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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얀 빌딩>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4. 5. 17:47

     

    제목, 그나마도 잘 안 외워지는 제목과 더 안 외워지는 저자명, 그리고 아랍 세계를 넘어선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정보를 제외하고는 내용을 전혀 모른 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구현하는 공간은 수평적으로 펼쳐지지만, 이 책의 공간은 야쿠비얀 빌딩이라는 건물 형태로 수직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빈부에 의한 계층도 횡적으로 형성되고 말이다. 한때 고급 아파트였던 야쿠비얀 빌딩이 시대가 변하면서 부유한 이들의 사적, 공적 장소와 가난한 이들의 거주 공간인 옥탑방 등으로 분기되는 모습이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초고층 빈민가인 토라 다비드도 떠올리게 했다.

    초반에 빌드업 식으로 계속 캐릭터 소개만 해서, 이거 언제까지 이러려고 하나 하는데, 점점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덕분에 짧은 책인데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 꽤 많이 나와서, 주말에 카페 갈 때마다 읽었더니, 매번 이 분은 뉘신가 했다. 그럼에도 각각의 서사를 잘 쌓아놔서 약간의 묘사만 읽으면 이름 확인 안 하고도 독서가 가능하다. 

    아랍 소설이라는 편견을 넘어서는 생각 외의 자극적인 내용이 가득 다뤄진다. 이렇게 길지 않은 소설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성적 방종, 적나라한 부패, 동성애, 마약, 테러 단체까지 자극성의 종합 백화점이다. 그렇다고 동성애나 여타 성애가 노골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괜히 눈치를 보면서 마음 속 빗장을 여미게 되니, 이는 나 스스로가 가진 이슬람 세계에 대한 경직성에서 연유한 것일 테다.

    어쩌면 다른 문화권이라면, 굳이 서구까지 얘기 안 하고 우리나라 정도만 되어도 큰 과오나 삶의 족쇄가 아닐 수 있는 것들이 이슬람 세계에서는 크나큰 과실이 되거나, 사회적 제약이 되는 것을 보니 도대체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오롯이 자신으로 사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병폐니 죄악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 사회에 의해 구조화되니 말이다. 

    작가는 소설 속 모든 병리 현상을 관조적이고 객관적으로 다룬다. 이슬람 세계에서 매장 안 당하려면 작가가 좀 더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어느 정도의 권선징악은 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 애매모호하다. 어쩌면 이집트는 덜 경직된 사회일지도. 중국보다도 더.

    시대적 배경은 이집트가 가졌던 공존과 문화적 용광로의 시대이자 영국의 반 식민지 시절을 지나 1952년 나세르가 일으킨 혁명/쿠데타 이후에 재편성 된 이후, 1990년 걸프전이 일어나는 시점의 군부에 지배되는 야쿠비얀 빌딩/카이로/이집트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새 시대의 기대를 움트게 했던 아랍의 봄이 생각났다. 역자 해제를 보니, 역시 알라 알아스와니도 아랍의 봄 시기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했다고 하더라. 시대의 맥동에 예민한 지성인은 단지 몇 글자 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격류에 뛰어들기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위화의 전집 중 시의성과 저항의식이 강한 산문 몇 편을 보게 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위화도 한때 치과의사였다. 최근에 접한 이 두 걸출한 작가가 모두 치과의사(출신)이라니 신기하기도. 두 작가의 비슷한 강도의 시류성을 담은 글들이 이집트에서는 출판되고, 중국에서는 금서로 지정되고. 

    이란 혁명을 다룬 책도 그렇고, 학생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서 고통당하는 민초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강력한 일신교가 있었다면 궁지에 몰린 이들이 출구를 다른 곳에서 찾았을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하처럼.

    번역에 불만은 없고, 맨 뒤에 역주가 있어서 잘 모르는 것은 열심히 찾아가면서 봤다. 29쪽에 오타 "르가 맡던"->"그가 맡던" 발견했다. 해-시-시라는 말이 담배와 함께 묘사되어서 약간 꺼림칙해하며 검색했는데(비밀 모드로 찾을 걸) 역시나 대-마-초란다. 구글 신님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나 혼자 읽기 아까운 책이다.

    친구에게 꼭 읽으라고 강력 추천 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