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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혼 축하 편지
    사람 사는 느낌으로다가/펌 2008. 6. 11. 00:42
    X숙에게

    오늘 내 편지통에서 나온 건 네 결혼 청첩, 암만 들여다봐도 네 이름이 틀리지 않는 것을 알고, 또 그 옆에 찍힌 남자의 이름이 낯선 걸 느낄 때, 나는 손이 떨리고 가슴이 울렁거려 그만 기숙사를 나와 산으로 올라갔다. 멀리 외국으로 떠나는 너를 바라보기나 하는 것처럼 하늘가를 바라보고 한참이나 울었다. 동무의 행복을 울었다는 것이 예의가 아닐지 모르나 나로는 솔직한 고백이다. 네가 날 떠나는 것만 같고, 널 한번도 보도 듣도 못한 남자에게 빼앗기는 것만 같아서, 울어도 시원치 않은 안타까움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결코 너의 행복을 슬퍼하는 눈물이 아닌 것은 너도 이해해줄 줄 안다.

    네가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한다!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도 이상스럽기만 하다. 어떤 남자일까? 키는? 얼굴은? 학식은? 그리고 널 정말 나만큼 사랑할까? 나만큼 알까? 그이가 가까이만 있다면 곧 찾아가 이런 걸 따지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네 훌륭한 여러가지를 더 설명해주고도 싶다. 아무튼 옷감 한 가지를 끊어도 누구보다도 선택을 잘하던 너니까 일생을 같이할 그이의 선택을 범연히 하였을 리 없을 것이다. 물론 어디 나서든 인망이 훌륭한 남자일 줄 믿는다.

    네가 신부가 된다! 크리스마스 때 네가 하이얀 비단에 싸여 천사놀이를 할 때, 네가 제일 곱던 것이 생각난다. 그 고운 모양에 백합을 안고, 제비같이 새까만 연미복 옆에 선 네 전체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이 동무이나 혼례사진이 되는 대로 나한테부터 한 장 보내다오. 그리고 결혼은 천국이 아니면 지옥이라 한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어디까지 자유의지에서 신성한 사랑으로 결합되는 너의 가정이야말로 지상의 천국일 것이다. 그 천국이 어서 실현되기를 너와 그이를 아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도 진심으로 축원한다. 그리고 변변치 못한 물건이나 정표로 한 가지 부치니 너의 아름다운 천국의 가구 중에 하나로 끼일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일지 모르겠다.
    멀리 너 있는 곳을 향해 합장하며
    X월X일 동무 X순
    (이태준의 <문장강화> pp.106-7에서)


    몇 십년은 된 글이다. 옛 여인의 소담스러운 글과 마음 씀씀이가 안타까워 이렇게 옮겨쓴다. 이제 내 친구들이 하나 둘씩 결혼하기 시작하니 좀 더 절절한 느낌으로 이 글이 다가온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