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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 화이트 칼라(White Colllar)
    오덕기(五德記)/美 2014. 2. 11. 15:40

    "주인공이 잘 생겼고 내용이 괜찮다"는 친구의 추천에 보기 시작한 화이트칼라. 일단 깔끔하고 멋지게는 생겼지만 내 스타일은 아닌 사기꾼 범죄자 출신 주인공 닐 카프리와 깔끔하고 친숙하게 생겼지만 더욱 더 내 스타일은 아닌 또다른 주인공 FBI 요원 피터 버크가 FBI 화이트 칼라팀에서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일단 소감부터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홀릴 정도의 재미나 몰입감을 주지는 않는다. 나같은 경우 보통 마음에 드는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거의 앉은 자리에서 정주행을 하면서 시즌 하나를 길이에 상관없이 사나흘에 끝내는 편이다. 그런데 <화이트 칼라>는 드라마 한 편을 사나흘에 걸쳐 볼 정도로 몰입도는 떨어졌다. 그런데도 계속 보는 것은, 아무래도 이 드라마가 화이트 칼라 범죄를 다루다보니 내용 자체가 잔인하지 않고 사람을 옥죄는 듯한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덜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과 그의 맥가이버 같은 친구 모지는 위작 및 위작 감정에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쪽 세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쉽게 말하면 재미있다기 보다는 흥미롭다. 그리고 지적(知的)이다. 


    원래 이 드라마에 대해서 리뷰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최근에 끝난 시즌 5에서 여태까지와는 다른 괄목할만한 흡인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감동해서 잡설이라도 풀려고 한다. 처음에는 시즌 5도 심드렁하게 시작하다가 점차 심장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잠도 못 자고 마지막 몇 편을 달렸다(덕분에 요즘 몸 컨디션이 회복이 안 된다. 흙). 난 닐의 아버지가 중심이 되는 시즌(3, 4)에서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었는데 이번 시즌 들어 화이트 칼라에 처음으로 버닝했다. 


    이 드라마는 설정, 배경, 내용, 캐릭터 등에 대한 현실성 부여에 귀찮아 하는 게 역력하다. 천재미남 사기꾼, 엄청난 네트워크를 가졌으며 스스로도 못하는 것이 없고 지적이기까지 한 그의 친구, 아름다운 아내를 사랑해 마지않는 부족한 것이 없는 FBI 수사관, 센스가 차고 넘치는데 마음까지 태평양인 그의 아내, 범죄자 신분인 닐 카프리에게 멋진 공간을 빌려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집주인 여사. 사실 말도 안 되는 캐릭터인데, 거기에 서로가 끈끈하게 연결까지 되어 있다. 나의 부족한 깜냥으로는 도대체 그들의 신뢰가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더라.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들에게 멋진 삶을 부여하기 위해서 '생활'을 거세해 버린다. 구질구질한 여관에서의 삶, 아이 양육에 쫓기는 삶은 없고 모든 캐릭터가 번지르르한 삶을 이어나간다. 만화적 설정에 현실이라는 레이어를 덧씌우지 않은 채로 그대로 드라마화 해버렸다.


    배우들에 대해 얘기하자면 주인공 캐릭터들의 연기력이 마구 몰입될만큼 훌륭하지는 않다. 닐 카프리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고 섹시한 목소리를 날리고 있다. 물론 그 얼굴이면 연기력은 커버가 된다. 피터 버크는 좀 더 연기를 잘 해야 할 것 같지만 평타를 치는 수준이다. 모지는 그냥 모지 그 자체이다. 가장 캐스팅이 잘 된 듯. 닐이 만나는 여성들 얼굴은 비슷비슷하다. 히치콕 감독마냥 한결같이 금발머리 백인 미녀를 캐스팅한 정도는 아니지만, 엘리자베스와 준을 제외한 모든 여성 배역의 외모(키, 몸매, 얼굴형, 생김새, 머리스타일)가 거푸집으로 찍은 듯이 비슷하다. 안면인식에 약간의 장애가 있는 나는 구분을 잘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시즌 5에서 어떤 여성이 스치듯이 나오는데, 역시나 위에서 말한 스테레오타입을 하고 있어서 이 사람도 닐과 엮이겠구나 했었는데, 역시나...... 캐스팅하는 사람의 사심이 너무 심하게 엿보인다.



    내가 느끼는 닐 카프리의 연기






    하지만 괜찮아. 연기력 필요 없는 얼굴.



    하지만 거세된 현실성 속에서도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있다. <화이트 칼라>라는 드라마는 꽤 지적인 드라마이다. 화이트 칼라 범죄의 대부분은 예전에는 위법행위가 아니었으나 사회적 효용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종류의 행위이다. 살짝 국제법 용어를 가미해서 설명하자면 비위반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법에 위배된 것은 아니지만 손해는 끼쳤고 그래서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의문점을 찍는 종류의 작위/부작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의 해결도 몸으로 부딪치기에 앞서 지성으로 밑밥을 깔아놓아야 한다. 나는 주식이니 채권이니 하는 것과 연관된 에피소드는 이해를 못했다. -_-; 예술품 모작을 진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온갖 화학 반응 이야기에도 멍 때린다. 나만 그런 건 아닐거야. 


    게다가 워낙 등장 인물들이 지적이어서 대사에는 유명인의 인용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알고 있으면 알고 있는대로 몰랐으면 모르는대로 그들의 대사는 예의 문학작품 속 전고(典故)를 통한 푸짐한 언어의 성찬이다. 나는 우리나라에도 전고를 자유자재로 쓰는 대사가 가득한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현대물이 안 되면, 사극이라도. 중국 드라마를 보면 대사 속에 사서삼경, 역대고사, 시(!)가 판을 치면서 그에 대한 주석 하나 없는데(그래서 나만 홀로 사전 찾으며 멘붕), 한국사극은 일단 대사에서 풍겨나오는 지적인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옛 명칭 하나에 벌벌 떨면서 자막으로 주석 띄우는데, 글쎄다. 현대물 중에서도 신경림 시인의 시 정도는 인용할만도 한데(아니면 김소월, 윤동주 시인의 시라도) 그런 게 없다. 이게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문장구사와는 거리가 먼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는 듯 싶다. 뭐, 대통령도 공식 석상에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 쓰는 마당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나보다. 


    시즌 5는 역대 시즌 파이널과는 다른 정도의 약한 떡밥을 뿌렸지만, 이번 시즌에 보인 가능성 때문에 꽤 기대가 된다. 뭐, 내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하다보면 또 시즌 6가 시작하겠지.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