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입니다. 짧지만 또 그래서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처음 이 시를 봤을 때 아무 의심없이 '소통'을 갈구하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라니 말이죠. 그런데 역으로 '섬'을 수많은 사람들의 부대낌 속에서 나만이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외로운 공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여행을 갈 때 추구하는 것처럼 말이죠. 사람 사이에 있기에 겪어야 하는 온갖 속박들, 그 무거운 여장을 풀어헤치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게만 (혹은 내게 의미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 공간, 그리고 그 시간.
이상하게도 '나츠메 우인장'을 보면서 이 시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소통'이라는 측면에서도 '고립'이라는 측면에서도 말입니다.
너와 나,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아닌 존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세계의 것과 저 세계의 것, 과거와 현재, 기억과 기억. 그리고 이 마음과 저 마음이 닿거나 멀어지는 순간.
나츠메 우인장의 소소하다면 소소하다 할 에피소드들을 한 편 한 편 보다 보면 '소통에 대한 간구'와 '관계로부터의 회피 혹은 떨쳐버림'같은 심정이 씨줄 날줄로 교차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나츠메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를 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처음, 나츠메는 자신의 그 저주받은 능력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의심받고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 것에 괴로워 합니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이해 받지 못하고 점차 이해 받기를 포기하면서 스스로를 고립시켜가죠. 외로움이 당연한 듯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그러나 끊임없이 외로워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츠메가 남(요괴+인간)을 대할 때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호의적입니다. 친절하게, 그리고 기꺼운 마음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줍니다. 나츠메는 인간과 요괴의 틈바구니 속에서 소통을 두려워하는만큼 소통을 원하고 있죠. 양쪽에 손을 뻗고 따뜻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나츠메는 착한 아이니깐요.
아이
- 김남조
지나간 연분들과의 사이
못다 푼 실타래의 심사(心思)를
나는 「아이」라 부른다
몸 다친 아이,
마음 다친 아이,
할 말 많은 아이와
전혀 말 없는 아이.
자라지 않는 아이와
성급히 늙은 아이,
저마다 얼마간 비극적인 건
피와 살을 준 내 탓이다
엄마 탓이다
나의 아이들아
나의 아이들아
그리고 또 나의 아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