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이탈리아 Day 2(2) - 로마 시내(캄피돌리오, 판테온, 트레비 분수)
    여행/이탈리아-오스트리아 2018. 3. 13. 16:54


    포로 로마로에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으로 가는 길. 햇빛과 허기에 지칠대로 지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끌며 한 발 두 발 제겨 디디고 있었다. 음식점이라도 있음 좋겠는데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구글맵을  볼 힘도 없어 그저 눈에 보이는 길을 다른 여행객들을 따라(이놈의 군종심리) 올라갔다가 경찰의 제지로 오열하며 돌아나왔다. 캄피돌리오 광장에 가려면 건국의 아버지 건물을 삥 돌아서 광장으로 가야했다. 고지가 저기인데 바로 가지를 못한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분수대에 앉아 쉬는데 비둘기는 남의 속도 모르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저리가 저리가라고. 엉엉.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Vittorio Emanuele II Monument)

    카피톨리노 언덕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바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Vittorio Emanuele II)이 위용을 자랑한다. 혹자는 '웨딩케이크'니 뭐니 하며 로마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이라고 혹평하지만 일단 보기에는 장쾌하다. 이곳 꼭대기 전망대에 엘리베이터(7유로)를 타고 올라가면 엄청난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뿐하게 패스.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다시 힘을 내서 어여차 어기영차. 이미 다리는 통나무 두 짝이 움직이는 것 같다(足が棒なる). 카피톨리노(Capitonine) 언덕은 로마 건국에 중요한 일곱 언덕 중 하나로 로마의 주요 신을 모시던 신전이 있었던 곳이다. 이후 미켈란젤로가 광장을 설계하였고 광장 중앙에 철인 황제이지 오현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을 두었다. 이 곳이 포로 로마노가 잘 보이는 명당 어쩌고하는데 눈에 잘 안들어온다. 광장 양옆에 위치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본다는 것도 어불성설. 광장의 감흥을 느낄만한 심신의 상태가 아니다. 3시가 다 되어가는데 밥도 못 먹었다. 보는 둥 마는 둥하고 다시 또 먹을 것을 찾아 판테온 쪽으로 향한다. 트립어드바이저 어플에는 주변 식당이 엄청 뜨는데 그 와중에 안 땡긴다. 진정 미쳤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숨막히는 뒤태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바라보는 포로로마노


    거의 3시가 다 되어가는데 아직 밥을 못 먹었다. 그나마 판테온 근처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 로마에서 먹은 첫 끼니는 Fratelli Rocci. 맛도 서비스도 분위기도 특색 없음. 살기 위해 먹는 자를 위한 곳. 이것이 바로 장고 아니 긴 방황 끝의 악수. 그럼에도 잠깐의 휴식, 식량, 청량음료가 콜라보 된 덕분에 힘이 불끈 솟아난다.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점심


    판테온

    판테온이 눈 앞에 확 들어온다. 엄청난 위압감과 고풍스러움. 고색창연.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봐왔던 판테온 사진이나 설계도는 모두 판테온 내부 사진이나, 단면도 및 평면도이다. 파사드(외관)가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꼿꼿하게 서 있지만 세월의 무게가 쌓여 돌들이 어딘가 모르게 약간 내려앉은 것 같다. 벌써부터 뭉클함이 치밀어 오른다. 

    돔 oculus의 시선


    이곳은 무료 입장이지만 내부 인원수 제한이 있는지 잠깐 줄을 세웠다가 관람객이 우르르 나오니 들여보내준다. 판테온에 들어오니 또다시 감동의 소용돌이. 좋아하는 건축물이 많고도 많지만 오늘부터 이곳이 탑5. 

    판테온(즉 만신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지금은 성당으로 쓰인다. 문화재로 박제되지 않고 2000년이 넘도록 공공건축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아직도 자신의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살아 숨쉬는 건축.

    이 건물은 돔 바닥에서 꼭대기까지가 완전한 구형공간이다. 무거운 돔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 벽을 두껍게 하다보니 창을 만들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천장에 있는 개구부가 분위기를 극도로 신비롭게 만든다. 하늘로 난 창을 통해 보이는 맑디맑은 하늘과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이라니. 예전에 서양미술사 수업을 들을 때, 내부 공기의 압력 때문에 비가 내부로 안 들이친다는 설명에 우와- 했었는데 어떤 건축학 교수는 비 들어오죠라고 얘기해서 약간 김이 샌 적도 있었다. 쉽게 얘기하면 비가 적게 오면 내부의 공기 때문에 못 들어오고 비가 많이 오면 어쩔 수 없는 걸로.

    천공으로 보이는 천공


    벤키(Venchi)

    판테온에 나와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가 셀피 스틱이 부러졌다. 흑.

    판테온이 있는 로툰다 광장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있다. 

    그리고 젤라또도 있다.

    그 유명한 벤키(Venchi)라는 곳이다. 계산하고 젤라또를 고르는 시스템.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선택하였는데 흐미 맛있다.


    트레비 분수

    당분 보충하고 힘 내서 뚜벅뚜벅 트레비로 향하였다. <로마의 휴일>이니 뭐니 본 적 없는 나는 이런 곳은 관심 없었다. 그런데 원래 같이 오기로했던 친구가 이 분수를 참으로 보고싶어했다. 대신 도장 깨기 모드 발동. 

    가는 길에 행인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는 행위 예술가. 까꿍.


    로마는 물이 부족한 그리스를 속주로 삼은 이후 물 관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즉 속주를 개척하면 일단 분수를 설치하여 식수를 제공하였으며, 분수를 통하여 권력을 과시하였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 현존하는 가장 큰 분수로 18세기에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건립하였다.

    가보니 사람은 드글드글. 낭만이라고는 없다. 물은 정말 맑아 보였다. 로마는 수도교를 통해 멀리에서부터 물을 끌어오면서 오로지 중력의 힘을 사용했다고 한다. 1000분의 1도라는 아주 미세한 경사를 통해 흘러오는 물을 로마 시내 이곳 저곳에 분수를 두어 시민이 이용하게 했다. 대략 80km정도 떨어진 곳에서 로마로 물을 공급하였으며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이 기술이 사장되었다는 점에서 로마 토목기술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예전에 EM번즈가 쓴 <서양 문명의 역사>라는 책을 보다가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스는 두뇌(Brain)로, 로마는 배수(Drain)로 유명하다고(The Greeks are famous for their brains; the Romans for their drains) 빈정댔던 것이 생각나서.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