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요즘 읽는/읽은 책들
    學而時習之不亦悅乎/기타등등 2018. 7. 20. 15:13

    욕심이 많아서 여러 권을 함께 읽는다. 
    읽다가 에잉씨 그만 읽으련다 하며 던져버리는 책도 있고, 도서관 반납일 때문에 억지로라도 다 읽는 책도 있고. 
    그 중 60%이상 읽은 책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보고자한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플로리안 아이그너
     

    "우연히 접한 이 책이 내 생각을 지배한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아끼며 읽고 있다. 이 책 덕분에 평소 Shiva神 마인드로 접근하였던 통계학에 미약하게나마 비슈누의 감각으로 접근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쉬바). 과학의 탈을 썼는데 따뜻하고 어렵지 않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이 책은 독자의 배경지식, 관점,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시사점을 가진다. 읽는 이가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교양, 과학, 사회학, 철학, 힐링류 도서로 표변한다. 내게는 Metadiscipline의 정수이다. 

    루저를 달래기 위하여 과거에 불세출의 루저 왕충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따뜻한 물리학자 아이그너가 있다. 그러다 문득 등골이 서늘해진다. 위너/루저 여부는 복잡계 속 우연의 결과이지만, 통계적으로 몇몇 아웃라이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흔히 상정하는 측정치의 정규분포에 수렴한다. 저자는 애써 부정하지만, 복잡계고 나발이고 지금의 측정치로도 충분히 상관계수가 도출되는구나 하는 슬픈 예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인간 '결과(?)'의 통계적 해석에 의해 숫자로만 남아버리는 인간 존재, 숫자로 환원된 존재의 가벼움이 어쩔 수 없는 생래적 거부감을 치밀어 오르게 한다. 특정 학문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거부한다. 조너선 하이트가 말하는 바 코끼리가 자꾸 싫다며 고개를 트는데 기수인 내가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마음이 더 저릿저릿하다. 나도 저자와 궤를 같이하지만 대세를 모르지 않기에. 막부 말기의 막부파 잔당이 된 기분. 이럴 때면 유명론에 새삼 감사하다. 내 쉴 곳은 유명론 뿐이리. 중세 스콜라 짜응. 

    번역이 조금 아쉬워서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에 그저 감사하며 읽어야한다.



    식탁 위의 철학자들/레이먼드 D. 보이스버트 & 리사 헬트
     

    다 읽지도 않은 책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원흉(?). 바로 이 책. 
    언제 다 읽을 지도 모르겠고, 마음 같아선 한 번 더 읽고 싶다. 
    대단히 흥미로운 주제. 너무나도 재미있는 접근인데 엄청 안 읽힌다. 
    출퇴근 길에 가볍게 읽기에는 좀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무겁다기보다는 저자의 글 쓰는 방식이 亂하고, 번역은 점입가경이다. 

    초반에는 미국 사람이 지은 책 맞나. 왜 이렇게 프랑스 식으로 글을 전개하지라는 의문점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각 나라마다 특징적인 글쓰기 방식이 있다. 확고한 주제가 반복되는 간결한 글쓰기가 주종인 나라가 있는가하면, 브루크너의 음악마냥 주제 선율은 찾을 수 없는, 문체가 만연체가 아니라 생각이 만연한 글쓰기를 선호하는 나라가 있다. 전자가 영미식 글쓰기라면 후자가 프랑스식이다. 프랑스는 자국의 글쓰기 방식이 엄청난 훈련과 철학적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이를 추앙하는 자들이 있다.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싫어한다. 뭘 설명하려고 이렇게 장황한가 싶겠지만 프랑스 냄새를 풀풀 풍기는 <식탁 위의 철학자들>의 문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글을 혼잣말 하듯이 쓴다. 나도 블로그에 글 쓸 때는 혼잣말 하듯이 쓴다. 웹상에 게재되기 때문에 남들이 본다는 것도 인식하지만 이것은 최소한 글의 형식은 취하자는 의무감을 더하기 위함이고, 오히려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은 미래에 이 글을 읽을 나 스스로를 위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충 에두르고, 나만 알 소리를 하면서 뭉뚱그려 표현한다. 맥락을 알고 있을 미래의 내가 이해하면 되기 때문이다(미래의 내가 맥락을 기억 못할 때가 허다한 것이 함정. 당연한 건가). 그런데 출판을 목적으로 한 책이 이러면 안 된다. 엄청나게 좋은 화두를 던지고도 자기 손 안에서 저글링한다. 독자는 화두 한 번 받아본 이후 방관자 역할을 해야한다. 두 명이 공저라 장마다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도긴개긴.

    게다가 번역이, 아니 편집이, 아니 둘 다, 정말 개판 5분 전이다. 타자(他者)를 타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애교이다. 초반에는 그냥 참고 넘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오탈자 잡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몇 장 상간에 나오곤 한다. 데리다의 '환대의 대법칙'과 '환대의 일반 법칙'을 번역하면서 일반이라고 써야 할 것을 여러 번에 걸쳐 보편이라고 아예 반대로 썼다. 여기 읽다가 열이 뻗쳐서 원본을 찾으려고 했건만 웹에도 없고 도서관에도 없다. 구두점을 잘못 찍어서 내용이 산으로 가고, 띄어쓰기 잘못하는 건 예사이다. 토마토 영'영'분, 유기체에는 전'해' 해가 없지만, 사우어 크라'프'트(독일식 김치). 이 정도면 난장판이다. 

    고급 음식을 담은 그릇이 요강이다. 그래도 난 꿋꿋이 음식을 취하련다.



    지식의 미술관/이주헌
     


    엄청 재미지다. 교양 서적이지만 다양한 주제를 쫀쫀하게 훑어주고 나름 깊이도 있다. 그냥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그림 보기에는 곰브리치 같이 거대한 책보다 더 현실적이고, 유용한 책이 아닐까 싶다. 




    악기 구조 교과서/유전익조 외
     


    다 읽은 책. 아무리 봐도 헷갈리는 악기의 소리, 구조. 종류. 그래서 꺼내들었다. 읽는 동안에는 다 알 것 같았지만 책 덮은 즉시 다 까먹은 악기 종류. 흥미로웠던 악기의 역사. 도대체 뭔 소린지 이해가 안 가서 책장 넘기기에 바빴던 음향학. 그런데 뭣이라? 중학교 수준의 물리가 어쩌고 어째? 서문 읽고 화딱지가 났다카더라. 음향학 교수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한 번은 음..., 읽을 필요가 있을까. 당신의 선택에 맡긴다. 



    단어로 읽는 5분 한국사
     


    다 읽은 책. 주신 분의 성의(압박) 때문에 급히 일독. 주제당 5분은 커녕 1분 정도 소요된다. 통시적이라기보다는 주제별 접근이라 부담이 없다.  중국에서는 고사성어를 통하여 시대상을 추적할 수 있는데, 우리말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건 속담이나 어원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말 어원에 관심이 있는 자에게 권한다. 
    청소년 대상이라는데, 읽고 나면 술 땡긴다. 왜죠.




    옛 사람의 발길을 따라가는 우리 건축 답사 2/최종현
     


    아직 반절도 못 읽은 데다가, 읽다가 1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건축/도시공학을 전공한 필자의 이력 덕분에 지형/입지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접할 수 있다. 시중에 나온 답사기가 서술하는 전설 속 봉황과도 같은 민족 문화의 우수성에 사로잡힌 실체 없는 찬양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를 테면, 경주 오릉 주위로 물가에서나 자라는 뚝버드나무의 흔적 및 움푹 파인 지형으로 보아 원래 해자가 능을 둘러쌌을 것이라는 유추나, 다보탑과 석가탑이 쌍탑임에도 가지는 비대칭성이 지반의 강도 차이 때문에 야기되었다는 식의 설명은 이 분야 사람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답사 하러 가고 싶어진다. 가봤자 둔탁한 내 눈에는 다 별로일 게 뻔하지만.



    대기책 명단. 이 중 두 권은 작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