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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뷰] 흑의 계약자 (Darker Than Black, 黒の契約者)
    오덕기(五德記)/日 2010. 5. 11. 04:04
    '늑대와 향신료' 이후 애니메이션은 딱 두 가지만 더 보고 야구에 집중(-_-?)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하나는 '흑의 계약자' 다른 하나는 '무한의 리바이어스'
    그 중 흑의 계약자 1기를 클리어 했다. (사실 2기가 있다는 건 보다가 알았다.)
    체력이 달려서 2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어쨌든 1기는 다 봤으니까 대충 느낀 바를 정리해보려한다.


    ※ WARNING: Thar Be Spoilers Ahead!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1. 엄청난 찬사와 강력 추천 속에 이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맨 첫 장면을 보고 아차 했다. 나는 경미한 '피공포증(hemophobia)'이 있기 때문에 잔인한 장면을 잘 견디지 못한다. 덕분에 이 시리즈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견딜만한 불안감이다. 알고보면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도 잘 견뎌낸 강골이다. 결국 시즌2에서 무너지긴했지만-_-;; ) 잔인해서인지, 아니면 스토리 자체에 몰입이 잘 안 되었는지, 사흘만에 26편을 클리어 한 '늑대와 향신료'와는 달리 얘는 꽤 걸렸다. 한 일주일 걸렸나. 
    뭔들 안 그러냐겠만은 상당히 취향을 타는 작품이란 거다. 하지만 내 취향에 안 맞았다고 좋은 작품을 구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애니메이션은 분명 수작이다.



    2. SF판타지 느와르로 점철된 세계가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 공상과학적 판타지 월드를 구축하였다. 도쿄가 나오고, UN이 나오고 미국 CIA나 NASA가 나오고, TV에서는 프로야구 중계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니다.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세계는 지금의 현실을 살짝 뒤튼 것이지만 또한 현실 세계와는 다르다. 그래서 SF판타지이다.
    게다가 대놓고 느와르이다. (느와르(누아Noir)라는 뜻이 Black인 것은 다들 아실테고) 제목부터 한자로는 흑(黒) 영어로는 Black. 게다가 주인공 이름까지 헤이(중국어로 黒_난 흐에이라 발음하는데 뭐 어쨌든 -_-)이다. 
    느와르의 장르적 특성도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어두운 음영톤의 화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그러나 확실히 어둠을 띤 주인공,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 그리고 범죄가 판치고 불안감이 휘감고 있는 세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을 관통하고 있는 허무와 상실의 정서가 그것이다. 
     


    3. 그리고 그 곳에 계약자가 있다.
    10년전 도쿄와 지구 반대편 남미에 갑자기 지옥의 문(Hell's Gate)과 천국의 문(Heaven's Gate)이 생긴 이후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소위 '계약자'들이 등장한다. 각 정부기관과 비밀단체는 이 계약자의 존재를 철저히 대중에게 (계약자를 만난 일반인들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을 통해서) 숨긴 채 서로 이용하려 든다.  특이한 힘으로 사람 죽이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계약자는 감정이 없고 모든 것을 합리적/이성적으로만 판단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한 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그리고 이 계약자의 움직임은 새롭게 하늘을 덮고 있는 가짜 하늘에서 빛나는 별로 알 수 있다. 그 계약자의 명이 다하면 그 별도 지듯이 말이다. 이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이 계약자와 계약자, 조직과 조직, 조직과 계약자의 합종연횡과 대립이 균형을 이루면서 전개된다.  




    4. 그리고 그들 중 헤이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헤이이다. 평소에는 리셴슌(이생순李生舜_원래 발음은 리셩슌에 가깝...-_-; )이라는 중국유학생으로 활동하지만 황, 마오(고양이에 빙의한 계약자), 인(Doll)과 함께 패를 이루어 조직의 명령을 수행할 때에는 헤이가 된다. 그는 '검은 사신'이라 불릴 정도로 실력 좋은 계약자이지만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꽤 풍부한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계약자와 보통 인간의 중간자적 입장을 띠고 있기 때문에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데 시즌 말미에 이에 대한 이유가 밝혀진다.  평소에는 순하고 성실하며, 엄청난 대식가에, 쇄골 으뜸 미남으로 나온다. (그러나 맨 첫 장면에서 너무 잔인하게 나와서 나는 끝까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 딱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 없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건 좀 괴로운 일이다. 물론 검은색 코트를 휘날리며 날뛸 때의 그의 몸매는 최고닷! *^^*)
     

    5. 여기에 개똥철학을 들이댄다.
    이 세계는 '무엇이 어찌해서 어찌어찌 되었다'라는 설명이 없는 세계이다. (창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현상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행태는 사뭇 불교의 접근법과 상통한다) 아무 이유 없이 지옥문과 천국문은 떡하니 생겨버렸고, 아무 이유 없이 감정이 없는 존재인 계약자와 인격이 없는 존재인 Doll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힘을 휘두르는 계약자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며 계약자와 PANDORA라는 조직의 대립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에피소드를 더해갈수록 그 의미는 뚜렷해진다. 두 집단의 갈등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밝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하는 집단과 강력한 신흥 집단에게 그간 가지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두려워 하는 집단이 투쟁하는 양상을 띤다. 더불어 나는 이 계약자들을 보면서 '영지주의자'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독특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집권세력에게 항상 이단으로 몰리며 박해받던 (그러나 또한 그들의 이론은 이용되었던) 영지주의자의 모습이 계약자들과 묘하게 겹쳤다고 해야하나...  
    '감정'과 '인격'이 없다며 계약자와 Doll을 자신의 이익대로 마음껏 이용한 기득권 세력(정부집단 등)이지만,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다보면 계약자에게도 뚜렷한 감정이 있고, 인이나 켄지가 사랑에 빠진 Doll 모두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지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현저히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계약자와 Doll이 인격과 감정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의 판단이며 '악'의 대명사로 보이는 계약자의 '악'은 과연 그들의 인성에서 야기된 문제인가 아니면 조직이나 사회적 체제에 의해 초래된 것인가.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말한다기보다는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 가슴 서늘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있다.  ('악'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 강연을 추천한다. "필립 짐바르도: 인간은 어떻게 괴물 혹은 영웅이 되는가"-물론 상당히 서양적인 선악에 대한 관점이다) 

    '흑의 계약자'는 기본적으로 깔고 있는 허무와 상실감 그리고 체제적 부조리 안에서 반목하는 계약자와 일반인의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과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애니메이션에 깊이 새겨진 휴머니즘의 색채 속에서 명징해진다. 조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키리하라, 헤이, 황, 마오, 그리고 인의 부대낌이 처절하게 눈에 밟힌다. 결국 어떠한 조직이나 사회 체제도 인간이 가진 감성과 인격 그리고 자유의지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 황급히 정리해 보련다  
    '흑의 계약자'는 초반에는 2편이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옴니버스 식으로 진행되다가 뒤쪽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밀도있게 집중되는 스타일이다. 분위기라던가 진행방식 등등 여러가지가 카우보이 비밥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카우보이 비밥의 아성에 도전하기는 -_-;;; ) 게다가 OST 또한 카우보이 비밥의 칸노 요코가 맡았다. (버뜨, 내 귀를 잡아끈 음악이 단 하나도 없었다) 계약자들의 면면은 헐리우드 영화 엑스맨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그 비를 내리게 하던 여자 흑인 계약자) 상당히 세련된 편집(막판에 잠깐 나온 에반게리온 식 전개를 제외하고는 -_-)과 안정된 작화는 공들인 작품이라는 생각을 팍팍 들게 한다. 어떤 편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영화를 보는 듯한 퀄리티를 자랑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반적으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맨 처음에 생순이 (즉 헤이 -_-)보고 데스노트의 L인지 알았다.



    계속되는 금연 홍보가 눈에 띄었고, 모든 외국인들이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본어가 신기했다. -_-;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감독 이름. 오카무라 텐사이. 마치 이름의 발음이 오카무라 천재~ 같잖아...-_-; 이러고 있었다.  (유명한 OST 음악가 카와이 켄지도 맥을 같이 한다. 귀여운 켄지라니 ㅋㅋ)





    그리고... 우연히 찾은 헤이 코스프레...(출처는 사진에 -_-; 우리나라 돈으로 한 6만5천원이면 사겠더라)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 사람을 좀 지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무한의 리바이어스를 과연 바로 볼 수 있을까. -_-;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