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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준호, 그의 등에 새겨진 1번을 추억하며.
    My beloved BASEBALL/잡설 2009. 12. 1. 00:08
    그간 얼마나 피하려고 노력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때 난 야구를 전혀 모르는 아이였다.
    황금같은 주말 낮시간에 중계되는 프로야구 경기에 짜증을 내며 '아 만날 야구만 해!' 라며 불평하곤 했다.
    야구를 좋아할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그 장면을 보았다. 
    한 늘씬한 좌타자는 날아오는 공을 몸을 살짝 뒤로 빼며 밀어쳤다.
    그 폼이 정말 예뻐서, 인상적이어서... 그렇게 야구를 보기 시작했다.
    그의 멋진 타격폼과 시원하게 좌익선상에 떨어지는 안타.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되고, 아무 연고 없는 롯데를 응원한 이유였다. 




    그의 등에 아로새겨진 1번이란 숫자.
    롯데의 1번 타자 전준호.
    현대의 1번 타자 전준호
    히어로즈의 1번 타자 전준호.
    한국의 1번 타자 전준호.

    전준호 선수를 수식할 말은 끝이 없다.  
    조용하지만 강력했고 튀지 않았지만 꾸준했다.
    프로 19년 동안 2091경기에 나와서 2018안타, 550도루. 100개의 3루타에 빛나는 그는 한국 역대 최고의 톱타자였다.  

    2008년에도 꽤 좋은 타격을 보였다.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지만 그는 자신 있어했다.
    계속 쓰지 않으려는 히어로즈 코칭스태프진 때문에 약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구단은 프로야구의 전설을 품을 자격이 없었다. 



    팬들이 정성을 모아서 그의 은퇴식을 한다고 했다.
    그곳에 가서 19년의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그의 모습을 꼭 보고싶었다.

    선약이 있고, 길도 잘 못 찾아서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거의 끝날 때 쯤이었다.
    내가 들어갈 때쯤, 선수들이 우르르 나와서 약간 뻘쭘...



    전준호 선수는 팬 한 사람 한 사람 악수를 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어줬다.
    정말 얼마나 오랫동안 그 표정을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은퇴식을 못봐서 안타까웠지만 그 모습만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르겠다.
    같이 사진 찍으려고 그의 따뜻한 손을 잡으면 눈물을 쏟을 것 같아 난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이 전준호 선수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아니니까.
    이제 SK 선수들에게 그의 모습이 아로 새겨질테니까.
    그는 '제2의 누구'가 아닌 '제2의 전준호'라는 수식어를 만든 나의 영웅이니까.


    한국에 오직 3명밖에 없다는 성구회 회원인 전준호 선수가 성공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하길 기원합니다.
    히어로즈가 제정신을 차리고 톱타자의 전설인 전준호 선수의 등번호 1에 대한 영구결번을 하길 기원합니다.
    SK Wyverns가 내년에 좀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은퇴식을 해주길 기원합니다.


    첨언. 이런 멋진 은퇴식을 손수 만들어준 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