위해 구름을 뿜어낸다는 신화 때문에 더욱 구름에 신경을 쓴 게 아닐까 합니다.




    회상씬에서 나오는 어릴 적 모습도 재미있는 볼거리죠.


    16살 바르사



    농염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이 안 되는 바르사. 사실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어서 캡쳐했습니다.



    그리고 전 아래 장면들이 웃겼습니다.  
    먹힐 위험에 다다르자 자신의 애완동물을 먹으라는 토로가이 할멈 ㅋㅋ과 그 일로 완전 삐친 애완동물.



    마지막 라룽가와의 싸움 장면은 너무 처절해서 괜히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는데 어이없고 실망스러웠다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흙 ㅠ.ㅠ


    그러나 저도 처음 라룽가가 나올 때에는

    괜히 랍스터나 게요리가 먹고 싶었습니다. ;;


    아래 장면은 참 멋지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저 여인네 팔근육 보이십니까. 던지는 폼도 그렇고 소프트볼 선수를 하면 대성했을 것 같습니다.  ;;



    작화 뿐만 아니라 OST도 참 좋긴 했습니다만. 애니메이션 측면으로 봤을 때 십이국기에 비해 정령의 수호자가 유일하게 쳐지는 부분이 OST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제 취향입니다) 전반적으로는 난형난제였지만 OST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오프닝과 엔딩이 애니와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다시 한번, 제 취향입니다. 뭐 라캉씨엘 좋아하시는 분들은 마음에 들어 하셨을 것 같아요.)  
    전 OST중에서 '나지의 노래'를 참 좋아했습니다. 일종의 메인 테마라고 해야하겠죠?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가는 좋은 곡입니다.

    カオカオ ホイホイ
    腰の痛さにこの田の広さ
    花咲月の日の長さ
    田んぼ耕せ 鍬入れろ
    稲籾まけや 苗萌やせ
    ナージ来い来い
    黒雲になって北の山から飛んで来い

    カオカオ ホイホイ
    こぼれ稲でもそれ植えておけ
    秋にゃ五穀の米がなる
    田んぼ潤せ 水を引け
    苗を植えろや 田を染めろ
    ナージ食え食え
    蛙を食えばころころ肥えて元気に飛べる

    カオカオ ホイホイ
    たおやめ衆がケツはみくれば
    ますらお負けじと前かがみ
    田んぼ見張れや 苗踏むな
    土手を乗り越え 草むしれ
    ナージゆけゆけ
    玉さらくわえ爪の彼方に舞い上がれ

    カオカオ ホイホイ
    明日は日和か吹雪が雨か
    見やれ青霧うすぐもり
    田んぼ枯らすな 水を呼べ
    稲を育てろ 肥入れろ
    ナージ飛べ飛べ
    海まで飛べば雨降り稲穂はすくすく育つ



    애니메이션에 심하게 감동한 나머지 원작 소설을 찾아 헤맸습니다만 정령의 수호자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어 있지 않더라고요. 영어로는 어둠의 수호자까지 번역되어 있던데... (그래서 구입 -_-) 우에하시 나호코의 다른 작품인 '야수'라는 책도 봤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소설이 아동용 환타지 소설이라니..-_-; 재미는 있더군요.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일본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할 수 있는 저력, 일본 풍의 문화를 잘 녹아들게 하는 능력. 이런게 진정한 문화강국이 아닌가 합니다. (자못 쿨하게 얘기하지만 부러워서 뒈질 것 같았습니다. -_-; ) 
    더불어 우에하시 나호코의 후속 작품들이 같은 프로덕션과 디렉터의 손에서 애니메이션화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정령의 수호자는 명작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안 봤으면 후회했을 것 같은 작품인데, 우연히 영어 더빙판을 구하게 되어서 보게 된 거거든요. 천운이라 생각합니다. ^^;;;
    혹시나 이 애니메이션을 안 보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약속했던 8명의 목숨을 구하고 이제 지그로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칸발로 돌아가는 바르사.

    마지막까지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 합니다.
    진한 여운이 남는 엔딩이었습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