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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니] 하이큐!!(Haikyu!!)
    오덕기(五德記)/日 2021. 9. 15. 13:43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제목을 가진 애니메이션이 있다. 배구 만화 제목이 배구라니. 그런데 애니메이션을 보니 일본에서는 배구라고 안 하고 발리볼이라고 하는 듯싶다.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온 동료가 이 만화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 이 사람의 후임자 또한 만화책이 완결되어서  첫 월급을 받자마자 전질을 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첫 편은 이해 가능한 입력(Comprehensible Input) 이론에 입각한 일본어 습득을 위해서 오로지 일본어만으로 시청했다. 다 보고 나서 음 생각보다 평범하군.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한글 자막을 키고 다시 보았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나의 일본어 듣기 능력이 세세한 내용을 잡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컴프리헨서블 인풋이고 나발이고 한국어 자막과 함께 시청하였으며, 아주 짧은 기간 내에 애니화 되어 있는 전편을 모두 시청했다.

    어쩔 수 없이 진하게 끼쳐오는 슬램덩크의 짙은 내음. 슬램덩크 이후의 만화가 가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리라. 나는 슬램덩크를 만화책은 물론,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성우 버전의 애니메이션을 모두 시청할 정도로 좋아하였다. 그래서 이를 넘어설 스포츠 만화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하이큐가 넘어섰다는 것은 아니다. 캐릭터나 스토리 전개의 유사함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다만, 슬램덩크가 갑자기 연재 종료되었던 것에 비해 하이큐는 그 이후 슬램덩크가 갔음직 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고, 게다가 요즘 감각으로 세련되게 그려내고있다. 존재 자체로도 이 정도로 수작인 스포츠만화를 더 이상 슬램덩크와 비교하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다만 슬램덩크에 비해 크게 아쉬운 점을 고르라면(비교 안 하겠다고 하고 바로 비교하는 무지막지함), 그림체이다. 종목 특성상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인데, 얼굴을 많이 창조해내기 어려운 그림체이다. 얼굴은 머리카락 모양, 눈썹, 점, 안경, 눈동자로만 아슬아슬하게 구분하고 있다. 캐릭터 디자인에서 여러모로 아쉽다. 전국대회로 나가면서 점점 외계인형 외모가 추가된다. 나같이 안면인식장애와 이름기억장애가 있는 사람은 누가 누군지 포기하면서 보아야 했다. 게다가 목 아래 검은 줄도 거슬리고, 귀는 호빗 같다. 카게야마는 귀면상인데 작품 중에 귀면상 계열이 존재한다.   

    스토리나 성우들 연기에 굉장한 박력이 있다. 성우들 기합이 보통 좋은 게 아니다. 연기가 끝나면 다들 배즙을 들이켜야 할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시끄러워서 못 보겠다던 한 친구의 말이 기억난다. 다들 고래고래 목청도 좋게 소리를 질러댄다. 예전에 성우 구자형이 한국 성우들보다 일본 성우들이 소리 지르기 더 편하다는 논조로 글을 썼던 게 떠오를 정도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모음으로 끝나면서 목구멍이 열리는 일본어와는 달리 한국어는 종성이 있어 구개음이나 치경음 등으로 목이 닫힌다는 것이다. 

    스토리면에서 쇼요와 카케야마의 기술이 너무 초반에 완성되고 크게 변화하지 못한 채 중반 이상까지 진행된다는 점이 아쉽긴 했다. 쇼요와 카케야마의 발전기보다는 각 학교와 캐릭터에 애정을 고루 분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내가 이 애니메이션에서 흥미롭게 본 장면은 류노스케의 누나인 사에코가 태고를 치며 응원을 주도하는 장면이었다. 사에코가 대학에서 태고 팀에 있다는 복선을 시작으로, 카라스노가 조직적인 응원전에서 밀렸을 때 사에코의 태고팀이 등장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이후 상대팀 응원단장과의 마주침 등이 스포츠에서 응원의 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빌드 업부터 결과의 박력이 마음에 들었고, 일본 문화를 애니메이션에 잘 스며들게 한 점도 부러웠다.

    이런 일본의 스포츠 만화를 보다 보면 일본이 생활체육, 동아리(동호회)체육이 굉장히 발달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엘리트 체육 위주의 체계에서는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생각하면서 운동을 하지만 일본은 저렇게 목숨을 걸고 하면서도 입시와는 별개이다. 그만큼 저변이 넓다는 뜻일 게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도 가르치는 학생 중에 럭비인지 미식축구인지 스포츠 특기생이 있었는데, 학점이 안 나오면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다른 학생보다 성실한 자세로 공부했던 것도 기억난다. 우리나라 체육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선수 생명이 짧은 체육을, 그것도 어린 나이에 혹사당하듯이 수련하고, 혹시나 그 길이 좌절되면 다른 길이 쉽게 열리지 않는 상황이 현 상황 아닌가.  

    하이큐를 보면서 세트 단위로 이어지는 스포츠가 과연 진정한 승자를 가려내는 방식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피어났다. 세트 단위인 스포츠가 꽤 많은데 뭐랄까 승자독식인 미국 대선 체제 같달까. 물론 세트 단위로 운영되는 스포츠는 나름의 작전과 운용 방식이 달라질 것이며 특유의 재미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총점이 높은 팀이 이기는 게 더 공정한 승부판별방식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으로 야구 이닝을 세트 식으로 바꾸면 색다른 재미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말이다. 

     

사고전서의 옳게 치우치기