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체코) 프라하 - 또다시 프라하 성
    여행/체코-헝가리 2020. 4. 14. 16:30

    *해를 넘어 쓰는 동유럽 여행기(나란 인간이 원래 그렇지 뭐)

     

    아침은 친구가 일본에서 가져온 미슐랭 컵라면과 바나나로 떼우고 우리는 여유롭게 외출 준비.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프라하 성. 이틀 전에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이 통과하였던 곳인지라 친구가 이번에는 입장권을 구입하여 들어가보자고 하였던 터였다.

    저번에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에서 산길을 따라 오는 방식을 택했다면 이번에는 정석대로 말라스트라나 지구에서 계단을 따라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고보니 오기 전에 얀 네루다의 <말라스트라나 이야기>라는 단편 모음집 중 한 편을 읽었다. 참고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는 바로 이 얀 네루다의 영향을 받아 필명을 지은 것이다. 얀 네루다를 닮고 싶어하던 파블로 네루다가 더 문명(文名)을 떨쳤으니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길 가다가 깜짝 놀람
    내가 합성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그만

    어찌됐건 말라스트라나 지구에는 얀 네루다의 생가도 있는 등 그의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있다. 프라하 성으로 오르는 길 이름도 네루도바 울리쩨, 즉 네루다의 길이란 뜻이다. 이 곳을 오르다보면 그의 소설에서 묘사된 소시민의 삶이 절로 그려진다. 우리나라 경복궁으로 치면 궁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중인들이 모여 살던 서촌과 같은 개념일 것 같다. 으리으리한 성과는 대별되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분위기.

    계단이 많지만 쉬엄쉬엄 올라갈만하다. 그리하여 또다시 도착한 곳이 흐라드찬스케 광장. 고통스러웠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여기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유명하다. 이미 말라스트라나 광장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1커피를 한 터라 우리는 슬쩍 들어가 구경만 하고 나왔다. 때마침 시간은 12시경. 교대식을 보겠다고 사람들이 모여들어있다. 우리는 그때의 고통을 상기하며 미련 없이 바로 성으로 입장하였다.

    이번에는 친구가 하자는 대로 들어가자마자 표를 구입. 프라하 성 입장료는 크게 A, B, C로 나뉘어지는데 보통 구왕궁, 성 이르지 바실리카, 황금소로, 성 비투스 성당을 볼 수 있는 B타입을 주로 산다고 하여 우리도 그렇게 했다. 

    아마도 프라하 성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바로 성 비투스 대성당일 것이다. 10세기에 시작된 이 성당은 계속 확장 공사를 거듭하다가 20세기에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보통 중세 고딕 성당 하나 짓는데 80~150년 걸린다 치면 이 성당은 무려 천 년에 걸쳐 지어진 것이다. 이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여느 성당과는 다르게 아르누보 색채를 띄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 하나 있다. 찾기 어렵지는 않다. 사람이 몰려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창이 있다면 바로 그의 작품이다. 

    또한 성당 내부에는 네포무츠키 성인의 묘소가 있는데, 아기 천사의 방패 한 가운데에는 그의 '혀'가 박혀 있다. 혹시 못 찾겠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참고로 표를 끊지 않아도 성당 안에 들어오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접근성이 떨어질 뿐. 또한 성당의 남쪽 탑에 추가로 티켓을 구매하여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이 프라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관람 지점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경관이 그 경관이라는 판단 하에 친구에게 얘기도 안 꺼냈다. 아마 친구가 알았더라도 보러 가자고는 안 했을 듯(아님 어쩌지 ㄷㄷㄷ).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황금 소로'도 B타입 티켓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성에 필요한 용역을 제공하던 서민의 거주지이다. 요즘 말로 하면 협소주택 11채가 줄지어 서있다. 난 협소주택 매니아라 넷플릭스의 <도전 협소주택(Tiny House Nation)> 시리즈도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이곳은 좀 살기 힘들어 보인다. 구경하다보면 2층으로 가는 통로가 있는데 올라가보면 중세 갑옷과 무기가 즐비하여 아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황금 소로가 원래 왕궁 근위병의 거주지였다고 해서 그런 듯 싶다. 여기도 놓치지 말고 꼭 올라가보기를. 

    프라하 성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달리보르의 탑이 보인다. 수탈당하던 농민을 돕던 달리보르라는 젊은이가 이 탑에 갇혀 처형일만 기다렸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달리보르가 수감된지 하루만에 바이올린을 배웠다고하는데, 사실은 그 소리가 고문 당할 때 지르던 비명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 탑 안에는 고문 시설이 가득하여 으스스하다. 잠깐 둘러 보고 가기 좋은 곳. 

    성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계단으로 된 내리막길이 있는데 이번에는 좌측의 포도원 길로 들어갔다.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여기에서 보는 풍경이 참 좋다. 아래 계단길은 사람도 북적거리고 돌바닥도 미끄러운데 이 곳은 조금 더 높고, 그늘져서 여유롭다. 이 길 추천.

    이미 점심 시간을 한참 지났다. 우리는 음식점을 향해 움직였다.

    가려던 음식점은 브레도브스키 드부르(Bredovský Dvůr) 레스토랑. 지하철에서 하차해서 역을 나오려고 하는데 역사 내부의 피자집에서 피자 굽는 냄새가 난다. 갑자기 친구가 동전을 꺼내며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나는 심히 당황하여 친구를 급히 붙잡았다. 

    "지금 음식점 가는데 피자가 웬 말이드뇨?"

    "너도 좋아할 거야."

    "아니 음식점이 요 앞이야, 길 안 헤매고 바로 찾아갈게. 거기에서 먹자."

    이미 동공이 풀렸지만 마지막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친구를 연행하듯 끌고 음식점을 찾았다. 얼마 안 가 1. 이 문이 맞는지, 2. 음식점이 맞는지, 3. 사람이 하나 없어서 운영을 하는건 맞는지, 알 수 없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우리를 반겨주는 웨이터가 있었다. 

    우리는 스비치코바, 굴라쉬, 감자튀김, 그리고 맥주를 시켰다. 스비치코바로 말하자면 꼴레뇨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스메타나 소스를 뿌린 소고기 등심을 삶은 빵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수도원을 능가할 맥주는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식사 후 안정을 찾은 친구와 함께 바츨라프 광장 근처 쇼핑 센터에 있는 체르니의 '거꾸로 매달린 바츨라프 말 동상(King Wenceslas Riding on a Dead Horse)'를 영접하였다. 또다시 그의 익살스러움을 즐긴 후에 우리가 이동한 곳은 바로 구시청사.

    이 날을 위하여 이미 표를 예약한 터였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