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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프라하 - 카페 슬라비아, 비셰흐라트 언덕, 스메타나 홀
    여행/체코-헝가리 2019. 7. 31. 16:11

    블타바 강변을 따라 내려오니 사람이 유독 많은 다리가 보인다. 한눈에 까렐교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시간대에 가기로 하고 일단 앉아서 쉴 곳을 찾았다. 그래서 트램 타고 슝슝 간 곳이 바로 카페 슬라비아.

    짠내투어에 나온 걸 보고 체코식 크레페인 팔라친키가 먹고 싶어서 그곳으로 정하였다. 마침 5시가 넘어서 한쪽에서 피아노 연주가 한창이다. 서버는 무슨 음료만 말하면 그런 건 없다더니 음료도 (비싼 걸로) 제멋대로 가져왔다. 팔라친키도 딸기 맛이 먹고 싶다 하니 그런 건 없단다. 그래서 메뉴판을 보면서 여기 딸기라고 쓰여 있는데? 하니 그걸로 가져오겠단다. 나 원 참. 

    다행히 팔라친키는 정말 맛있어서 그야말로 순삭. 1인 1 팔라친키 해야할 듯. 계산은 유로로 했다. 그 뻣뻣하던 서버는 팁을 받을 시간이 되니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굽신거린다. 만족스러운 팁에 연신 고맙다고 얘기하는 서버의 입술 양끝으로 번져가던 게거품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잠시 쉬면서 당분 보충했다고 힘이 난다. 그래서 향한 곳이 비셰흐라트(Vyšehrad) 언덕. 관광 중심지에서 약간 거리가 있지만 체코 건국 설화와 어우러진 곳이다. 마치 로마의 일곱 언덕 같은 느낌. 약 천년 전 푸르제미슬 왕가의 왕궁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요새에 고딕 양식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Saint Peter and Paul Basilica), 공동묘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동묘지는 체코 역사의 중요한 위인, 이를 테면 스메타나, 드보르작, 알폰스 무하, 얀 네루다 등이 안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프라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가 올라가는 길을 못 찾겠는 것이다. 8시 시민회관 공연에 맞춰가려니 촉박해서 마음이 더 급하다. 그래서 내가 절대 안 하는 일, 사람 붙잡고 길 물어보기를 시전 했다. 아니, 친구가 했나. 그것도 두어 번. 그리고 여전히 헤맸다. 천신만고 끝에 공동묘지에 입성. 어둡지만 음침하지 않고 각각의 비석이 개성을 드러내는데 이 또한 조화로운 경건한 묘지이다. 은색 광택이 도는 검은색 느낌이랄까. 

    붉은 색으로 표시된 것이 주요 인물의 묘지

     

    여유롭게 공동묘지를 거닐면서 좋아하는 위인도 기려 보고 완상 하고 싶었으나 그런 건 사치. 광대한 규모의 묘지를 통과하니 베드로와 바울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들어가고 싶은데 늦어서 문이 닫혀있다. -_-; 그런데 문의 색감이 너무 예뻐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이렇게 색깔이 화려한 성당문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지금껏 열린 문을 통과해 성당 내부를 보느라 문따위에 집착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역시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준다고 하지 않던가. 이 상황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말일까. 혹여 문이 다 닫혀있어도 그조차 예쁘다며 좋아하는 나와 내 친구. 우리는 이 시대의 긍정인들. 

    성당 옆 뜰에는 체코 건국 설화와 관련된 인물 석상이 있다. 그래 이곳에 리부셰와 프로제미슬 조형물이 있겠군. 석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경관. 프라하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바로 그 경관.

     

    그러나 이미 알고 있었다. 프라하의 경관이 우리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걸. 신시가지, 구시가지, 말라스트라나 지구, 블타바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오는 비셰흐라트에서 보는 경관도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지 않는다. 터키 사프란볼루의 흐드를륵 언덕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떠오르지만 평화로움도 그곳이 낫다. 그래서 여러모로 더 아쉬웠다. 차라리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일찍 와서 요새 속도 들어가 보고, 성당 안도 구경하고, 묘지도 찬찬히 살펴볼 걸.

    우리는 공연 시간 때문에 너무 마음이 급했다. 누가 마음속의 패닉 버튼이라도 누른 듯 미쳐 날뛰며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이 구역에서 이러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듯).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나이에 무릎뼈를 혹사시키며 계단을 우다다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공연 시간 훨씬 전에 여유롭게 시민회관 도착. 비셰흐라트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아니면 내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아서 공간 감각이 왜곡된 것일지도. 

    들어가기 전에 저녁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대로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친구는 물을 사려고 앞에 있는 0% 수수료 환전소에서 20유로만 바꿨는데 이거슨 날강두. 환전은 다른 곳에서 해야 한다.

    시민회관 문 앞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시민들이 속속 도착한다. 친구가 묻는다. "우리 괜찮은 거야?" "앙. 헐벗지만 않음 돼." 그래도 약간 주눅 든 채로 입장. 건물 안은 관객으로 가득하다. 프린트해 온 표를 제시하고 스메타나 홀에 들어가 얌전히 자리 잡았다. 

    오늘은 Louis Langrée가 지휘하는 체코 필하모닉 연주. 아래는 연주 목록.

    베를리오즈
    비밀 재판관 서곡(Les Francs-Juges overture)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Piano Concerto in G major) - Javier Perianes (피아노 협연)

    세자르 프랑크
    교향곡 D단조(Symphony in D minor)

     

    프라하에 와서 현재까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이 공연.

    덥고 힘든 프라하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구시청사 입장권을 온라인 구매 하고 드레스덴 행 버스를 예매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저녁식사도, 맥주도 없는 프라하의 첫 날. 

    내일은 프라하가 더 맘에 들기를.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