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wore never to be silent whenever and wherever human beings endure suffering and humiliation. Neutrality helps the oppressor, never the victim. Silence encourages the tormentor, never the tormented.
- Elie Wiesel Nobel Prize Acceptance Speech, Oslo,
제 1대 태조(太祖) 동엽 : ① 광주 무등궁(無等宮)에 도읍을 정하고, 국명을 해태라 하였다. ② 창건을 전후하여, 나라의 기틀이 주변 5국과 비교하여 가장 초라하였다. ③ 왕의 성격이 호탕하여 백성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하나, 주변 신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또한 술버릇이 고약하여, 종래엔 세자 창수와 투조판서(投組判書 : 투수들을 관장하는 관직) 유남호가 난을 일으켰다. ④ 이에 보위 두달만에 세자 창수에게 선위하고 상왕(上王)이 되어 물러나다... ⑤ 재위 기간 : 82년 1월 ~ 82년 4월, 상왕(上王) 82년 4월 ~ 82년 11월
※ 섭정왕(攝政王) 조창수 : ① 선대왕의 술버릇과 고약한 성격을 문제삼아, 난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다.. ② 피폐한 나라의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랜기간 치세를 이어가지 못하였다. ③ 게이비오(揭二備五)와 모국(母國)의 적통을 인정 받지 못하였다.. ④ 섭정 기간 : 82년 4월 ~ 82년 11월
제 2대 상공(象公) 융종대왕(隆宗大王) 응룡 : ① 역대 최장의 치세를 펼친 왕이다. ② 보위에 오른 이후, 최빈국 해태를 20여년간 역대 최강국으로 변모시켰다. ③ 패왕전(覇王戰)에 아홉번 출전하여, 아홉번 승전하였다. ④ 우람한 체격과 담대한 성격으로 주변국에서 코끼리 같다 하여, 상공(象公)으로 불리우곤 하였다. ⑤ 응룡 1년(83년), 응룡 4년 ~ 7년(86년 ~ 89년), 응룡 9년(91년), 응룡 11년(93년), 응룡 14년 ~ 15년(96년, 97년), 에 걸쳐 9차례 천하를 평정하였다. ⑥ 치세 후반, 천하에 불어닥친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소용돌이에 국운이 기울어 패권을 다시 얻지는 못하였으나, 강국의 위용은 잃지 않았다.. ⑦ 문예(文藝)에도 조예가 있어, 역사상 최초의 시조인 부재가(不材歌)를 지은 왕으로도 유명하다.. 그 내용이 인재가 없음을 한탄하며, 초저녁의 석양처럼 기울어져가는 왕조를 지켜봐야 하는 지존의 애환이 담겨있어... 듣는이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원문이 아래와 같다...
제 3대 고조(古祖) 성한 : ① 해태 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기아 최초의 왕.. ② 해태왕조의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포부를 가지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③ 성한 1년(01년) 해태 왕조를 거느리고 기아 왕조에 흡수되었다. 곧 국명을 기아로 바꾸었다. ④ 옛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하였으나, 호랑이 왕조의 정신은 잃지 않았던 왕으로 평가된다. ⑤ 재위 기간 : 해태국 마지막 치세(00년 11월 ~ 01년 8월), 기아국 시조(01년 8월 ~ 04년 10월)
제 4대 묘종(猫宗) 남호 : ① 재위 이후, 실정을 거듭하여.. 왕국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② 창건 이래로 왕국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일대 오점을 남겨 백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원흉으로 지목 되고 있다. ③ 호랑이 왕조를 고양이(猫)로 만들었다 빈축을 사, 시호가 묘종(猫宗)으로 지어졌다. ④ 보위 말년, 용병 장수 이오수를 숙청하였으며, 고조 성한왕 복위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⑤ 재위 기간 : 04년 10월 ~ 05년 10월
제 5대 울종(鬱宗) 정환 : ① 몰락한 왕조를 이어 받아, 국가 재건의 움직임을 보이나 선정에 실패하고 만다.. ② 출전중 전장에서 왕관(王冠)과 장수들의 병장기를 집어던지며 분개하기도 하였다 한다. 종국엔 2년만에 왕위에서 물러나 하야(何野) 한다. 항간의 소문에는 천하를 떠도는 유세객이 됐다고 전한다. ③ 백성들 가슴에 울화병(鬱禍病)을 남겼다 하여, 울종(鬱宗)으로 봉해졌다. ④ 재위 기간 : 05년 10월 ~ 07년 10월
제 6대 혁조(革祖) 범현 : ① 정환 2년 여름, 세자에 책봉되었다. ② 보위와 동시에 과거 해태국 호남파 신료들을 대거 숙청하는 피의 개혁(改革)을 단행... ③ SK국 성근왕식 데이터 정치를 펼지겠다고 공표.
이 글 보고 정말 빵 터졌다. 특히 김응용 감독의 '부재가'는 꿈(원시)보다 해몽(해석)이 더 좋기로 가히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리라. 어디에서 이런 글을 쓸 재치가 나오는 건지 기아팬들의 재기에 감탄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역사 전공자로서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어 몇 자 적어보련다. 첫째, 고조(古祖)의 한문이 시호로는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고조를 쓸 때는 높을 高를 쓴다. 둘째, 섭정왕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셋째, 가장 눈에 띄던 점이었는데 "제6대 혁조 범현"이다. 시호는 임금이 자리에서 물러난 후(흔히 죽은 후에) 에 선왕의 치적을 평가하여 추증하는 것이다. 조범현 감독이 과연 '혁조'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아는 것 아닌가. 즉 금상이 실록에 편입되거나 시호를 가질 수가 없다는 거다. 내가 밥먹고 하는 짓이 이건지라 좀 picky 하긴 하지만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하지 않았는가.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호리유차 천지현격(毫釐有差 天地懸隔)"이라는 말이 있다. 털끝 만큼의 차이로 천지가 나뉜 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진짜와 가짜, 진리와 허구, 이 모든 것이 터럭 하나로 갈린다. (By being off by a hairs breadth, It is like the gaping space between heaven and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