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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리뷰] 엽문 (The Legend of Ip Man) 2009
    오덕기(五德記)/中 2009. 1. 30. 15:09

    WARNING: Thar Be Spoilers Ahead!
    스포일러 경계령


    자주 가는 사이트에서 무술 장면이 멋지다는 입소문을 듣고 보게되었는데, 첫 대련 장면부터 엄청난 흡인력에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엽문은 근대 중국 무림 고수인 곽원갑, 황비홍, 이서문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춘권의 고수이며 이소룡의 스승이기도 한 인물이다. (영화제목은 Ip Man인데 아마도 엽문의 광동어식 발음인 듯 싶다. 영화는 보통어 버전이었다.)

    대충 줄거리를 얘기하자면 불산 (황비홍도 불산 출신으로 기억하는데) 에서 무림의 고수로 추앙받던 엽문이 여러 고수들의 도전을 받고 일거에 제압하지만, 워낙 부유했기에 제자를 양성하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살다가, 일제가 광동 지역을 침략하자 결국 자신의 집도 일제에 넘기고 힘든 삶을 살다가 이리저리해서 일본 가라데도 다 제압하고 홍콩으로 피신해서 영춘권을 널리 후학에 보급했다는 이야기이다 (한 문장으로 만들려니 내용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사실 서사적 측면은 중국 무협의 클리셰들이 난무한다. 자신의 무공 뽐내기를 꺼려하는 엽문은 유유자적하고 안온한 얼굴로 도리를 모르는 자들을 혼내주는 데에는 거침이 없다던가, 무공을 드러내길 저어하던 엽문이었으나 자신과 친분이 있는 자가 일본 군인의 손에 죽었음을 알고는 분노하여 자신이 직접 싸우겠다고 제안하고 순식간에 물리쳐버린다던가, 엽문과 최후에 싸워야 할 끝판대장인 일본 장군은 가라데의 최고수이자 일종의 부시도(무사도)를 갖추고 있어 나쁜 놈이나 존중할 만한 인간이고, 그 장군 아래에 있는 부하는 상찌질이, 처음부터 끝까지 찌질찌질 하다가 죽어버린다던가, 엽문에 의해 각성한 민중들이 힘을 내어 자신들을 억압하는 무리들에게 저항한다던가 등이 그것이다.(마지막 장면은 묘하게 장군의 아들 1탄인가 종로에서 일본군인을 상대로 인간 방어벽을 두르는 민중의 모습과 겹쳤다)

    영화를 보면서 약간 불편했던 점은 중화사상의 노출이다. 중국 최고, 중국 무술의 정수를 일본 무술이 따를 수가 없다는 둥의 중국인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들이 중반 이후로 나오는데, 뭐 나같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화는 아닐테니 참고 넘어갈 만 하다. 어쩌면 일제 시대를 겪은 한국인들 눈에는 일본인이 당하는 모습이 통쾌해 보일 수도 있겠다.

    어쩌다보니 비난만 한 격인데 나 사실 이 영화 무지 좋았다.

    첫째, 견자단이 연기하는 엽문이란 사람이 참 멋진 캐릭터이다. 사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에서 견자단이 주로 연기했던 역은 끝판대장 악역이었고, 외모도 어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로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하고 있어서 그에게 끌려본 적이 없는데, 엽문이란 영화에서는 견자단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지면서 자애롭고 후덕한 인상을 풍긴다.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있다기 보다는, 도가에서 말하는 상선약수, 물처럼 흐르는 듯 부드러운 엽문으로 분한 견자단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둘째, 나는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주제에 잔인하고 피 철철 흐르는 장면을 잘 못 보는데 엽문은 그닥 잔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상찌질이 일본 놈이 총이랑 곤봉들고 패악 부리는 부분은 약간 짜증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추악한 인간형도 드물고 무술 영화 치고 잔인한 장면도 거의 없었다.

    Last but not least,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무술 장면. 와이어나 CG를 극도로 자제한 영춘권과 그밖의 남가권법, 북가권법의 향연은 엄청난 눈요기였다. 막판에 갈수록 가라데가 주종을 이루면서, 직선적이며, 파워와 단순함을 주로 하고 화려함이 떨어지는 일본 무술과 대련하면서 영춘권을 쓰는 엽문도 손을 두지 않은 채 적의 관절을 팍팍 꺾어대고 한 호흡에 파운딩 파파파팍하면서 약간 그 맛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오는 중국인들끼리의 무술 대련 장면은 여유로움이 넘치면서 유려해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는 검을 들고 싸우는 무술을 제일 좋아하지만, 권법일 경우에는 내공이랍시고 CG 쓰면서 레이저 광선 나가고, 물 폭탄 터지고, 휙휙 날아다니는 것 보다는 현실적인 무술 장면을 좋아하는데, 견자단이 시전하는 영춘권은 그런 권법이면서도 화려함이 스러지지 않고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면서 상대를 농락하니 그 대단함에 혀를 내두를만 하다. 근자에 본 권법 무협 영화중 무술 장면 자체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으앗 짱짱짱!!! 견자단 아저씨 타이빵러!)

    중국 무술의 진수를 맛보고 싶은 자 꼭 한 번 보기를 권한다!

    미우라 장군이자 가라데 고수로 나오는 일본인 배우(우), 우츠린인가로 나오는 (영화 본지 몇 시간 되었다고 이름을 까먹었다) 석행우(좌). 석행우는 예전에 대단한 도전인가에서 소림무승으로 나오던 사람인데. 성이 '석'씨 인 것만 봐도 불제자임을 알 수 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