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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展> @소마미술관
    오덕기(五德記)/음악_공연 2022. 11. 3. 15:17


    간단하게 말하면 원래 알지 못하는 작가였다. 그저 우연히 슈퍼 얼리버드 티켓이 나온 것을 보고 구입했고, 그 이후에 ‘피카소와 함께 프랑스가 자랑스러워하는 장 뒤뷔페 특별전’이라는 전시회 소개를 읽게 되었다. 뭐라 피카소? 스페인 사람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한다면 뭐 그런 거다. 우리도 사유리나 호사카 유지 교수, 타일러나 조나단-파트리샤 남매가 세계적으로 위명을 떨치면 그들의 실질적 뿌리는 한국이라며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전시회는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이다. 소마 미술관은 꽤 오랜만이다. 소마(SOMA)는 서울올림픽미술관(Seoul Olympic Museum of Art)의 두문자어이다. 나는 그리스어의 신체를 뜻하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노렸다고 한다. 잘 얻어걸린 케이스인 듯. 

    입장권을 끊어서 들어가려니 50분 정도 후에 도슨트 안내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도 시간 맞으면 함 볼까 생각하며 일단 관람 시작.

    뒤뷔페 전을 보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의 이야기와 작품이 자꾸 끼어들어온다. 빌레글레라는 사람이다. 나는 의아하였다. 왜 이 사람 자꾸 엮이는 거냐고, 그렇게 전시관 4개 중에 하나는 빌레글레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다 보고 나서 도슨트(김찬용 님?) 투어를 시작했다. 나는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을 듣기 싫어해서 보통의 경우 오디오 가이드도 안 듣는 편이고, 도슨트 안내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들이 말하는 것을 여러 사람과 함께 뭉쳐 다니면서 들어야 하다니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 고역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이번에는 도슨트 안내를 듣기 시작했다. 뭐랄까 이 전시회의 의도가 잘 안 와닿아서 설명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이 전시회의 이름은 뒤뷔페 그리고 빌레글레 展이다. 그래서 빌레글레의 침투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뒤뷔페의 그림은 즐거움과 원초성, 개성을 모두 잡아서 꽤 즐겁게 감상했으며, 그가 시도한 종합예술까지도 모두 마음에 들었는데, 빌레글레가 벽보를 데콜라쥬 한 것은 살짝 지루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전시회는 빌레글레 생전(즉, 올해 초반)에 둘의 예술적 화합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빌레글레는 올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이번에는 회고전 형식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포스터 자체는 뒤뷔페와 빌레글레의 예술활동을 결합한다는 의미에서 정말 잘 빠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글 제목은 좀 뭐랄까, 너무 위계가 보여서 참으로 K-스럽다 ㅋㅋㅋ



    도슨트 님의 설명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본인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 태블릿까지 들고 와서 설명한 사진이었다. 파리의 지하철 디지털 벽보를 반대하는 예술가들의 저항 사진이었다. 파리는 원래 벽보 천국인데, 이게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판단으로 벽보를 모두 제거하고 디지털 벽보로 대체했다고 한다. 그런데 디지털 벽보라 함은 결국 자본주의의 손을 탈 수밖에 없고, 지금껏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던 공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발이 크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빌레글레도 도시 미관 정화 사업과 함께 벽보를 구할 수 없어 점차 파리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가서 벽보를 떼어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뭐랄까 자유롭고(더러운) 파리의 최후의 보루가 사라지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진 같았다. 깨끗하고 제한적인 자본주의 vs. 더럽고 개방된 前/脫자본주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의 문제.

    도슨트의 설명까지 잘 듣고(중간에 다리도 아프고, 빌레글레 작품을 굳이 또 보고 싶지 않아서 탈주했던 것은 안 비밀) 기념숍에 가서 인스타에 인증하고 그림엽서 한 장 득템 했다. 잠시 나를 다른 세계에 이끈 듯한 즐거운 전시회였지만, 이 전시회에 대해 불만도 있다. 미술품의 개수나 퀄리티의 문제는 아니고, 미술관 벽에 프린트된 설명 문구에 대한 것이다. 솔직히 큐레이션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뭐 이것은 프랑스에서 했던 전시회를 그대로 들고 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이제부터 비난 투척이 시작될 것이다.

    아래는 장 뒤뷔페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번역이 심히 구려서 잘 안 읽히는 것은 뭐라 안 하겠다(이미 한 건가). 중간에 마침표 같은 구두점이 종종 사라진 것까지도 그렇다 치겠다. 그런데 마지막 바로 전 문장에서 평서형 종결 어미인 '다'를 쓰다가 갑자기 '습니다'의 역습 어쩔. 이거 번역기 돌리면 종종 나오는 현상인데에에?

    내가 아래의 글을 보고 큰따옴표 없다고 분개하니 같이 간 친구가 내 손에 흰색 펜을 쥐어주고 싶다고.


    그리고 빌레글레에 대한 아래의 설명 1949년 "빌레글레는 찢어진 포스터를 사용하는 방식을 특별히 제한하기로 결심했다"인데 원문은 "Villeglé décide de limiter sa démarche appropriative aux seules affiches lacérées." 이다. 즉, 빌레글레는 찢어진 포스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만 제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가 전시회에서 본 빌레글레의 그림이 죄다 찢어진 포스터인데 갑자기 찢어진 포스터를 사용 안 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



    그 외에도 토리노와 투린을 혼재해서 쓰고, '확실이'의 압박이 도사리며, 프로젝션을 제목에서는 영사했다고 쓰고 아래에서는 투영기라고 자랑스럽게 쓴 것을 노려 보았다. 결국 겁나 안 읽히는 비문 투성이 문장까지 도매금으로 까면서, 번역 발로 한 거야? 번역기 돌린 거야? 감수 안 한 거야? 벽에다가 이렇게 인쇄해서 붙이는 내용인데 교열 안 한 거야? 라며 불평을 터뜨렸다. 아마도 이것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저녁에 농구장 가서는 밥 먹고 슛 넣는 연습만 했는데 왜 이렇게 골을 못 넣냐면서 선수들마다 타박해서 이 날의 악플러로 등극. 친구는 악플러 강림에 치를 떨었다. ㅋㅋㅋㅋ

    지금까지 한국에 들여온 전시회를 보면서 작품 목록이나 퀄리티로 실망한 적은 많지만, 작품이 아닌 텍스트 때문에 이렇게 짜증 난 적도 없을 것 같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했던 <훈데르트 바서 전>, 한가람 미술관에서 한 <자코메티 전> 정도 수준은 어려운 걸까. 훈데르트 바서 전 또 보고 싶네. 진짜 고퀄이었는데. 유럽 가서도 그런 작품을 하나로 모아 보기는 어려울 듯.

    이상, 뒤뷔페로 시작해서 빌레글레 타령하다가 훈데르트 바서로 마무리 짓는 관람기. 끝.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