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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부다페스트 - 세체니 다리, 부다 성, Cyrano Étterem
    여행/체코-헝가리 2020. 5. 25. 15:53

    부다페스트 도착했으니 다들 하차하란다. 아무리 좋은 디럭스 침대칸이었지만 밤새 기차 진동을 느끼며 잤더니 몸이 좀 찌뿌둥하다. 함께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졌고, 우리 둘만 어리바리하게 기차역에 남아 숙소에 갈 방법을 강구하였다. 

    Budapest Keleti

    가장 쉬운 방법인 전철 탑승. 부다페스트의 전철 에스컬레이터는 과연 소문대로 빠르다. 약간 휘청하면서 타긴 했지만 성질 급한 한국인은 후련하다. 그런데 이 속도에 맞추기 어려운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은 어찌 되는 건지.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는 사뭇 걱정스럽다. 

    지하철 역 두 정거장 만에 숙소가 있는 Astoria 역에 도착하였다. 숙소는 K9 Residence Budapest라고 하는 스튜디오형 아파트이다. 일단 이곳은 위차가 편리하다. 주변이 관광지고, 지하철 역 및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다. 환전소나 마트 등도 다 근처에 있고, 대로변이라 안전하다. 다만 큰 길가에 면하다보니 창문을 열면 자동차 소음이 시끄럽다. 이것도 창문만 닫으면 그다지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 와중에 사이렌 소리는 잘도 들린다. 시설도 프라하의 숙소에 비하면 깔끔하고 모던했는데, 숙소 사진을 안 찍었다.

    http://www.k9residence.com/

     

    K9 Residence / The Hotel

     AIRPORT TRANSFER Pick up service from the airport is the most comfortable way to get to your apartment. Fixed price pick up at the airport is available for 27 EUR*/car (up to 4 people) or 37 EUR*/minivan (up to 7 people). Please make a transfer reservati

    www.k9residence.com

    들어가는 길을 못 찾아 약간 헤매다가 입장. 얼리 체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오전 10시밖에 안 됐다. 할 수 없이 짐을 맡기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부다페스트 시내 구경에 나섰다. 

    행선지는 세체니 다리(Széchenyi Chain Bridge). 숙소에서 1.3km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기차역에서 프리패스를 사온 터라 105번 버스에 탑승했다. 사람이 백만 명이다. 아침부터 다들 어딜 그리 가는 걸까. 자칫 못 내릴 뻔 하다가 간신히 내렸다. 모퉁이를 조금 돌아가니 눈 앞에 거대한 현수교가 보인다.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가 떠오른다. 아마 도보로 건너면서 이 각도에서 바라본 유이한 현수교라 그런가보다. 

    원래 이 날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은 해가 보이고 후덥지근하다. 그래도 강 위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길 건너에는 부다 성이 보이고, 우리 뒤쪽으로는 국회의사당 등이 보인다. 들뜬 마음에 사진을 찍어대는데 둘다 얼굴이 영 푸석푸석하다. 원래 그렇다. 아직 기차 여행의 여독이 강력하게 남아있다. 아침이라 그런지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세체니 다리는 1849년 개통 당시 최고의 기술력이 투입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이 다리 건설을 구상한 이슈트반 세체니의 이름을 따 지어졌는데, 아쉽게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독일 군이 다뉴브 강의 교량을 모두 파괴할 때 파괴되었다가, 복구된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클라크 아담 테르(Clark Ádám tér)라는 광장이라기 보다는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이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초빙한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는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헝가리의 독립전쟁 당시 폭파될 위기에 처한 다리를 지켰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함이라 한다. 

    클라크 아담 광장에서 부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강삭철도)가 눈 앞에 보인다. 원래는 증기기관으로 작동하였으나 지금은 전기로 움직인다. 편도는 1,200포린트이고, 왕복은 1,800포린트인데 이걸 타고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표는 편도로 끊었다. 아직은 아침이라 줄이 길지 않았는데 내려왔을 때는 대기줄이 엄청났다. 언제나 그렇듯 푸니쿨라 타는 시간은 참 짧다. 순식간에 도착하니 언덕 위의 광장이 펼쳐진다. 친구는 그 와중에 사람도 많은 이곳에서 늘어지게 누운 고양이를 발견하고 '고냥이, 고냥이' 라고 중얼거리며 사진을 찍어댄다. 친구가 그러고 있자, 몇몇 '고냥이' 피플 들이 몰려들어 누운 고냥이 앞 때아닌 문전성시.

    푸니쿨라 위쪽으로 투룰 동상이 보인다

    고냥이 찬양에 여념이 없는 친구를 이끌고 부다 왕궁(Budai Vár) 쪽으로 갔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독수리 같이 생긴 새 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헝가리 건국 신화에 나오는 투룰(Turul)이다. 원래 중앙아시아의 기마 유목 민족이었던 헝가리인을 이 다뉴브 강이 흐르는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끈 새가 바로 투룰이라고 한다. 이 새는 발톱으로 칼을 거머쥐고 있는데, 이 칼을 부다페스트에 떨어뜨리면서 마자르 민족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걸 두고 고구려의 삼족오와 같다느니, 헝가리의 여러 설화가 우리나라 신화와 같다느니 하면서 자꾸 한민족과의 연관관계를 찾는 자들이 있는데 더이상 언급할 가치도 없고, 기회가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 

    약 10세기부터 헝가리 지역에 터를 잡은 마자르 민족은 13세기에 이 부다 언덕에 자리를 잡으면서 성을 쌓고 궁성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입으로 부다가 함락되면서 이 궁성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18세기부터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면서 여러 번 개축과 파괴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는 국립미술관, 역사박물관, 세체니 도서관 등이 있다. 왕궁 구석구석에는 헝가리의 주요 인물이나 전설 등을 조각한 조각상이 조성되어 있고, 정원도 꽤 아름답다. 물론 부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뉴브 강변의 풍광을 빼놓아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원래는 바로 어부의 요새에 갈까 했는데, 이미 점심 때가 지났다. 부다 성에서 다뉴브 강변을 바라보며, 어느 식당을 갈까 구글 맵을 찾아보다가 페스트 지역에 있는 음식점을 낙점하고 천천히 언덕을 타고 걸어내려왔다. 친구는 당이 떨어져서 근처에 있는 노점에서 젤라또로 다시 연료를 충전한 후에 버스를 타고 페스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바로 헝가리 음식을 파는 Cyrano Étterem이라는 레스토랑.

    인테리어도 훌륭한 팬시 레스토랑이다. 우리는 점심 메뉴로 굴라쉬, 메인요리, 디저트가 있는 C type을 주문하였다. 음료까지 해서 총 41유로 정도 들었는데, 음식도 정갈하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워낙 굶고 다니는 것이 일상인 우리 여행인지라 만족스러운 식사. 

     

    밥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다뉴브 강변을 따라 달리는 2번 트램을 타러 갔다. 이 2번 트램으로 말할 것 같으면, 리스본의 28번 트램, 비엔나의 링슈트라세 트램과 함께 풍광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친구와 '앉아서 바깥 구경하니 좋네' 하며 멍하니 국회의사당을 지나갔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하며 내리다가 우리를 툭툭 치며 내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보니까 그곳이 종점이었다. 2번 트램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았지만, 무심한 듯 친절한 헝가리 사람 느낌이 더 좋아서 기억에 남는다. 부다페스트의 느낌은 특히나 여행을 다녀온 후 읽은 테리 티보르의 <사랑>을 보면서 자우룩해졌다. 부다페스트는 약간은 거칠지만 친절한 사람들로 기억된다.

    우리는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오면서 강변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커피를 즐겼다. 뒤늦게 체크인을 한 후 방에 들어가서 꿀잠을 잤다.

    들어는 봤는가 커피 냅(coffee nap).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