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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 바르샤바 레이오버 - 올드타운 역사지구 둘러보기
    여행/체코-헝가리 2019. 7. 24. 14:02

     

    광장으로 번역되는 square는 정사각형을 뜻하기도 하는데, 바르샤바 구시가지의 잠코비 광장, 혹은 왕궁 광장(Castle Square)은 삼각형이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지그문트 3세 바사 기둥(Kolumna Zygmunta III Wazy)이 우뚝 서있다. 바로 그가 400년 전 폴란드의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긴 장본인이다. 당시 동아시아는 어땠는고 하니, 조선은 선조, 명나라는 만력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스리던 때다. 대충 어떤 판국이었을지 느낌 올 것이다. 

    이후 구시가지는 나치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으나, 지금은 완벽히 복원되어 유네스코 역사지구로도 지정되었다. 골목길을 걸으며 잘 살펴보면 무너진 옛 벽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덧대어 건물을 재건한 것을 볼 수 있다. 그 연결부위를 보다 보면 파괴된 구시가지의 영광을 제대로 복원하고 말겠다는 집념이 보이는 듯하다.

    건물 색감도 아름답고, 날씨도 좋고, 하늘에 구름도 멋들어지고, 한편에선 강물이 쫄쫄 흐르고, 유동 인구도 적당한 광장에서 나는 기분이 최고로 업되어 날뛰기 시작했다. 보통은 외국 나와도 여행 왔다는 실감을 빨리 못하는 편인데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너무나도 유우러업이다. 그래서 더 설레고 신났나 보다. 그 감정은 사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자세를 제대로 취하고 찍은 사진을 찾을 수가 없...

    광장에서 한동안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가 들어간 곳은 바로 바르샤바 왕궁. 마침 앞뜰에서는 무슨 행사인지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어린이들이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왕궁은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뭔가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그곳을 빠져나와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바로 성 요한 대성당(St. John's Baptist Archcathedral, Bazylika Archikatedralna w Warszawie p.w. Męczeństwa św. Jana Chrzciciela).

    성 요한 성당의 특이한 십자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왕과 왕비의 대관식이 치러지던 장소이다. 이름이 대성당이라고 규모가 엄청나지는 않다. 대성당이란 주교가 거하는 성당으로 다른 말로는 주교좌성당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성당. 성 요한 성당은 14세기에 건축된 이후 허물어지고 재건되면서 굉장히 모던하고 독특한 파사드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 들어가서 또다시 경건해서 숨을 못 쉬겠다며 허우적대다가 나왔다(물론 성 십자가 성당만큼은 아니었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낮 12시에 무료 파이프 오르간 공연이 있다고 한다. 레이오버 일정 상 아쉽게도 관람이 불가능했다.

    모퉁이를 통과하니 탁 트인 공간에 노천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곳이 바로 올드타운 마켓 광장(Old Town Market Square). 알록달록 예쁜 건축물로 둘러싸인 이 광장에서 사람들은 각기 음식과 술을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그 광장 가운데에는 인어 동상이 있다. 예의 인어공주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게 칼과 방패를 들고 있는 살벌한 무장 인어 되시겠다. 이 인어는 폴란드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한다. 굳이 말하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도 같은 상징성이랄까(상의 탈의라는 측면에서도 유사하다). 옆에서 같은 포즈로(물론 옷은 제대로 입고) 인증 사진을 찍은 후에 다음 장소로 이동.

    그간 사진으로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곳이었다. 바로 올드타운을 지키는 바르바칸(혹은 바르비 칸 Barbican)이라는 요새이다. 바르비칸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옹성이다. 선사시대의 매장 풍습인 독무덤을 기억할 것이다. 독무덤은 우리말로 다듬기한 것이고 그 전에는 옹관묘라고 불렀다. 이 옹성의 옹, 옹관묘의 옹이 모두 항아리 혹은 큰 독을 뜻한다. 성문 앞에 항아리 모양으로 돌출된 성벽을 한 겹 더 쌓는 방식이라 방어에 효율적이다. 이런 잡소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난 요새를 참 좋아한다. 성벽만 보면 오르고 싶어 난리이다. 게다가 이곳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긴 석양까지 드리워진데다가 고즈넉함까지 갖추고 있다. 사진을 수백만 장 찍었다는 소리이다.

     

     

    다시 삥 돌아 잠코비 광장으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광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즉, 옥상)가 있다. 쉽게 말하면 한 동 짜리 아파트 옥상 위에 올라가게 하고 돈을 받는다. 일몰 시간에 올라가서 석양과 야경을 동시에 잡기로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여행 오기 전에는 주변 맛집을 엄청 알아왔지만 다들 웨이팅이 있다. 그래서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하고 들어간 곳이 바로 자피에첵(Zapiecek)이다. 올드타운까지 오는 길에도 여러 차례 본 폴란드의 대표 프랜차이즈이다. 우리에게는 폴란드식으로 먹을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래서 시킨 것이 피에로기. 바로 폴란드식 만두.

    자피에첵은 손님으로 가득했지만 우리 두 명이 앉을자리 정도는 있었다. 폴란드 전통 복장을 한 종업원과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아쉽게도 잘 안 된다. 엄청 힘들게 피에로기와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친구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으나 화장실이란 단어조차 통하지 않아 번역기를 써야 했다(toilet이 toaleta(또알레타)로 변하는 정도). 그간의 경험 상 동구권, CIS 지역, 공산주의 국가였던 나라들은 러시아어 교육에 중점을 두다보니 영어가 안 통하긴 했다. 아까 호텔 리셉션에서 영어가 너무 잘 통해서 방심했나 보다. 그럼에도 종업원은 굉장히 친절했고 음식도 빨리 나왔다.

    피에로기마다 속 재료가 다양해서 안에 뭐가 들어있나 탐색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꽤 짭짤해서 맥주가 술술 들어가는 좋은 안주였다. 원래는 먹어보고 다른 것도 더 시키려고 했으나 의외로 배가 두둑하니 차버렸다. 꽤 그럴싸한 분위기에서 폴란드 전통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시 나와 전망대로 올라갔다. 전망대 이름은 Taras Widokowy.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망대ㅋㅋㅋㅋㅋㅋ. 잡다한 꾸밈이라고는 없는 폴란드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작명이다. 성인 입장료는 6 즈워티. 현금만 받는다는데 우리에게는 즈워티가 없다. 친구가 혹시 유로는 받냐고 물어보니 2유로를 내라고 한다. 한 사람당 800원 정도 손해이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만한 부유함이 있다. 그리 높지 않은 전망대이지만 조금이라도 각도를 달리해서 바라보는 잠코비 광장은 색다르고 아름답다. 파스텔톤 건축에 분홍빛 석양까지 더해져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화 800원 정도에 타격 없는 나의 재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잠코비 광장

    개와 늑대의 시간이 뿜어내는 오묘함에 한참을 취해있다 보니 저녁 바람이 꽤 차갑다. 난 5월 한달 내내 심한 감기에 걸렸다가 겨우 나은 상태였다. 여행 며칠 전까지도 감기가 낫지 않아서 이대로 코가 막히면 유럽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할 텐데 하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다행히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이날 전망대에서 추위와 정통으로 맞서 싸우다 보니 다시 목소리가 이상해지고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우리는 추위에 벌벌 떨며 다시 175번을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혹시나 바르샤바 레이오버 기회가 있다면 꼭 놓치지 말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세 도시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한 곳이 바르샤바이다. 하루만 머물다 가기에는 아쉬운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이다. 혹시나 쇼팽을 좋아한다면 저녁에 여러 곳에서 공연이 있다고 한다. 쇼팽을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같이 가볼까 했으나, 당일에 리뷰가 좋지 않은 공연만 있어서 다음 기회로.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