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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벨(Ravel)의 라 발스(La Valse)
    오덕기(五德記)/음악_공연 2025. 8. 26. 15:51


    최근 라캉이니 들뢰즈니 하는 '프랑스 철학하는 것들'(유감이지만 '프랑스'스러움에 악감정이 있다)의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독일철학,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 사상과 대척점을 이루는 요소에 크게 반응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내 주변도 점차 "프랑스 것들"로 함몰되니, 작곡가로는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이 그들이다. (원체는 동유럽 클래식을 엄청나게 편애하였다)

    예전부터 '라벨이 천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재가 작곡을 했으면 이런 곡을 만들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있으니 바로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이다. 그리고 오늘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La Valse, The Waltz)"라는 곡을 아침 출근길에 듣다가 충격에 사로잡히다 못해 눈물까지 흘렸으니 이 얘기를 짚고 넘어가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도입부는 저음역의 더블베이스와 첼로의 희미한 소리로 시작한다. 마치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춤추는 남녀가 희미하게 보인다"는 라벨의 악보 서문을 구현하듯이 말이다. 안갯속에서 왈츠의 예의 리듬과 선율이 조각난 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점차 관악기와 현악기가 더해지면서 우아하고 화려한 왈츠의 활기를 더해가니 바로 "구름이 서서히 흩어지면 파트 A에서는 소용돌이치는 군중으로 가득 찬 거대한 홀이 보인다. 장면이 점차 밝아지고 파트 B에서는 샹들리에의 빛이 포르티시모로 폭발"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누가 들어도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떠올리게 하는 전형적인 빈 왈츠의 선율이 쿵-짝-짝 리듬과 함께 이어진다. 현악기의 풍부한 음향과 금관악기의 웅장함, 그리고 목관악기와 타악기가 서로의 멜로디와 박자를 주거니 받거니 어우러진다. 지금 이곳은 "대략 1855년 경 황실 궁정 풍경"이다. 

    하지만 이 화려함 속에서 점차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왈츠 리듬이 미묘하게 뒤틀리고, 불협화음이 끼어든다. 클라이막스가 나타날 것 같으면 다른 악기가 산통 깨듯 등장하면서 격렬함과 짙은 안개로의 침잠이 마치 화려함 이면 속 슬몃 드러나는 불안함처럼 종결부로 연결된다. 

    종결부에서는 이제 모든 선율과 리듬이 한데 뒤엉켜 거대한 소음처럼 폭발하며, 왈츠는 본래의 우아함을 완전히 상실하고 파괴된다. 모든 악기가 격렬하게 연주하며 파국으로 향해가는 모습은 마카브르 그 자체이다. 결국, 음악은 갑작스럽게 굉음과 함께 모든 것이 소멸하듯 충격적인 여운을 남기면서 끝난다.  

    "라 발스"를 1차 세계대전 이후 붕괴된 유럽 문명의 상징으로 보는 해석이 가장 지배적인 듯 싶다. 처음 라벨이 "라 발스"를 구상하던 시기는 유럽 문화의 번영기였던 '벨 에포크'를 관통한다. 당시 라벨은 'Wien'이라는 제목으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비엔나 왈츠를 찬양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은 이 구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완성된 "라 발스"는 왈츠를 예찬하는 대신, 왈츠로 대별되는 우아하고 세련된 문명이 붕괴되고 비틀리는 모습을 그려버린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 오히려 자크 라캉이나 질 들뢰즈의 철학에서 말하는 언어로 완정화된 사회적 질서 안에 숨겨진 거대하고 원초적 생명력을 느꼈다. 

    라캉은 인간의 현실 인식을 세 가지 질서로 구분하였는데, 이 중 상징계는 우리가 공유하는 질서의 세계를 의미한다면, 실재계는 상징계로 포섭될 수 없는 원초적인 영역이다. 상징계는 이 실재계를 억압하고 배제함으로써 유지되며, 실재계는 언제나 상징계의 균열을 통해 침입하려 한다. 들뢰즈의 잠재태는 실재계와 비슷하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았으나 무한한 생성력을 가진 영역으로, 잠재태가 특정한 형태와 구조를 갖고 현실화된 것이 바로 현실태이다. 들뢰즈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생성하고 해체하며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잠재태였다.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는 단순한 관현악곡을 넘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고 붕괴하여 근원으로 회귀하는, 아니 근원이 악착같이 우리에게 회귀하는 과정을 음향으로 기록한 듯하다. "프랑스 철학하는 것들"의 틀로 설명하자면 혼돈스러운 잠재태에서 왈츠라는 상징계/현실태가 구축되고, 이내 억압되었던 실재계/잠재태의 침입으로 균열이 발생하여, 마침내 모든 질서가 해체되어 다시 잠재태의 상태로 회귀하는 서사를 담았다는 것이다. 

    곡의 첫 부분은 들뢰즈가 말한 잠재태의 영역, 즉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를 음향적으로 묘사한다. 저음역 현악기들의 불분명한 트레몰로와 단편적인 리듬 조각들은 명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소리의 원료들이 부유하는 무질서의 상태를 그린다. 이는 아직 어떠한 법칙도, 이름도 부여되지 않은 세계이다. 

    이윽고 이 혼돈 속에서 왈츠 리듬의 편린들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흩어졌던 선율의 조각들이 결합하여 마침내 완전한 왈츠 주제로 피어난다. 이는 무한한 가능성의 잠재태가 '왈츠'라는 구체적인 현실태로 발현되는 과정이다. 이 현실화된 왈츠는 '쿵-짝-짝'이라는 명확한 박자, 요한 슈트라우스 풍의 우아한 선율, 예측 가능한 화성 진행 등 고도로 체계화된 규칙을 따른다. 이는 사회적 규범과 질서의 총체인 라캉의 상징계가 성공적으로 구축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상징계 안에서 왈츠는 19세기 유럽 문명의 세련됨과 영광을 대변하는 안정적이고 매혹적인 세계로 기능한다.

    그러나 라벨이 구축한 이 상징계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곡의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완벽해 보였던 왈츠의 세계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음악은 점차 가속되고, 화려한 선율 사이로 불협화음이 날카롭게 끼어들며, 관악기들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음색으로 아름다움을 조롱한다.

    이는 상징계가 애써 봉합하고 배제했던 실재계가 그 틈을 비집고 침입하는 과정에 대한 음향적 묘사이다. 왈츠라는 우아한 문명의 외피 아래 억압되어 있던 비이성, 광기와 같은 실재계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단계에서 왈츠는 자신의 형식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이질적인 요소들의 침투로 인해 그 구조적 안정성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억압된 것들의 전면적인 귀환이자, 기존 질서의 완전한 붕괴를 그린다. 템포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며, 헤미올라(Hemiola, 강세 이동)는 3박자의 규칙적인 강세를 무시하면서 질서를 교란하는 폭력적인 리듬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왈츠 주제는 사라지고 라 발스는 거대한 불협화음 덩어리를 투하하면서 현실태/상징계를 찢어발긴다. 바로 파국이다. 

    이 파국은 단순히 '끝'이나 '소멸'이 아니다. '왈츠'라는 고도화된 문명을 표상하는 현실태가 완전히 해체되어, 다시 모든 생성의 근원인 잠재태의 영역으로 회귀하는 생기론적 전환이다. 모든 질서와 이름이 사라진 그곳에는 오직 순수한 소리와 생명의 박동이라는 에너지만 남는다. 

    이 곡은 라캉이나 들뢰즈가 그 사상적 성취를 이루기 전의 작품이다. 나는 진정한 예술은 사상에 앞선다고 생각한다. 철학에서 언어로 표현하는 세계는 이미 당시에 공기들 입자처럼 만연했던 망탈리테를 상징계/현실태로 포섭한 것이다. 어쩌면 이 "프랑스 철학하는 것들"이 말하는 원초적 세계로의 회귀를 이미 마주하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했던 사람이 모리스 라벨이고 그 곡이 볼레로나 라 발스 아니었을까. 들뢰즈의 철학이 귀에서 펑펑 터지는 느낌에 흥분한 한 사람이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글을 또 하나 싸질렀다. 
     
    https://youtu.be/UlMJ6Ri-LMM?list=RDUlMJ6Ri-LMM

    난 이 버전이 더 좋더라. 구스타보 두다멜한테 더 어울릴 것 같았지만 이게 더 파괴적이었어
     
     
    참고로 내가 드뷔시에게 빠져들었던 곡이 Valse Romantique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낭만 왈츠일까. 알고리즘에 따라 랜덤으로 노래를 듣는데 어떤 노래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에 제목을 확인하니 왈츠곡이었다. 내가 은근 왈츠를 좋아하나 보다? 꿍짝작, 꿍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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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