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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 We were here(on Steam) 게임리뷰
    오덕기(五德記)/등등 2021. 2. 15. 16:57

    일단 밑밥을 깔고 가자. 나는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모바일 게임을 할 때가 있는데, 주로 블록, 퍼즐류나 방탈출 게임류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방탈출 게임(무료) 도장깨기를 한 후, 몇 달을 쉬며 다른 방탈출 게임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뭐 이런 식이다.

    내가 탈출게임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이 권해준 게임이 바로 We were here이다. 전설 속 구름 낀 봉래산처럼 아스라이 이름만 알던 <Steam>이라는 곳에서 다운로드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2명이 할 수 있는데 본격 우정파괴 게임이란다. 

    친구라고는 달랑 한 명이라 이 우정이 파괴되면 안 되는데 걱정하며 친구에게 해보자고 했다. 게임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에 몇 달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스케쥴만 잡았다. 둘 다 그다지 바쁘지는 않은데 워낙 주말 시간을 소중히 한다. 평소 태블릿만 쓰던 친구는 이 게임을 위해 랩탑도 장만했다. 

    결전의 그 날. 각자 we were here를 깔고 집결했다. 방 제목은 친구의 고양이 이름. 친구가 입장했다.

    처음 맡은 역할은 내가 사서였고, 친구가 탐험가였다. 원래는 게임 상의 무전기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카톡이나 줌 등으로 소통하였다. 들어와서는 360도 회전만 가능하고 전진 후진이 안 된다. 원래 이런 게임인 건가 고민했는데 친구가 열심히 찾아보더니 조작법을 알려준다. 이제 앞뒤로 움직일 수 있다며 우리는 원숭이 목소리 같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WASD: 방향 키
    스페이스바: 점프
    C: 구부리기
    E : 행동
    V: 무전기 사용

    천신만고 끝에 탐험가 친구가 무전기를 찾고 (사서는 무전기 찾기 쉬운데, 탐험가는 좀 돌아다녀야 한다.) 맨 처음 문을 통과하려고 하는데, 첫 퍼즐의 그림 문자가 눌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참을 용쓰던 친구가 역할 체인지를 요구한다(내가 요구했을지도 모르겠다).

    방폭 후 다시 시작. 이제 내가 탐험가이고 친구가 사서이다.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누르니 눌린다. 그리고 '그림이 있는 방'에서 무엇인가 해보기도 전에 죽음. 또 역할 체인지. 그리고 또 역할 체인지. 탐험가 친구가 '지하감옥'을 천신만고 끝에 통과하는 동안 사서 역할을 하던 나는 이 던전의 지도와 파훼법을 완전히 익혔다. 친구가 얼어붙은 안뜰에서 발전기 게임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설명하는데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직접 봐야겠다고 하면서 다시 역할 체인지. 이제 내가 탐험가가 되었고, 이것으로 고정. 

    여기에서 우리가 했던 거대한 삽질을 얘기하자면, 우리는 게임 오버된 스테이지에서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죽으면 quit을 누르고 다시 방을 만들고, 처음부터 시작했다. 둘 다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닌데(이 걸 강조해야겠다ㅜㅠ), 여기에서 다시 시작이라는 (영문) 지시문을 읽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허탈한 나머지 빨리 quit을 누르고 다시 하자고 성화를 부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지하감옥'을 두 번 정도 통과하고 '얼어붙은 안뜰'에서 얼어 죽은 다음에야 바로 그 스테이지에서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친구가 알아냈다. 매번 리셋되던 인생을 돌아보니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한 후 다시 만날까 말까를 고민하다 만나기로 하였다. 둘 다 중독이 잘 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내가 탐험가를 하기를 잘한 것 같다. '얼어붙은 안뜰'에서 체스를 해야 하는데, 내가 체스를 1도 모른다. 시야가 성에로 가려서 앞이 안 보인다며 울고 자빠져있는데 사서인 친구가 zoom으로 체스 사진을 띄우더니, 이렇게 이렇게 말을 움직이라며 화살표로 좍좍 순서를 그려준다. zoom으로 강의한다더니 엄청 프로페셔널하다. 사서 친구 덕분에 수월하게 체스는 통과하였는데 서로의 공을 치하하며 잠시 농땡이를 부리는 사이에 '얼어붙은 안뜰'에 갇혀 버렸다. 시야가 다 가려졌는데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문도 안 보인다. 완전 멘붕이 되어서 울며 불며 정원을 헤맸다. 일단 체스를 통과하면 시야는 성에로 가득 차도 얼어 죽지 않는다.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친구가 유튭 walkthrough방송을 보더니 문이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 

    '어두운 복도'는 쉽게 통과했다. 야맹증인 친구가 어두컴컴한 가운데에 책 표지의 영문 지시문을 읽어주면 내가 그 지시대로 움직여서 통과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우리들은 영어를 못하지 않는다(흑흑). 이 스테이지와 다음 스테이지는 약간의 영어실력(독해력 및 청해력)을 요한다. 동쪽은 오른쪽, 서쪽은 왼쪽으로 알고 시작하는 건 좋다. 여기를 통과하면 '유령 들린 극장'인데 여기에서는 뭔가 므하하하 하는 목소리로 축음기가 연극 내용을 지시하는데 사서 친구가 하라는 대로 했다. 친구가 마리오네트가 다가온다며 무섭다고 그런다(몇 번 죽기도 했다). 매번 탐험가인 나만 죽다고 사서 친구가 죽으니 슬펐다(읭). 연극 내용은 어떤 궁전에 왕, 왕비, 신하들이 있는데, 갑자기 왕이 미쳐서 칼로 다 죽여버린다는 내용. 을씨년스럽다.

    그리고 마지막은...난 뭣도 모르고 달렸을 뿐이고.

    이렇게 장장 7시간의 게임이 끝났다. 남들은 2-3시간이면 한다는데, 워낙 삽질을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까지 했다. 우리는 6개월 후에 역할을 바꿔 다시 해보기로 했다. 게임을 좋아하는 장년 청년 되시겠다. 무전기를 쓰지 않고 다른 대화채널을 써서 그런 건지, 우리의 우정이 워낙 깊기 때문인지 우정은 파괴되지 않았다. 게임하는 내내 겸손과 자학과 자책만이 있었을 뿐.

    BFF.

    나중에 여력이 되면 We Were Here 후속 시리즈와 Keep Talking and Nobody Explodes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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