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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22. 5. 2. 11:52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약 4주 만에 다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독서모임에 함께 읽자고 추천한 것이다. 진도 안 나가고 수다만 떨기로 유명한 우리들이지만 요즘 쉬운 책만 읽으면서 완독을 잘도 한다. 더불어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도 읽는데 욕심 안 내고 일주일에 2 챕터씩이라 이건 한 1년 걸릴 듯. ㅋㅋㅋㅋㅋㅋ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저자의 수업을 듣고 그의 열혈팬이 된 이가 추천한 책이었다. 사실 그 친구가 전공했다는 보건과학이라는 학문은 그다지 익숙한 분야는 아니었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뭘 하는지는 모르는 학문이었달까. 하여튼 보건과학 전공자가 아니었으면 이런 책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2017년에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은 책인데 까맣게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이 책은 일단 굉장히 쉽고 방법론은 간단하다. 통계를 통해 병증을 개인에게 귀인하지 않고 사회 구조에 귀속시킨다. 병증에 렌즈를 들이대면서 개인에게 접사 하지 않고, 내 몸을 높이 들어 올려 사회 전체를 부감하게 한다. 병의 원인은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 등의 생물학적 원인으로 초래된 것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우리에게 사회적 문제가 네 몸을 해친 거라고 지난하게 설득한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는 쉽다. 내가 아픈 것, 그리고 상대방이 아픈 이유가 너나 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기인한 것이라니 말이다.  

    저자는 특히 소수자와 약자에게 관심을 보인다. 영구적인 약자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보기에는 강자여도 상황에 따라 힘을 잃기 쉬운 사람들도 포함한다. 그래서 견습의도, 심리적으로 강함을 요구받는 남자도 해당된다. 언제 어디에서 약자가 될지 모르는 우리 모두에 대해 그 병증을 파헤친다. 너무 깊지 않게, 그렇지만 꽤 진심으로.

    어찌 보면 껄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이다. 특히나 소수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에게 혐오 정서가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린 상태에서는 더 그렇다. 낙태를 하려는 여성, 동성애자, 재소자,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쌍용자동차 해직자와 그 가족,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등. 나라고 항상 그들 편에 서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대세적으로 동감하다고 하지만, 항상 동의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꼽자면, 낙태법을 입법함에 있어 양분되는 철학 자체에 집중하지 말고, 실제로 법안이 실행되었을 때 사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찌 되었건 입법 철학과 실생활은 별도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여부 아닌가. 

    또한 위험의 외주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예전 엄청난 산재를 불러일으킨 원진레이온 사태에 대한 아티클을 읽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도 이 내용이 다루어졌다. 일본에서 노동자 산재를 불러일으킨 이 저주받은 설비는, 우리나라에 흘러 들어왔고, 역시 많은 희생자를 양산한 후, 중국으로 흘러갔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북한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이다. 책임의 소재를 불분명하게 하는 관료제의 가장 빅똥인 외주화는 이렇게 세계의 낮은 곳으로 흘러가며 사람들을 좀먹는다. 위험이건 비도덕이건 외주화라는 이름이 아로새겨진 것은 항상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독서모임에서 바로 전에 읽었던  책이 빌 브라이슨이 쓴 <The Body> 라는 책인데 이곳에서는 많은 질병이 정복된 현대사회에서 네 건강 문제는 전적으로 네게 귀속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하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보고 나면 아픔에 대처함에 있어 어느 정도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글에서 이해인 수녀님 시집과 같은 착한 냄새가 나서 이 지나친 선량함이 조금 힘들긴 했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라고는 생각하지만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사실을 펼쳐 보이는 데 집중하여 덕력에서 뿜어 나오는 글 맛을 즐기는 내게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