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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과학이라는 헛소리-욕심이 만들어낸 과학, 유사과학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8. 4. 30. 13:28

    포털 사이트의 '책문화' 판이던가, 아니면 '과학' 판이던가에서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연재를 접하고 바로 도서관에서 대출.

    이 책은 과학의 형상을 띠었지만 실상은 사이비, 자기기만적 사기행각인 유사과학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독자를 미몽에서 깨우고자 하는 계몽서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게르마늄 악세사리, 콜라겐, 효소, 카세인나트륨, 천연 비타민에 관한 이야기는 평소 상식이라 여겼던 것들이 실은 과학의 탈을 쓴 유사과학임을 알게 해줘서 꽤 도움이 되었다. 한 때 유행했던 바이오리듬, 산성체질, 물은 답을 알고 있다, 피라미드 파워가 어떤 역정을 거쳐 논파되었는지, 혹은 왜 비과학적인지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특히,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류의 이야기는 저변에 깔고 있는 유심론적 접근, 즉 비물질적인 것(인간의 언어)이 물질(여기에서는 물)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 결론은 사이비. 

    이 책의 백미이자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제6장, '혐오, 과학의 탈을 쓰다' 와 제7장 '과학은 과학에게 종교는 종교에게' 이다. 저자도 이 내용에 힘 주고 싶어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 말 많은 캐릭터들이 당위성만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듯 하다(와레와레노 정신. 와레와레노 목표). 잔소리는 많은데 논파하려는 상대방의 주장을 너무 소략하여 두루뭉술하게 썼다. 그래서 논파가 되었는데도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함정. 

    예를 들면, 245쪽에서 지적 설계론자들이 주장하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지적 설계론자들이 가장 자주 들고 나오는 것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입니다. 생물학적 시스템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보다 단순한 시스템 또는 덜 복잡한 조상에서 자연 선택을 통하여 진화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지요. 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생화학자 마이클 비히입니다. 그는 '기본적 기능을 하는 많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 작용하면서 어울려 구성되는 시스템'이 '환원 불가능한 복잡계'로 구성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되면 시스템의 기능이 모두 정지하게 된다고 정의하였습니다. 이후 지적설계론자들이 애용하는 개념이 되었지요."

    애초에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던 나도 이 글을 읽고 뭔 소리래 했는데, 처음 이 개념을 접한 사람이 과연 의미를 이해할까 싶었다. 말만 존댓말을 했을 뿐이지 하나도 친절하지 않은 설명이다. 어차피 말도 안 되고 곧 까부술 개념이니 대충 설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편집에서의 아쉬움이나 저자의 엄정성 문제도 가볍게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59쪽: 발표했을 입니다 -> 발표했을 뿐입니다

    201쪽: 횡횡하다 -> 횡행하다 

    225쪽: 아버지는 날 낳으시고...라는 시조 이게 언제부터 시조였는가. 

    이슬람과 아랍인은 구분해야 하는 개념인데 이를 혼재한 것 등.

    저자가 워낙 잔소리를 많이 해서 꼼꼼하게 읽지 않고 휙휙 넘기면서 읽었는데도 이 정도인데 자세히 봤으면 오류를 더 많이 잡았을 듯 싶다. 초등학생들이 보는 추리 게임 책 같은 표지 디자인도 아쉽고. 

    마지막으로 왜 pseudoscience의 역어로 유사과학이라는 용어를 썼는지도 궁금하다. 유사과학이나 의사과학, 더 나아가 대체과학 같은 용어는 굉장히 '과학'스러워서 용어 자체에서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게 한다는 함정이 있다. 오히려 책의 내용(혹은 공격성)에 더 적절한 용어를 선택한다면 사이비과학이나 허위과학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덧 하나. 책을 읽고 나니 내가 evolution의 의미를 자꾸 더 나아짐, 더 발전됨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면서도 참으로 고쳐지지 않는 기계적 반응이랄까. 

    *덧 둘. 창조과학 부분을 읽으며 주위에 포진하고 있는 독실한 개신교 신앙 친구들이 생각났다. 공룡의 존재이니 우주의 시원으로서의 빅뱅이론에 대해, 현대과학의 패러다임 하에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며 가역성이 있다고 말하는 그들. 나는 그들을 어떻게 용인하고, 그들은 날 어떻게 용인하길래 우린 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일까. 오묘하도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