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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소설가의 일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7. 4. 4. 16:14

    김연수 씨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보았다.

    한창 재미있게 텔레비전 시청 중이라 당장 책을 읽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싶을 때 주로 하는 행동이 전자도서관 어플에 들어가서 무슨 책이 있나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접하였는데 최근 들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원래 책을 열 권씩 쌓아놓고 돌아가며 보는 편인데, 이 책을 잡은 이후 두어 권 정도로 줄이며 완독하였다. 초장을 읽자마자 이 책은 재미있을 거라고 직감하고 바로 친구에게 권했을 정도이다. 

    맨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올해의 계획으로는 초심으로 돌아가 건성으로 소설을 쓰겠다, 다른 사람이 권하는 일은 반박하지 않고 무조건 해본다 등등이 있는데...," 이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나는 워낙 호오가 분명하고 남이 권한 바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하는 사람인지라 남이 무언가를 권하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내가 이 부분과 저자가 묘사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이야기하며 일독을 권하니 친구는 "자의식 강한 사람이 자의식 강한 사람 책을 보니 공감가서 재미있나 보구나"하며 (처)웃는다. 고얀.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정도였다. 왕십리 역에서 환승해야 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한양대 역 문이 닫히고 있었다. 결국 뚝섬 역에 내려서 Help를 눌러가며 반대편 플랫폼으로 넘어온 후 다시 책을 읽다가 또 왕십리 역에서 못 내릴 뻔할 정도로 강박적인 독서를 하기도 했다. 글쟁이답게 문장이 엄청나게 차지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그가 제시한 악행에 대한 설명이었다. "악행의 이유는 그렇게 짧거나 사실상 거의 없다." 와우.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은 끔찍한 악행을 행하는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괴물인 양 생각하던데, 한나 아렌트에게 배운 바에 따르면 끔찍하면 끔찍할 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악행의 근거로 한나 아렌트처럼 정교한 철학서를 쓴 위대한 악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악인은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 그렇게 정교한 논리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2부. 절망보다 중요한 건 절망의 표정 및 몸짓, 그리고 절망 이후의 행동). 내가 읽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결론과는 굉장히 달랐다(즉,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악인에 대해서는 김연수 씨의 의견에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악행에 대해서는 그가 옳겠구나 생각한다. 

    그는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는가? 그 이유는 그 길이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동력으로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인식,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로서의 사람,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존재의 본래성을 직시하는 현존재(다자인)로서의 그였기에 '소설가의 일'을 계속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하이데거 영향이 보이지만 그의 전반적인 문학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말하는 비극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운명을 알면서도 이에 맞서는 자들의 생고생몸부림이랄까. 

    일견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지만, 독선적인 부분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작가가 자각하지 못한 채로 쓰는 여성에 대한 타자화에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긴 하다. 더불어 아일랜드 작가 브랜던 비언의 입을 빌려 쓰는 비평가에 대한 평가는 웃겼지만 거북살스러웠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자기가 한 말이 아니라고 굳이 언급했지만, 이야말로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에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비평가이면 가장 좋고,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은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끼쳐오는 그 얕음이란.

    뭐 그건 그렇고, 이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또로록 흘리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분에서였다. 난 딱히 그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의 실정도 하나, 둘, 하면서 열거할 수 있는데 그에게는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때로는 뼈아프게 사무치기도 하고, 때로는 옅은 미소가 번지는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이 책은 정말 재미있다(책에서는 이런 식으로 쓴 문장을 토할 것 같다고 하더만). 

    읽다보면 글이라는 것이 참 쓰고 싶을 정도로.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